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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른손 Apr 11. 2019

<Okay, Let's work this out>

05. 민트와 아쿠아 밤. 'Mind control', 마음을 지배하자

첫사랑과의 이별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회복을 위해 마음을 정돈하고 다시 통제하는 법을 익혀야 했다. 


'Refresh'

상쾌한 마음으로 잡생각과 내 안의 고민을 비우고 생각을 하나하나 새로 쌓아가기 시작했다. 1년간 찌질 댔으면 충분했다, 부끄러운 짓은 충분히 많이 했고 충분히 아파했다. 다시 행복해질 차례다.


다시 1개월, 6개월, 1년간 몸소 피부로 느끼고 나름대로 고안해낸 '나만의 이별 극복법'이다.



1. 통제할 수 없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더군다나 확연히도 다른 남녀 사이의 관계를 나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을 거란 오만을 버렸다. 헤어지기 전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았다. 많은 시간, 공을 들여 고민해본 결과 그 당시 아무리 최선의 선택을 하더라도 상황이 종결되기 위한 결정권은 상대방이 쥐고 있었다.

내가 잘한다고, 노력한다고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은 단 1%조차 돼 보이지 않았다. 정말 미세한 부분, 아주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만 변하는 것이 연애였다. 내가 아무리 잘하고, 실수 없이 완벽했어도 지금과 같은 이별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잘 모르겠다. 결론은 이랬다. 


'나는 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의 선택과 행동을 한 것이었다."


더 이상의 차선책도, 설득과 회유도 상황을 100% 변화시키리라는 보장은 없다. 관계의 회복을 위해 '자신' 나름대로의 매 순간 최선을 선택을 해왔던 것이다. 그 선택이 제삼자가 판단하기에 부족하고, 미숙한 선택일지라도 연애에 있어 주체는 어디까지나 '나'이다. 연애가 결국 종말을 맞이했다면 나는 아직 연애를 완성시키기에는 '부족한'사람이었던 것이다. 연애의 결말은 나의 통제권 밖이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2. 고리를 절단한다.
그동안 나는 미련하게도 그녀의 소식과 모습을 볼 수 있는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울 때면 한 번씩, 외로울 때면 한 번씩 비공계로 전환된 그녀의 SNS 계정과 카카오톡 프로필을 확인했다. 의미를 부여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이 소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머릿속으로 후속 편을 계속해서 만들어갔다. 과거의 형상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망상 속에서 공허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블로그에서 카페,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으로 발전해온 인간계의 '네트워크 역사'는 각기 '개인의 소식'을 원하지 않을 때도 쉽게 접하게 한다. 그 사람의 소식은 아직 새로운 연인이 생기지 않았을 때는 쓸데없는 '희망'을 가지게 하고, 새로운 연인이 생겼을 때는 저 깊은 곳까지 '좌절'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연인과 헤어진 이후 관계의 단절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나 역시 단절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써은 줄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통보를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상대에 대한 호감과 감정은 대상에 대한 존재를 물리적으로 인식할수록 더욱 깊어지게 만들었다. 마치 짝사랑이 심해지듯, 이전에 연인이었을 때보다 훨씬 극심하게 애틋한 감정을 키웠다. 


상대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정리할 때까지 극단적인 단절이 필요하다. 그러나 계정을 차단하거나 나의 계정을 비공계로 하고 삭제하는 것은 조금 과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의미의 단절은 나의 SNS에서 그녀의 흔적을 지우고 친구를 끊는 것이다. 그동안의 '해시태그', '게시물', '사진' 등을 지웠다. 그녀의 계정을 검색하고 들어가 보는 행동을 억지로 참고 억제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훈련시키고, 익숙해지게끔 반복했다. 1년 하고 2개월이 지난 어느 시점, 더 이상 궁금하지도 그 사람의 계정이 기억나지 않았다.


3. 추모 의식.
같은 추억을 공유한 사진, 선물, 편지, 물건들을 찢거나 태웠다. 혹은 커다란 상자에 한꺼번에 담아 버렸다. 물건들을 하나하나 모으며 마지막으로 그때를 회상하고, 추억을 마음껏 감상했다. 시간이 지나 아쉬운 마음에 그때를 추억하려 더듬더듬 물건들을 찾아도 보았다. 그러나 이미 소멸된 물건들은 강제적으로 나의 '회상'행위를 막아주었다. 

추모 의식을 진행하면서 가장 처리가 힘들었던 것들은 '편지'였다. 나를 향한 그녀의 진심, 그 당시 넘치던 감정이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있었기에 가장 태워버리기 힘든 물건이었다. 의외로 반지나 목걸이, 옷 등 형식적인 의미가 깃든 물건들은 상대적으로 아쉬움이 적었다. 


주변의 물건을 정리하면 추억이 몽땅 사라질까? 천만의 말씀. 물건들은 그저 당시를 연상시키는 '도구' 또는 '장치'일뿐 모든 기억은 자신의 머리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 추모의식의 요점은 주변 환경을 오로지 그 사람을 만나기 전의 '나의 공간'으로 만듦으로써 '독립성'을 키우고 기억의 '트리거'를 제거하는 것에 있다. 


얼마나 잔인하지만 효과적인가!


