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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Apr 04. 2022

그림 초고 작업 중입니다

"선생님, 저도 참여하고 싶어요~"



인스타에서 관심 가는 피드가 하나 보인다. <수강생들과 함께 하는 전시회>

작년에 내가 다녔던 작업실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소식이었다. 21년 말에 협회에 선생님들과 전시회를 했다고 하셔서 이제 막 그림을 그리는 내가 부럽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올해는 수강생들과 함께라니.. 이런 기회는 놓치면 안 되겠다 싶었다.




몇 달 쉬고 있던 그곳을 다시 찾았다.

계절도 봄, 마음도 봄.

하루 뚝딱 그리며 완성하던 가벼운 캔버스 사이즈가 아닌 20호 이상의 큰 캔버스에 1달 넘는 시간을 들여 작업한다고 하니 설렜다. 이 과정은 얼마나 즐거울지 이런 경험이 쌓여 나중에는 정말 나 혼자 개인전을 하는 날도 올까 설레발을 품은 꿈도 꾸며 작업실에 입장했다.




어떤 그림을 그리면 좋을까?

내가 계속 그리게 되는 건 풍경과 꽃, 그리고 동화 같은 느낌의 그림. 이렇게 3가지였다. 집에서 아이패드로 그려보면 늘 3가지 중 하나의 그림에 손이 갔고 그렇게 완성된 그림이 참 좋았다. 과정도 결과물도 내 마음이 편한 그런 작업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끄적인 것들 중에 하나를 크게 그려볼까?



이젤에 턱 하니 캔버스를 올려놓으니 작년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던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걸 다 채울 수 있을까... 작품처럼. 선생님과 함께라면 할 수 있다!! 나를 믿는 힘이 적을 땐 리더를 보면서 꾸준하게 가면 되는 법. 

그렇게 나의 첫 전시회 준비는 시작되었다.




"우와, 이거 진짜 에너지가 많이 드네요. 이런 걸 3-4점 그려야 한다는 거죠?"



첫날, 2시간 반의 작업을 마치고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캔버스가 커서 앉아서 그릴 수 없으니 그 시간 내내 서있었고, 칠하는 부분의 높낮이에 따라 다리도 허리도 구부정. 자세도 편하지 않았고 색이 많이 들어가는 그림이라 어울리는 색상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작은 그림은 한 번 쓰윽 칠하면 얼룩이 티 나지 않았는데, 이건 붓질이 모두 남아서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작은 그림을 여러 개 그려봤으니 이것도 할 수 있겠다 싶었던 용기가 단번에 사라졌다. 쉬지 않고 그렸는데도 그림의 반도 칠하지 못한 채 시간이 모두 지나버렸다.



"작은 그림은 사실 대충 칠해도 괜찮아요. 근데 큰 그림이고 이건 전시까지 할 거잖아요~전시할 때는 조명도 있기 때문에 캔버스에 빈틈이 하나도 없이 꼼꼼하게 칠해져야 해요. 비치면 안 되니까요, 최소 2,3번의 덧칠을 해야 하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고 에너지도 엄청 들어가요"




불쑥 낸 용기 앞에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 큰 도전이 시작되었나 보다.





빈 캔버스에 선으로 균형을 유지하면서 밑그림을 그리는 건 글을 쓸 때 초고와 같고, 자꾸만 덧칠하며 그림을 정리하는 건 퇴고와 같았다.

이 색이 맞나? 너무 튀는 게 아닐까?

이 문장이 어색한 거 같아. 더 잘 표현할 수 없을까?

고민의 지점은 같았고, 늘 물음표가 떠다니고, 잘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과 두려움까지 가지는 모습이 딱 닮았다.




초고는 쓰레기.

이 말처럼 그림에서도 처음부터 너무 힘을 들여 색을 채우는 건 초보자에게 더욱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일단 분량을 채우는 일. 그것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의 1단계였다.

이렇게 덧칠이 몇 번이고 이루어지는지 모르고 한 땀 한 땀 공들여 칠을 하고 있었다. 물론 초벌이 중요하겠지만 그건 그저 채우는 역할이면 충분했다. 전체적인 조화는 그다음. 완성도는 더 뒤에. 



나는 지금 그림의 초고를 작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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