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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Nov 07. 2022

시간에 기대어 딱 그만큼 노력하는 요즘

차곡차곡 쌓인 공들인 시간은 절대 없어지지 않기에

30년쯤 된 오랜 친구이자 어쩔 땐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만 같은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1-2달에 한 번 통화를 하지만 수다가 시작되면 1-2시간은 훌쩍이다. 그날도 열심히 아이 얘기, 건강 얘기, 사는 얘기.. 많은 주제를 넘나들다가 문득 내가 그림을 그리는 얘기를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요즘 그림 그린다고 얘기했었나?"



중학생 시절, 친구는 그림으로 대학을 가겠다고 진로를 정했고 나는 중간에 아니 제대로 시작도 못한 채 멈췄다. 친구는 입시미술을 치르고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고 동양화를 전공했다. 그림이라는 영역 안에서 나는 가끔 이 친구가 부러웠다. 그림을 전공한 뒤 그걸로 직장을 얻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학창 시절 그림을 그리는 경험을 나는 하지 못했고 친구는 했기에-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이 담긴 일이라 친구를 보며 나의 10대가 조금 아쉽기도 했다.



"왜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어?"

그림을 그리러 다닌다는 나의 말에 친구가 물었다.

"하루 체험 삼아 그려보니 좋더라고, 그래서 그냥 계속 그려볼까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뭐가 좋았냐고~~"



예나 지금이나 내 마음을 이야기하는 건 참 어렵다. 친구의 말에 그냥 대답을 하고 보니 내가 생각해도 질문과 답이 어울리지 않았다. 왜라는 말에 그림을 그릴 때 들었던 나의 좋은 감정들을 답하면 되는데, 본능적으로 나는 날 것의 마음은 감춘 채 두리뭉실한 말만 계속 반복한다. 나를 잘 알게 되었다고 해도 말로 표현하는 영역에서 나는 아직 서투르다.



"내년에 공간을 하나 마련해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면 좋겠어서 준비 중이야. 이 일을 하려니 걸림돌이 되는 게 딱 하나 있었어. 그림을 전공한 사람만 그림을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 그것만 버리면 나도 할 수 있겠더라고"

"맞아, 전공이 무슨 상관있어. 누구든 할 수 있지"



말하고 나니 이걸 왜 터놓지 못하고 있었나.. 부끄럽고 미안한 감정이 올라왔다. 숨기려고 한 건 아니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을 즐기지만 내심 잘 그리지도 못하면서 - 전공한 것도 아니면서 - 못하는 이유들을 머릿속에 줄 세워놓고 하나씩 떠올리며 나를 작게 만들고 있었다. 취미로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함께 그리자고 말하는 위치에 가려니 나의 자격을 운운하게 되고 말았다. 



'네가 누구에게 그림을 알려줄 상황은 아니잖아?'

언제나 나를 작게 만드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닌 나였다. 책을 쓸 때도 강의를 할 때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 나 혼자 주눅 들고 자신 없어했다. 해보지 않은 영역의 것에 무조건 도전!이라고 외치면서도 돌아서서 못하면 어쩌나, 못해내면 어쩌나.. 맘 졸이고 있었다. 막상 하면 잘 해낼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나의 역량이 부족한 걸 알기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어느 지점까지 오르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것을 단축시킬 수 있는 방법은 몰입하는 것 밖에 없다. 내 맘에 쏙 드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더라도 오늘 그리고 내일 또 그리고. 한 달 두 달.. 차곡차곡 쌓인 공들인 시간은 절대 없어지지 않기에 오늘도 나는 그리고 기록하고 나만의 하루를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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