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혜진 작가 Oct 06. 2022

엄마가 첫 그림을 샀다

마흔에 첫 그림 전시회

첫 전시회가 끝이 났다. 

그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시간이 지나 보면 더 잘 알게 되겠지만, 이제 막 첫 전시회를 끝낸 내 기분은 과거의 큰 욕심 하나를 실현시킨 딱 그 정도의 마음이다. 



공동전시회라 내 그림의 비중 그리고 부담이 적긴 하지만, 특별한 일이 맞고 애쓴 일도 맞다. 몇 달 동안 매일 그림에 파묻혀 산 건 아니지만 그리는 순간만큼은 그림에 집중했다. 하나의 그림을 그리느라 똑같은 곳을 10번 칠하기도 했고 아무래도 이 색이 아니라며 어떻게 변화를 줘야 할지 많은 그림을 찾아보며 참고했다. 구도를 잡는 법이나 기본적인 그림에 대한 상식은 없지만 그림에 대한 마음은 누구보다 진지했다.



"그림을 팔기도 해? 팔면 누구 돈이야? 같이 기부하는 거야 아니면 네가 가지는 거야?"

친정에 간 김에 엄마에게 전시회를 보러 오라고 했더니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한다. 이걸 해서 딸이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일까? 

"팔지, 사겠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전시하는 그림은 다 판매가 가능하대. 만약에 팔리면 그건 내 돈이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되묻지는 못한 채 아이들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후.

"엄마가 걱정이 많던데?!"
"무슨 걱정?"

"네 그림을 얼마나 주고 사야 하는지 가격을 모르겠다고 고민을 하더라고. 다른 사람들 그림은 팔리는데 딸 그림만 안 팔리면 안 되니까 엄마가 살 거래. 근데 그림을 사봤어야 그림값을 알지~"



엄마가 그림 판매 여부를 물어본 건 자신이 나의 그림을 사주고 싶어서였다. 순간 '이왕이면 딸 첫 그림 전시회니까 기념 삼아 그림을 사주고 싶다거나 안 봐도 비디오라며 그림 잘 그렸을 테니까 내가 살 거라거나.. 이런 이유면 참 좋겠구먼' 토를 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딸 기죽이기 싫은 엄마 마음이 일단 묻어있으니까.



감사하게도 전시회에 지인들이 많이 와주셨다. 친구들, 그리고 sns를 통해 알게 된 분들, 가족까지. 이제 시작하는 나에게 응원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묻어나서 한 분 한 분 모두 감사했다. 이걸 다 어찌 갚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방문해주시는 발걸음이 귀했다. 다른 분들이 오실 때도 긴장했지만 제일 반응이 궁금했던 건 가족이었다. 워낙 평소에도 칭찬이 인색한 관계라 이렇다 저렇다 하지 않을 걸 알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왕이면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게 가족이었다.



그림을 둘러보던 아이들과 부모님, 남편, 동생. 내가 초대했는데 제일 어색함을 느끼며 전시장을 서성였다. 그때 엄마가 불쑥 봉투를 전해줬다. 

"그림 그린다고 수고했는데 용돈이야~이걸로 물감 사서 계속 그림 그려"

그 짧은 말 안에.. 수십 년 전에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딸에게 안된다고 말했던 미안함과 아이 키우면서 이것저것 해내는 딸에 대한 대견함까지 느껴졌다. 풀어서 설명하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그랬으면 전시장에서 나는 또 눈물바람이었겠지, 웃으며 건네고 받는 짧은 말 그 정도가 적당했다.



그림 4점을 그리면서 친정에 어떤 그림을 가져다 놓을까 생각했었다. 어쩌면 이 기회가 그림이라는 것에 대해 제대로 된 시작점이 될 수 있기에 상징처럼 친정에 하나 걸어두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속에 콩 찜 해놓은 그림이 하나 있었다. 이런 내 마음을 모르는 엄마는 사실 내 그림보다 옆에 걸린 다른 작가님의 풍경화를 보며 감탄을 했고 그곳에 한참을 서있으며 '나는 이 그림이 참 좋다'는 티를 왕창 냈다. 나에게 너도 풍경화를 그려보라며 추천까지 하며 말이다. 뭐- 취향은 다를 수 있으니까. 엄마의 선택과 상관없이 나는 내가 고른 그림을 선물할 예정이다.



그림을 사는 값으로 돈을 건네지 않았지만, 나는 나의 첫 그림을 엄마에게 팔았다고 생각할 참이다. 그림을 위해서 돈을 줬으니 그게 그거지 억지를 부리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미련, 시작의 원동력이 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