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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Jan 16. 2023

거부감에 자신감 한 스푼

넘을 수 없는 벽은 없다

아크릴화만 그리다가 얼마 전부터 수채화에 도전하고 있다. 공방을 마련해서 함께 그리자고 말하려니 아크릴화 하나로는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어떤 걸 추가해 볼까.. 아이패드로 디지털 드로잉? 아니면 오일파스텔? 해본 적이 있는 것들 중에 선택을 해야 조금 쉽게 시작할 수 있겠다는 잔머리가 발동했다. 




"수채화 어때요? 수채화 하면 좋아요~"


고민하는 나에게 선생님이 이렇게 얘기하는데 갑자기 가슴이 돌이 하나 턱! 얹히는 기분이었다. 수채화를 그리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러웠다. 그리는 과정을 잘은 모르지만 완성작품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섬세하고 여려서...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내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라고 해야 할까. 




핑크색의 느낌이 너무 여성스러워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착각했던 것처럼, 수채화도 그런 느낌이었다. 성격도 급한 내가 한 겹 한 겹 물감을 쌓는 작업을 할 수 있을까. 마르는 작업을 천천히 기다려야 하는데 섣불리 손댔다가 한 부분 때문에 전체를 망쳐버릴까 봐 '그건 내 것이 아니야' 시작하기도 전에 선을 긋고 있었다. 아크릴화는 실패해도 덮으면 그만이라 맘 편하게 그릴 수 있는데, 수채화는 옅은 부분을 덮어버리면 그냥 끝이다. 아 무서워.




그래도 해야 한다. 하는 게 좋다.

일단 해보자 싶었다. 당장 내가 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잘 그리는 사람이 꼭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내가 좋아하는 한 문장을 캘리로 쓰고, 그 옆에 가볍게 수채화로 작은 그림 하나 그릴 수 있을 정도로만 배우면 되지- 무조건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대치를 최대한 가볍게 만들었다. 




너무 어려워요.

예상했던 대로 시작부터 계속 이 말이 입에서 자동으로 나왔다. 진짜 어려운 건지 아니면 시작점에서 만들어버린 벽 때문인지 매주 수업시간마다 나도 모르게 한숨도 함께 등장했다. 두려운 존재. 붓에 물감을 얼마나 머금느냐에 따라 순간적으로 그림이 실패로 가는 일이 계속되었고, 감을 잡을 수나 있을지 답답했다. 예민한 녀석. 급하고 덜렁대는 나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이 녀석을 잘 다루는 일은 예상대로 쉽지않았다. 




"이제 감을 좀 잡은 것 같은데요?"

1주, 2주..

수채화를 시작한 지 3개월이 다되어간다. 그리고 실패하기를 반복하고 있는 사이 조금씩 수채화와 친해지고 있나 보다. 지난 시간 동백꽃을 그리는데 왠지 그날따라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다롭다고 생각했던 표현이 매력 있다고 다가오는 순간, 그 타이밍이 찾아왔다. 

'오- 이 정도면 잘했네'

혼자 속으로 생각하는데 선생님도 그렇게 느꼈는지 감이 잡힌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렇죠? 기대치가 없어서 그런지 이만큼 그린 것도 대견해요"

이렇게 배우다가 결국 나는 못하겠다는 말로 마무리 지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다. 해봤지만 못하는 것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 이것이 그 영역이 될 수 있다고 시작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쌓인 시간은 어디 안 가'이 말이 진리로 또 한 번 증명되는 순간이 왔다. 이걸 내가 해내다니-




동백꽃 그림을 하나 들고 그 어느 것을 얻었을 때보다 기분이 좋았다. 넘을 수 없는 벽을 하나 넘은 기분이랄까. 여전히 잘 그리지 않지만 거부감만 가득했던 존재에 자신감이라는 맑음이 추가되었고, 이것은 강력해서 전체를 물들일 수 있다. 가능성을 맛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틔이는 것 같았다. 




아크릴화 / 수채화

아크릴화와 수채화는 정반대의 표현법이다. 속도, 표현법, 감성, 색감..어느 하나 닮은 구석이 없다. 그림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지만 말이다. 한 가족이지만 성향이 완전히 다른 개인들처럼 이 2가지 기법 또한 각자로 존재한다. 




어떤 것이 진짜 나에게 맞는지 그리고 내가 그렸을 때 표현하기 좋은지는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반감이 가득했던 영역이 편안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성취감이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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