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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Aug 03. 2022

미련, 시작의 원동력이 되다

늘 생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인생이라고 하지만 마흔의 내가 이렇게 살고 있을 거라고 꿈에라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쯤이면 결혼은 당연히 했을 거고 집에서 애만 볼 성격은 아니니 일도 하겠지-딱 이 정도로 무난하게, 그렇게 살 거라는 느낌만 가졌었다. 지금까지 내가 상상했던 이런 모습과 실제 마흔의 나는 얼마나 닮아있을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살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많은 시간을 이런 일에 투자하며 이것을 밥벌이 그리고 취미로 하고 있을 거라고는... 나 아닌 친구, 가족 모두 알지 못했다. 그림과 글은 전공을 하거나 어린 나이부터 쌓아온 사람들만의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있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세상이 바뀐 건지, 아니면 이런 시선을 가진 적이 없어서 몰랐는지... 대학에서 전공하지 않아도 많은 시간 해보지 않았어도 누군가에게 내 글과 그림을 보여주고 공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존재했다. 몰랐던 세상을 정말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인생은 참 요상하다.




9월 말, 공동으로 열리는 전시회지만 내 그림으로 여는 전시회가 처음으로 열린다. 혼자 공간을 다 채우지 않아도 되기에 가볍게 시작할 수 있었고, 매번 작은 사이즈만 그리던 내가 20호를 채운다는 건 하나의 도전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올 거라고 예상하지도 못했는데 전시회라니-창피하게 그리지만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그림이 벽에 걸려 조명을 받으면 어떻게 보일지.. 함께 하는 분들 그림보다 너무 못 그려내지는 않았는지.. 해보지 않은 일 그리고 잘 해내고 싶은 일에 해당되는 전시회 준비로 마음이 바쁘다.



그리고 내가 품은 또 하나의 목표는 내년에 내 공간을 하나 가지고 싶다는 것이다. 나처럼 해보고 싶었지만 사정에 의해서 어린 시절 담아뒀던 그림에 대한 미련이 있거나, 취미로 그림을 배워보고 싶은 성인들에게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제 막 1년 정도 그림을 그린 내가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이 여전히 부담이지만 하나씩 욕심내지 않고.. 내년 초까지 자격증을 준비하고 집에서도 매일 그리는 연습을 통해서 이루어내고 싶다. 그림을 시작으로 그 공간에 독서, 글쓰기, 독립출판까지 더한다면 아마 나만의 차별화된 공간이 완성될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성인, 엄마, 그리고 엄마와 아이.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 공간을 오늘부터 꿈꾸기 시작했다. 



어쩌다,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이런 그림을 내가 지금 그려보고 있을까...

참 신기하다.





왜냐하면 그거를 본인이 안 한다고 스스로 선택해야 되는데 부모가 선택을 해서 하지 말라고 하면 아이는 언젠가는 하게 돼요. 언젠가는 미련이 있어요.  

-전이수 엄마 김나윤 작가-


우연히 보게 된 김나윤 작가님의 인터뷰 내용이다. 어릴 적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말을 슬쩍 꺼냈던 아이는 엄마의 한마디에 금세 그림이라는 단어를 마음에서 없앴다. 그 마음의 크기가 크지 않았다고 해도 한 번쯤 더 물어보거나 성인이 된 후에 스스로 그림을 그릴 기회를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내가 아니라 부모에 의해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 아이는 인터뷰 말대로 미처 다 떨쳐내지 못한 미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림 그리는 사진을 sns에 올렸을 때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냐는 물음이 왔다. 이 질문을 곱씹다 보니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때 시작했었다면... 아마 마흔에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을 확률이 크지만 그냥, 용기 내 물어본 그 말이 벽 앞에 막힌 것처럼 가려던 마음을 쓰윽 거둔 아이, 그 아이가 보이기 때문이다.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겠죠?"라고 묻는 질문에 절대 아니라고 굳건하게 대답을 하면서도 남아있는 미련 덩어리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미련은 내가 볼세라 그리고 속상할세라 더 깊이 숨어 지냈을지 모르겠다. 이제 나는 그 미련에게 그만 나오라고 이야기했다. 마음 편히 떠나도 된다고, 지금부터는 미련 남지 않게 해 나가겠다고 말이다. 이제라도.. 50에 개인전을 여는 사람으로 살아보려 한다. 이제는 물러나지 않고, 미련을 남기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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