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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Jan 31. 2020

26. 퇴근 후 프리랜서

정용하 에세이



현재 시간 오후 7시 28분. 노트북의 전원 버튼을 누른다. 평소보다 20분이 늦어졌다. 별일 없으면 대략 7시 정각쯤 카페에 입장한다. 음료를 시키고, 노트북을 켜고, 준비를 마치면 7시 10분 정도 된다. 그때부터 나의 프리랜서 생활이 시작된다. 오늘 하루 '할일'이 적혀 있는 수첩을 꺼낸다. 꼭 해야 하는 굵직한 업무 한 가지와 자잘한 업무들이 쌓여 있다. 나는 곧장 꼭 해야 하는 업무부터 작업에 들어간다. 다른 것들은 웬만하면 그날 꼭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다. 그런 것들은 우선순위에서 후순위로 밀어둔다. 꼭 해야 하는 업무란 거의 블로그 콘텐츠와 연관돼 있다. 그날그날 올려야 하는 콘텐츠를 미리 정해둔다. 그날 올리지 않으면 다음 날로 미뤄지게 되는데, 미뤄지면 무엇 하나는 처리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일정의 변화를 극도로 싫어한다. 잠이 들 때도 찜찜해서 잠이 잘 안 온다. 어떻게든 그날 정한 것을 처리하려고 하며, 일정 조정이 필요할 땐 미리 미리 해둔다. 꼭 그렇게 하려고 지킨다.     


그러나 나도 인간인지라 일정을 못 지킬 때가 간혹 있다. 그럴 때 자책을 많이 한다. 바보같이 왜 그랬냐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보통 다른 약속이 생겨서 그런 건 아니고, 집에서 미적거리다 시간을 날려버린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다. 그냥 자책하며 아쉬워하는 수밖에. 그런 감정에 나를 놔두지 않게 하기 위해 일정을 꼭 지키려고 한다. 못 지킬 땐 미리 스케줄을 조정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그렇지 않으면 놀 때도 마음 편하게 놀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노는 스케줄도 일주일 전에 미리 짜놓는다. 최소 일주일 전에. 보통은 이 주 전에도 많이 잡는다. 당일 약속이나 며칠 전 약속은 마음이 편치 않아 잡지 않는다. 이미 정해진 일정이 있는데, 이것을 미루는 것도 고역이다. 요즘엔 친구와의 약속보단 정해진 일을 우선한다. 관계보다 일에 더 방점이 찍힌 삶이랄까. 원래부터 그런 건 아니고, 사회에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그렇게 됐다.     


관계의 회의감도 한몫했다. 원래는 일보다 사람을 더 중요시 했다. 정해진 일정을 미루더라도 지금 맺고 있는 관계를, 함께 있는 그 순간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관계는 언제나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이 관계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며, 내가 잘한다 해서 그만큼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노력 대비 돌아오는 것이 적다. 나의 노력을 상대방이 노력이라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그냥 부담으로, 또는 무관심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내 마음만큼 상대방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또 내가 애쓴다 해서 그 관계가 계속 이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 진실을 깨닫게 되니 더 이상 관계에 애를 쓰지 못하겠다. 그보다 확실한 반응이 있는 일에 집중하게 됐다. 일은 내가 하는 만큼 성과로 보답해 준다. 어찌 됐든 노력한 티가 난다. 나는 그게 좋았다.     


나는 한 번 앉으면 세 시간이고 죽치고 앉아 있는다. 원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카페에서만큼은, 블로그 관련 작업에서만큼은 그렇게 한다. 이렇게 학창시절에 공부했으면 지금 이미 뭐라도 되긴 됐을 거다. 나는 원래 한 시간 집중하는 것도 매우 힘들어 하는 사람이다. 순간 집중력은 좋아도 지구력은 약해서 끈기와 뒷심이 항상 부족했다. 그런데 블로그를 할 땐 달랐다. 언제는 휴일에 카페에서 7시간 동안 엉덩이를 붙이고 내리 작업한 적도 있다. 그냥 할 것 하고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까 7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시간의 빠르기가 무서웠다. 그때 느꼈다. '이게 참 나에게 맞구나.', '이걸 계속 하면 뭐라도 되겠다.' 아직 뭐라도 된 단계는 아니지만 그렇게 느낀다. 블로그를 하는 일이 매우 즐겁다. 몇 시간을 해도 지루하지 않다. 이걸 통해 돈을 벌고 일을 하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다. 천직이라 느낀다. 지난 5년 동안 이 생각이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보통 그렇게 오후 10시에서 10시 반 사이에 일을 마친다. 카페에서 꼬박 세 시간을 내리 일만 하는 것이다. 사실 프리랜서의 일을 다 쳐내기엔 부족한 시간일 수 있다. 다음 날로 작업을 미뤄야 한 적도 많았다. 또 그만큼 하루의 작업량을 늘리지도 못한다. 전업으로 했다면 아마 더 많은 일을, 더 완성도 있게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농도 짙은 집중력이 좋다. 아마 전업으로 했다면 시간이 많다는 핑계로 오히려 더 설렁설렁 했을지 모른다. 나는 충분히 그럴 인간이다. 시간에 쫓겨야 늘 그럴 듯한 성과를 냈다. 따지고 보면 하루 종일 하는 양과 그렇게 차이나지도 않았다. 앞으로 충분한 벌이를 벌어도 당분간 나는 이러한 '투잡' 생활을 계속할 생각이다.     


나는 이러한 일상을 사랑한다. 내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최근 나의 삶에 큰 변화가 찾아올 수도 있었으나, 역시 생각해 보니 나는 지금의 삶을 포기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든 나는 지금의 삶이 좋다. 한 발자국 나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는 내가 좋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지금의 삶을 포기하고 다른 허울 좋은 삶을 좇겠는가. 행복이 바로 여기 있는데. 내가 내 일상에 만족하면 된다. 하루를 돌이켜봤을 때 스스로 보람차면 된다. 내일이 더 기대되면 된다. 최소한의 밥 구실을 하면 된다. 그게 행복한 삶이다. 더는 다른 삶을 찾지 않겠다. 여기서, 이 길 위에서 성과를, 나아갈 내 모습을 찾겠다. 그러면 되었다.     





2020.01.31.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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