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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Sep 19. 2021

왜 그 애들은 너에게만 안부를 물을까

작가 정용하 에세이



J는 사교성이 엄청 좋진 않지만 두루두루 친하다. 가만히 있어도 선후배, 동기로부터 간간이 연락을 받는다. 나는 항상 의문이 든다. J가 누구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는 것 같은데 (물론 나에게만 그런 것일 수 있다) 왜 주변인들은 그에게 이따금 연락하는 것일까. 나 역시 그날 내가 먼저 연락해서 만남을 가졌다.



J는 자신의 속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그와 꽤 가까이 지냈음에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냥 게임 얘기, 회사 얘기 등 피상적인 얘기만 한다. 진지한 얘기를 하려 하질 않는다. (물론 그것도 나에게만 그런 것일 수 있다. 그렇다. 그는 속이 보이지 않는 친구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얘길 잘 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나 혼자 막 떠들면 가만히 듣고만 있고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날 나는 학교 선배에게 속이 상한 일로 J에게 털어놓았다. J는 나의 얘기를 묵묵히 들어주긴 했지만 역시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란 그의 말이 공감의 어투로 들리지 않았다. 그냥, '난 너와 생각이 달라', 혹은 '당사자 없는 곳에서 뒷담화 하고 싶지 않아'란 의미로 읽혔다. 나도 굳이 뒷담화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입을 닫았다. 그러자 할 얘기가 없었다. 나도 J에게 내 속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J는 내게 하나도 털어놓지 않는데 내 이야기만 하는 것은 불공평한 거래였다. 그렇다고 게임이나 회사 이야기도 나와 맞지 않았다. 그나마 축구가 접점이어서 그걸 안주 삼아 이야기 나눴는데 그것도 썩 즐겁지 않았다.



J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고 가벼운 이야기만 하려 했다. 그게 대체로 자리를 기분 좋게 만들긴 했다. 하지만 그에게 정이 가지 않았다. 오래 함께해도 친해졌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내가 답답한 건 왜 그런 그가 사람들에게 더 연락을 많이 받고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냔 것이다. 대체 인간관계가 무엇이길래. 물론 속사정을 들어보면 얘기는 다를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엔 단순히 그것 외 다른 요인이 깃들어 있을지 모른다. 어쨌든 이해는 안 간다. 누가 먼저 연략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만났을 때 밝은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일까. 나는 그에게 정이 안 가는데 다른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끼는 것일까.



여기서 핵심은,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종종 먼저 연락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J가 그런 사람인 것 같아 질투가 난다. 나는 그가 정이 안 가고 그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데 사람들은 J와 더 친하게 지낸다. 불공평하다. 이게 내 주관적인 느낌이라 사실과는 크게 다를 수 있다. 1~2년 동안 연락 몇 번 받은 것 가지고 내가 오해한 것일 수 있다.



어쨌든 나는 자신의 얘기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털어놓는 사람이 좋다. 물론 매번 진지한 만남이 되는 것은 재미없고 부담 되지만 때때로 자신의 속 이야기도 드러낼 줄 알아야 그 사람과 친해질 수 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냥 이제 그와 공감대가 없어진 것이다. 대학생 땐 같이 나눌 말이 그래도 많았고 한때 둘 다 전공을 살리는 것에 관심이 많았으니 대화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나도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해서 우리의 접점이 희미해졌다. 그럴 땐 정말 여자 얘기라도 해야 만남의 재미가 생기는데 J는 그것도 잘하지 않았다.



이제 J뿐 아니라 대학 시절 인연들은 전부 소원해지는데 그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그냥 내가 다른 길을 걸어서이고 우리의 간극이 너무 벌어져서이다.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대학 시절 추억팔이 하면서 만남을 즐길 수 있지만 그것도 동아리 행사라든지 경조사라든지 만날 일이 있어야 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어야 한다. 일단 나에게 그게 없다. 그래, 언젠가 한 10년이 지나서 그럴 날이 한 번 오겠지, 란 생각이다.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 먹고 살기 바쁠 텐데,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다들 먼 사람보단 가깝고 익숙한 사람과 만나게 돼 있다. 그냥 이젠 멀어진 사이다. 역시 흘러간 인연은 붙잡지 않는 것.



내가 먼저 연락해서 만난 건데 화장실 간 사이 J가 계산을 해버렸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얻어 먹고 다음에 내가 사겠다고 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왠지 J에게 얻어 먹기 싫었다. 자존심도 조금 상했다. 내가 만나자고 한 건데 네가 왜 사? 이미 다음은 없을지 모른다고 예감을 한 건지 모른다. 다른 사람을 껴서 만날 수도 있지만 둘이선 만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바로 카카오페이로 반값을 보냈다. 그의 직장이 우리 집 근처라서 만나려면 얼마든지 자주 만날 수 있는 사이인데 조금 꺼려진다. 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겠다. 기존 인연이 흘러 갔다면 새로운 인연이 다시 내게 흘러 들어오게. 그 노력은 멈추지 말아야겠다.



-21.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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