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원데이 클래스 예약하신 분이 공방에 오셨 다. 친구 사이 수강생 2분이 수다 떨며 그림을 그리는 타임이라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새로운 분이 인사를 하며 쭈뼛거리며 들어오셨다.
50대 초중반쯤 되셨을까 짧은 머리를 한 여성분이 오셨고 기존 수강생분들과 떨어진 자리로 안내해 드렸다.
공방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어른이 돼서 그림을 그려본 적 없다고 말씀하신다. 학창 시절에 그림일기를 그린 경력이 전부라고, 그러니 붓을 잡아본 기억도 없을 정도라고 말이다. 자신은 똥손이라고 얘기하시는 분이 99% 일만큼 일단 못한다고 선전포고를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처음에는 찰떡같이 믿던 말이었는데, 이제는 캔버스에 붓칠 한 번 휘게 하는 폼만 봐도 안다. 그 오래된 왕년에 그림 그리던 분인지 진짜 똥손인지 말이다.
자리에 앉은 분에게 따뜻한 차를 한 잔 내어드리고는 오늘 그릴 그림을 선택하게 해 드렸고, 스케치하는 방법도 알려드렸다. 그러곤 잠시 기존 수강생의 그림을 봐주고 돌아오니 우와, 그림을 곧잘 그리셨다. 그냥이 아니라 많이.
채색에 들어가니 손도 빠르시고 붓칠도 예사가 아니었다. 분명 붓을 잡은 게 30년도 넘었다고 하셨는데...
칭찬을 마구 쏟아내며 슬쩍 말을 걸어 수다를 떨다 보니, 동양화를 전공하셨다고 했다. 내 예상이 맞았다.
전공 후 아이들을 가르치는 미술학원을 오래 운영하시다가 몸이 아픈 바람에 쉬게 되셨다고. 이제는 아이들 말고 어른을 대상으로 이런 그림공방을 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이곳이 분위기도 좋고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느낌이라 어떻게 운영하는지 보고 싶어서 왔다는 사심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으셨다.
사실, 나는 요즘 고민이 많았다. 이제 공방을 한 지 1년이 다돼 가는데 생각보다 북적이지도 않고, 생각처럼 벌이가 되지도 않기에 이곳을 이어나갈 방향을 다시 모색 중이었다. 더 적극적이어야 더 강단 있게 해야 자리를 잡을까 싶은 마음이 컸는데, 안정적인 느낌이라니ㅡ 단단하게 잘 다져가는 중인데 내가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지 아니면 SNS에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잘 보여주고 있는지 알 수가 없지만 그 말이 묘하게 고마웠다.
그림을 전공하지도 않은 사람이 그림을 전공한 사람에게, 이제 막 1년 차 공방 시장님이 오랫동안 아이들 미술학원을 운영한 사장님에게.. 오지랖이 발동한 탓에 웃긴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림을 완성하고서 창업상담이라고 해야 할까, 한참을 서서 이곳에 대한 내 나름의 고충과 좋은 점 등을 나열하며 들려주었다. 나보다 충분히 잘해나가실 분이 고민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기 때문에 잘 해내시리라 응원을 해드리고 싶었다.
이곳을 저런 이유로 궁금한 사람도 있구나 신기하면서도 잘 해내고 있다는 의미 같아서 그 수다를 통해 나도 힘을 얻었다. 누군가 이 공방을 볼 때 잘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 또한 좋았다.
고민이 깊어질 때쯤
나타난 수강생.
덕분에 또 나아갈 힘을 얻었다.
부디 그분도 나도 지속해 나가기를, 잘해나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