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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Feb 05. 2021

믿음을 주는 사람

정용하 에세이



취기가 잔뜩 올라왔다. 나를 놀리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어도, 아니 술자리에서 그런 것쯤이야 흔히 일어나는 일이니까 그냥 넘길 수 있어도 이건 아니었다. 내가 누구 때문에 그런 고생을 했는데. 나는 더없이 창피했다. 내가 다섯 살이나 어린 후배를 질투하는 것도 모자라,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으니. 심지어 잘 해보려는 여자 애 앞이었는데.


"형, 나한테 너무한 거 아니에요?"


우리는 3차인가 4차인가를 온 상태였다. 이미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나는 P형의 호출에 천안에서 평택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웬만하면 당일 약속에는 응하지 않고, 거리가 있는 곳엔 더더욱 가지 않는 나였는데. 가는 길에 후배 하나가 따라온다고 하길래, 그를 데려갔다. (P형과 다 아는 사이였다.) 그곳엔 P형 말고도 여자 후배 둘이 더 있었고, 우리는 총 다섯 명이서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1차는 횟집, 2차는 어묵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까지는 신이 나서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놀았다. 그런데 P형이 자꾸 나를 놀리는 거다. 안 그래도 한 여자애에게 잘 보여야 하는데, 그 형은 자꾸 초를 쳤다.


"얘랑 노래방 가본 사람? 진짜 최악, 와."


내가 노래를 엄청 잘 부르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 말 가지고 크게 분개할 일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노래방 가서 중간 이상은 간다고 자부했다. 적어도 분위기를 흐릴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P형과 갔을 때는 이미 만취한 상태였고, 그 상태에서 노래를 잘 부르기는 몹시 어려웠다. 그 망가진 상태에서 P형은 내 노래를 들은 것이었다. 그래서 딱히 할 말도 없지만 굳이 나를 그렇게 깎아내릴 필요가 있을까. 화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게다가 P형이 일부러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데려간 남자 후배 애만 예뻐하는 것이다. 나 보란 듯이.


"난 얘(남자 후배)가 너무 좋아. 센스 좋고, 척하면 척."


나도 예뻐하는 후배였기 때문에 그 칭찬에 동의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깎아내리고, 후배는 치켜세우니 내가 불청객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럼 내가 여길 대체 왜 왔지? 나는 그 형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해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 거지?


P형은 술김에 그런 것이었다. 내가 더 편하고, 오래 봐 왔으니까 나에게 장난친 것이었다. 그냥 주사였다. 특별히 의미 부여할 필요 없는 헛소리. 하지만 술김이라고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을 조심해야 한다. 편하다고 해서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털어놓으면 관계의 단절을 부른다. 나도 그런 적이 많다. 친하다고 해서, 진심이라고 해서 다 털어놓았다가 다음날 땅을 치고 후회했던 적이. 어쩌면 나도 끊긴 관계의 절반 이상은 내 솔직함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솔직함은 보통 술 마셨을 때 나온다. 그래서 그 사람의 본 모습을 보려면 술을 같이 마셔보라고 하지 않는가. 취한 상태에서의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인성이 드러나게 된다. 나도 최근까지 술 때문에 후회한 적이 있어서 이제 진짜 조심하려고 한다.


나는 P형 앞에서 울어버렸다. 슬퍼서라기보다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여자애 둘, 남자 후배 앞이었는데.


"나는 형이 그렇게 무책임하게 기관을 관뒀을 때도 나라도 책임지기 위해 뒷수습을 얼마나 했는지 몰라. 근데 형이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적고 보니 지금도 얼굴이 붉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술 마시고 진상을 부린 것밖에 되지 않겠다. 나는 그 사실이 또 자존심 상해서 그때만 생각하면 화가 치민다. 후배들은 얼마나 나를 어리게 봤을까. 아찔하다. 하필 또 잘 보이려 애썼던 여자 애 앞에서 그런 행동을 했으니.


나는 당연히 그 날 이후로 P형을 보지 않았다. 한 번 관계를 끊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마음에서 그냥 그 사람만큼 잘라낸다. 그게 너무 칼 같아서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는지 내가 생각해도 의아하다. 나는 관계를 대하는 태도가 전부 그러했다. 친할 땐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면서 잘라낼 땐 전혀 미련이 없다. 그건 썸타거나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사람이 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으면 나는 그날부로 마음을 정리했다. 그 속도가 정말 빠르고 칼 같아서 미련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다.


내 나름의 방어기제였다. 상처받는 게 너무 두려우니까 나를 밀어내는 낌새가 보이면 내가 먼저 관계를 잘라냈던 거다. 사실 그건 비겁한 방식이었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것이었고. 내가 생각해도 나 같은 사람과 오래 함께하긴 어려울 것 같다. 나는 그러면서도 누구든 오래 함께하길 바란다. 그걸 늘 꿈꾼다. 하지만 지금 내 관계를 보면 오래 함께한 사람이 거의 없다. 가족을 제외하고는.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지 인연이 없었다고 치부할 수 있을까. 맞다. 그동안 나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언제든 그 사람이 나를 떠날 상황을 가정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그 기미가 보이면 내가 먼저 마음을 정리하는 식이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이토록 비겁한 방식을 오래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떠하든 오래 함께할 사람이라고 조금만이라도 생각했다면 아마 지금 나의 인간관계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상대방을 오래 함께할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느껴본 적이 없다. 말로만 진심이다 하면서 상대를 붙잡아두길 원했지만 정작 마음은 내가 먼저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다. 이젠 정말 그러지 말자.


어쩌면 내가 솔직하려는 것도 상대를 붙잡기 위한 생존 방식인지 모른다. 진심을 표현하면 그 사람이 나를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것 역시 상대와 오래 함께할 수 없다는 불안이 작용한 것이다. 이제 그러지 않기 위해 내가 먼저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네가 내게 어찌하든 나는 너와 오래 함께할 사람이라고 나 먼저 그렇게 믿을 것이다. 물론 그것도 정도가 있는 것이겠지만, 일단 믿음을 갖고 상대에게 그 행동을 보여줄 것이다. 그걸 깨닫는 데 삼십 년이 걸렸다. 어쩌면 일찍 깨달은 것일 수도 있다. 온갖 시행착오를 겪고 많은 사람을 만나본 끝에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러기까지 많은 사람을 잃었다. 지금 맺고 있고, 앞으로 맺을 관계들은 이전과 다를 거라고 굳게 믿는다.


-2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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