4. 1주일간의 슬픔.
슬퍼하는 것에 기간을 두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인지 안다. 그러나 우리는 제대로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각자가 맡은 사회적인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다. 직장인은 일터로, 학생은 도서관으로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야만 한다. 자신의 일터와 사회적 공간이 무너지지 않게끔, 슬픔이라는 감정에만 오로지 집중할 기간이 필요하다. 그럴 권리가 있다. 

대부분 남자들은 슬픔을 외부에 표출하지 않는다. '쪽팔리고', '지질하고', '구질하고', '멋지지 않다'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슬픔을 억누른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언젠가는 폭발한다. 또는 다른 형태의 감정으로 잠복해있다가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고 모습을 드러낸다. 따라서 슬픔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행위는 매우 중요하다.


슬픔을 표출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그중에서 소리 내어 우는 것을 가장 추천한다. 남들이 잠든 시각,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며 울어라. 사랑이 끝났음을, 나의 마음이 아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최소한 1주일은 마음껏 울어라. 단, 술에 취해 슬퍼하지 마라. 알코올에 의한 감정의 일시적 변화는 어디까지나 외부적인 화학작용이 많이 가미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태껏 연애를 해오며 1~2번을 빼고 항상 이별 뒤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슬픔을 표출했었다. 때로는 하루였고, 때로는 3일, 1주일이었다. 내 안에 쌓인 서러움, 섭섭함, 안타까움, 억울함 등 감정들을 폭발적으로 내보냈고 후련했다. 


5. '끝' 되뇌기.
실연을 당하고 괴로움이 연장되는 것 중에 가장 큰 요인은 '미련'이다. 다시 어떻게든 어떤 모습으로든 만나, 사랑하게 될 거라는 망상. 지금 내가 어떠한, 매우 현명하고도 합리적인 행동을 취하면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는 믿음은 괴로움의 기간을 무기한 연장시킨다. 우리는 상대와 나의 관계가 '끝'이 났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 당장 혹은 한 달 뒤, 상대와 나는 바뀐다면 얼마나 바뀔까?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사람은 '바뀐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기간'에는 바뀌지 않는다. 또한 특정 '상대'를 다시 만나기 위해, 그 사람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겉핧기식 변화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끝'을 인정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의미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곧 다시 만난다면 우리는 견고하게 사랑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그건 모르는 일이다. 하늘만이 아는 일. 그럼 이제부터 우리가 신뢰하는 숫자, 확률.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날 확률 약 80%, 그 사랑이 성공적일 확률은 단 3%. 사람의 내면이 바뀌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외부적인 요인, 내부적인 동기로 인해 변해간다. 그렇게 성숙하고, 변해버린 사람이 다시 상대를 만나 성공적인 사랑을 약속할 확률은 희박하다. 또한 어느덧 변해버린 내 모습을 그녀가 다시 사랑할까? 모른다. 


전 연인들이 사랑을 다시 시작한다는 건, 어느덧 성장하고 조금은 변해버린 새로운 서로를 바라보며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적으로 판단해봐도 당장 '끝'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전혀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다.


'사랑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다니, 그렇다.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6. 용서하기.
연인이 바람을 피웠다거나, 환승을 준비했다면 위의 5가지를 고민할 필요 없다. 이러한 정성 어린 고민 따위 필요가 없는 사람이고, 논외의 대상이다. 바람둥이와 환승 쟁이들이야말로 감정적인 장애가 있는 슬픈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동정해주어라. 정착 없는 불안정한 인생, 얼마나 슬픈가. 그러나 이것 이외의 이유라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역할은 무의미하다. 이쯤 되면 많은 과정을 생각해보고, 고민해봤을 것이다. 연애 중, 상대와 나는 번갈아가며 '가해자'와 '피해자' 역할을 맡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많은 것들을 지나쳤고, 잘못해 왔었다. 상대 역시 많은 부분을 잘못했고 상처 주었다. 상대의 잘못은 갑자기 발현되거나 발생하지 않았다. 대부분 나로 인해 빌미가 제공된 것이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잘못을 했다.


균열의 시작은 동시다발적이다. 나 혼자로 시작된 것이 아니며, 상대의 전적인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쌍방과실'. 우리의 죄목이다.


7. 상상하기.
그동안 느꼈던 상대의 치명적인 단점들을 생각해보아라. 연애를 다시 해야 한다면, 그 단점들이 없는 새로운 사람과의 새 연애를 상상해보아라. 상상만으로 다시 행복하다, 전 연인에게서 보였던 단점이 없는 그 사람. 갈등 없는 행복한 연애가 그려졌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죽어가는 연애세포에 인공호흡을 했다. 

여기서 선택지는 두 갈래로 나뉜다. '연애 회의론자'와 '연애 낙천주의자'. 나 역시 한동안 연애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이었다. 한때 '마녀사냥'의 허지웅 씨처럼 '무성욕'의 기간을 보낸 적도 있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하게도 인연이라는 것은 그저 자연스럽게 마음에 스며든다. 차갑고, 습한 나의 마음을 다시 따듯하게 해주는 사람. 회복이 마무리될 때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사람이 꼭 다가왔었다.


민트 초콜릿과 아쿠아 밤은 자던 사람도 깨게 만드는 상큼함이 있다. 실연 뒤 괴로움은 언젠가는 끝난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톡 쏘는 상큼함이 있다는 것도. 그러니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기로 했다. 다가오는 인연을 막지는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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