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혜진 작가 Apr 11. 2022

품을 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엄마는 바쁘고 아이는 너무나도 즐겁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낸 지 한 달 된 나의 생각이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사실 다 알지 못했지만 마음이 먼저 도착한 곳이었다. 처음에 아이를 원에 보낼 때는 그냥 집 가까운 곳이 어린이집 선택의 기준이었지만 첫 아이가 7살이 되었으니 이제는 조금 나에게도 육아원칙이라는 게 생겼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들은 놀이와 환경(편안한 곳)이었다. 그리고 아이 그대로를 인정해주고 기다려주는 것. 부모인 내가 가진 생각은 정답이 아니라 나에게 편하게 굳혀진 생각이기에 아이를 대할 때는 또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곳. 최대한 많이 놀고 아이 한 명의 개성을 들여다봐줄 줄 알고 선생님의 기준에 억지로 맞추지 않는 곳. 그런 환경에 아이를 키우고 싶다. 

집에서는 엄마의 무던한 노력이 있으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원이나 학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집에서 하는 것과 최대한 비슷하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자유로운 곳에 아이를 보내고 싶었던 마음으로 시작된 일이다.



매달 방 모임이 있어서 아이들의 원 상황을 듣고 안건을 토론하며 자신의 의견을 낸다. 주인이 있는 곳이 아니라 부모 모두가 아이의 어린이집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품을 낸다. 하나의 안건에 대해 모든 의견이 일치할 수는 없으니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은 자정이 훌쩍 지난다. 이 시간에 나는 왜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가. 정신이 번쩍 든다. 



'다음 주 일요일, 마당에 있는 아이들 모레 청소와 아이들 첫발을 정리하는 날입니다.

이제 날이 따뜻해져서 농사도 짓기 시작할 거고, 모래놀이도 매일 할 예정이라 정비가 필요합니다.

아빠들은 가능한 모두 와주세요.'

오늘도 행사 공지가 뜬다.



정말 할 일이 끝도 없구나 생각이 먼저 든다. 그리고 이것들을 몇 년째 즐겁게 하는 기존 조합원들은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는 걸까 더 궁금해진다. 분명 귀찮고 번거로운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아직 완전히 스며들지 못한 나지만,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기준으로 그 외의 것들은 감수해야 한다는 마음 같다. 그것에 가치를 두는 사람만이 이곳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게 1달 차 신입 나도 느끼게 되었다.



마음을 내고 시간을 내서 일요일을 꼬박 아이들의 활동 단속을 해준다. 아빠는 바쁘게 원 이곳저곳을 정비하고 엄마들은 간식을 준비하고 뒷 청소를 한다. 그동안 아이들은 아주 자유롭게 노느라 바쁘다. 가족이 모두 모여 각자의 일을 하느라 분주하다. 이 모든 것은 아이가 함께 하거나 지켜본다. 엄마와 아빠가 내 친구 그리고 그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자신들의 생활하는 곳을 가꾸는 모습을 보고 있다. 



마을.

예전으로 따진다면 마을에 있는 어린이집 하나. 가족 모두 집을 오가고 자주 만나서 놀면서 이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아는.. 2022년이지만 이곳은 여전히 옛날 방식 그대로 아이를 키운다. 참 신기하고 마음이 불편하다가도 편해진다.



"아이한테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고 반갑게 인사하라고 하는 것보다 이렇게 보여주는 게 맞잖아요"


우리 가족은 사실 아이의 친구 그리고 그 가족과의 왕래가 거의 없었다. 아이가 친구 집에 놀러 간 적도 우리 집에 놀러 온 적도 아직 없다. 내 친구 집에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는 가지만 말이다. 우리 집에 누가 놀러 오는 게 그다지 편하지 않고 나도 아이들 친구 엄마와 우르르 다니는 성격도 아니어서 원에 친한 친구가 있어도 그곳에서 놀거나 가끔 밖에서 본 적은 있지만, 그것도 정말 드문 일이었다.



아이로 인해 새로운 큰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건 우리 가족에게는 정말 사건 같은 일이다. 남편과 나는 여전히 적응 중이고 아이들은 이미 적응이 완료된 듯하다. 이곳에서 얼마나 우리가 성장할지 기대되는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



1달을 보낸 지금, 품을 많이 내야 한다는 것에 힘은 들지만 좋은 변화들이 느껴져서 만족 중이다. 

진달래를 따먹고 화전을 만들고, 쑥을 뜯으러 버스를 타고 탐험을 떠나고, 놀이에 심취해서 티브이도 찾지 않는다. 둘이 집에서도 규칙을 정하고 떼를 쓰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벌써 변화가 눈에 보이고 나는 이곳에 참여하면서 이런 삶의 형태도 있다는 사실을 몸소 알아가고 있다. 



사람이 모여있는 만큼 좋지 않은 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도 우리 가족의 방식으로 정리해나가는 경험을 해야 한다. 큰 틀은 같지만 모두 다른 성격, 생각으로 이곳에 모여있을 테니까. 

우리의 스타일대로 아주 천천히 공동육아에 스며들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더 오래 아가라고 불러줄 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