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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Aug 29. 2023

관심이 없어서 못한 거지,

인테리어 회사를 다녔지만 인테리어 똥손

대학시절, 남몰래 실내디자인(인테리어) 학과를 흠모하며 그 과의 과목들을 야금야금 듣곤 했다. 실내디자인(인테리어) 학과의 과목들은 특수성이 다분하기에 학과생 말고는 찾아볼 수 없었는데 그 틈에 내가 있었다. 같은 과 학생들이 수다를 떠는 교실 안에 나만 덩그러니 앉아 수업에 참여했다. 그것도 난이도가 높은 도면을 그리는 내용의 수업을 들으면서.



직선으로 되어있고 군더더기 없이 직각으로 이루어져 있는 도면. 사이즈도 딱 떨어지는 작업이 꽤 매력 있었다.

캐드라는 프로그램으로 치수에 맞게 공간을 그리고 벽을 만들고 문을 넣는, 감각과는 아주 상관없는 작업이 좋아서 인테리어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3학년말에 휴학을 하고서 실내건축기사 자격증 시험을 치기도 했다. 그 자격증이 있어야 취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기어코 자격증을 땄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인테리어 회사에 취직을 했다.



보통 인테리어 일을 한다고 하면 색감에 대한 센스 또는 감각이 뛰어나거나 집 꾸미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 집도 그저 있어야 하는 장소에 가구와 물건이 있는 그 정도로 채워져 있다. 신혼시절 엄마가 사다준 지극히 엄마의 스타일이 담긴 인테리어 용품도 아직 잘 사용하고 있다. 트렌드에도 전혀 관심이 없어서 누가 뭘 사다 주어도 용도에 맞게 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에는 요즘은 흔하게 하는 기본 인테리어도, 사진이 잘 나오는 조명도 소품도 없다. 그저 사람 사는데 필요한 것들이 있는 집으로 꾸며져 있기에 어디 가서 예전에 그런 일을 했다고 말하기도 부끄럽다. 



그런 내가 공방을 꾸몄다고 한들 얼마나 잘해놨을까. 


내 공간을 마련하면서 최소한의 비용을 쓰려고 애썼다. 지속해나갈 일이지만, 이미 보증금으로 목돈이 나갔기에 공간을 채워 넣는 일에는 아끼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나에게 미션은 단 하나였다. 채워 넣으면서 얼마나 적게 쓰느냐. 인테리어는 똥손이라 콘셉트도 모르겠고 그저 당장 수업에 필요한 것들을 일단 주문했다. 물감, 캔버스, 이젤, 책상, 의자, 컵, 커피 등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하나씩 주문하며 공간을 채워나갔다. 




"우리는 상업공간을 운영하고 있잖아요. 인테리어도 중요한 부분이에요"



요즘 수업 사진, 공방 사진을 찍으며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바로 공간이 비어 보인다는 건데, 15평이라는 이곳은 생각보다 넓었다. 싱크대와 아일랜드가 있는 벽은 활용도가 떨어져 비워두기도 채우기도 어중간하고, 책상 2개와 이젤이 놓인 메인 공간도 무언가 비어있는 느낌이 들던 찰나였다. 



지인과 만나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분도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인스타에 사진을 보면서 자신도 그 생각을 했다면서 말이다. 함께 점심을 먹으러 온 이 브런치 카페를 보라고, 어느 한 벽도 그냥 내버려 둔 곳이 없다는 말도 함께 했다. 그제야 찬찬히 브런치 카페를 눈으로 돌아보았다. 이 벽은 선반과 거울로 포인트를 주었고 테이블마다 조명을 떨어뜨려놓은 것도 보였다. 이 의자도 그냥 둔 게 아니라는 지인의 말에 머릿속이 멍해졌다. 



나는 낮에 전기세 아낀다고 스탠드 조명도 꺼놓고, 시작할 때 비용 아낀다고 큰 가구는 책상과 테이블 하나만 장만했다. 내가 올리는 사진들이 모두 이곳에 오고 싶은 모습을 지니고 있어야 공방을 찾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창업 4개월 만에 알게 되었다. 비용을 아끼느라 내가 놓친 큰 부분을.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오늘의 집'에 들어갔다. 자랑하듯 올려둔 잘 꾸며놓은 공간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어떤 것들로 채워져 있는지 하나하나 눈에 담아보았다. 인테리어 사진을 이렇게 진지하게 보는 건 정말 처음이었다. 그러고는 당장 필요할 것만 같은 가구와 소품을 장바구니에 몽땅 담았다. 모아놓고 고르면 되니까 눈에 보이는 대로 그냥 넣었다. 새벽이 되었고 나에게는 장바구니에 40개가 넘는 아이템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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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와는 거리가 멀면서 도면작업을 좋아해 인테리어 회사를 다녔던 나. 집 꾸미기에는 관심이 1도 없는데 이젠 내 공간이 생겨 제대로 정말 인테리어를 조금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돌고 돌아 또 인테리어라니. 내가 당장 잘 해낼 거라 생각하지 않지만 보여주는 일을 하는 이상 꼭 가져야 하는 능력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한숨을 쉬며 이렇게 위안을 삼아 본다

'관심이 없어서 못한 거지, 하다 보면 이것도 내 능력이 되겠지?'

누구한테 묻는 건지 모르겠지만 물음표로 끝나는 자기 위안. 이제라도 더 편안하고 포근한 나담스튜디오 공간이 되도록 다른 이의 공간 사진을 매일 쳐다보며 대입해 봐야겠다. 



내 일을 해나간다는 건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을 해내야 하는 큰 숙제를 안고 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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