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일 때 몰랐던 일들
생각지도 못하게 갑자기 개인전시를 열게 된 덕분에 하루 중에 잠자는 시간 빼고 제일 많은 시간을 그림 그리는 일에 쓴다. 딴짓도 좀 하고 한량처럼 햇살 맞으며 산책도 좀 하며 수업이 없는 시간을 자유롭게 즐기기도 하는데, 전시 날짜가 잡힌 이후로 마음에 여유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다.
좋아하는 일이 취미일 때는 참 좋았다. 잘하고 싶은 마음보다 그저 즐기며 그렸기에 그 순간이 행복해서 좋았다. 또 이걸로 돈도 벌게 되니 그것 또한 좋았다. 그림을 전공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그려낼 수 있냐며 놀라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고, 이건 재능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나의 재능을 확인받는 것도 좋았다. 그러고 보니 그림이 취미일 때는 다 좋았다.
그런데 뭐든 일이 되고 업이 되면, 흥미가 떨어지는 걸까.
현재 나는 마감날짜도 있고 전시주제도 있으니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그릴 수가 없다. 잘 그리고 싶다는 욕심이 올라올 틈도 없이 '1주일에 2점 이상 완성'이라는 계획을 맞추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 조금 더 큰 사이즈에 뽀대 나게 하나쯤 그리고 싶은데 그럴 시간은 없어 보이고, 적당한 사이즈 캔버스만 찍어내듯 그려낸다.
작은 갤러리지만 그것조차도 다 채울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쫓겨 밤마다 꿈을 꾼다. 머리만 대면 바로 잠이 드는 내가, 얼마나 잠을 푹 자는지 꿈을 1년에 1-2번 꿀까 말까 한 내가 말이다. 심리적으로 부친다는 신호를 알아채고는 주말에도 짬을 내 그림을 그리러 공방으로 나온다. 토요일에 하루 종일 일정이 있었다면 일요일 오전이라도 아이들이 깨지 않은 시간에 출근했다. 그래야 마지막에 내가 진짜 애를 썼음을 스스로 인정할 것만 같아서-
이게 화가의 삶인가. 이제 막 작은 개인 전시를 여는 내가 1달도 채 안된 시간 동안 경험해 본 화가, 그림을 없으로 하는 생활은 상상보다 버겁다. 그들의 하루를 살아보는 중인데, 벌써 존경스러움을 느낀다. 아트페어에 가서 작품들을 구경하며 옆에 붙은 가격도 함께 보며 '헉' 했었다. 그림 한 점에 이렇게나 많은 돈을 지불하고 사야 한다는 사실에 놀랐었다. 그냥 금액만 보고 말이다. 이렇게 내가 그림만 그리는 삶을 살고 있으니 그 가격이 딱 캔버스 그림에 대한 값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스케치 기획에 들어간 시간, 모든 주파수가 그림에 맞춰져 진 생활, 어떤 색이 어울릴까 수십 번 덧칠한 시간들, 감당해야 할 압박과 스트레스까지. 2시간짜리 강의를 한다면 그 강의에 대한 강의료는 그 시간을 위해 준비하는데 든 몇 배의 시간과 정성까지 담겨있는 것과 같은 계산말이다.
오늘도 오늘 몫의 그림을 그려낸다.
그저 지금 내가 할 일은 스트레스를 받는데 집중할 게 아니라 오늘의 그림 몫을 해내는 것 그것뿐이이다.
혹시 누가 알까.
지금 힘들다고 말하는 과정들도 지나고 나면 좋았다며 이것도 업으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