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만으로도 든든해
"몇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진짜 난리였다, 난리. 내 얘기 좀 들어봐 봐"
그거 알아?
너와 통화만 하면 나는 말문이 터져.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게 참 신기해.
언제부터 우리가 친해졌는지 정확한 년도와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초, 중, 고를 함께 나왔다. 물론 같은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다 친구가 아니고, 초1부터 쭉 친하게 지낸 건 아니지만 과거의 기억이 흐릿한 내 머릿속에서는 초등 고학년쯤? 중학생 때 쯔음? 이 친구와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 같다.
성향이 비슷한가 다른가 뭐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조차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성인이 되고 42살 현재까지 이 아이는 나의 절친이다. 자매처럼 투닥거리고 울고 웃고.. 그런 장면들이 수천 개쯤 되는 우리. 이제는 서운함 조차도 느끼지 않는 우리가 이 나이가 되어서도 그러고 있다는 게 그저 웃기다, 솔직히 사실 많이 좋다.
3월에 집을 이사했고, 그러고 바로 공방과 관련되어 안 좋은 일을 겪었다. 이사를 잘못한 건가, 이 집이 나랑 안 맞나- 처음 겪는 골치 아프고 화나고 억울한 일 앞에서 괜한 이유로 트집을 잡곤 했다. 이사하느라 며칠을 피곤했고 이러다 더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일을 접어야 하나 등 몸도 마음도 힘든 시기였다. 이제 막 1년이 된 이곳과 나의 안위를 걱정하느라 매일같이 뒷골이 당겼다.
드라마에서 갑자기 화를 내며 뒷목을 그렇게도 잡던데 3월 중순부터 4월까지 제법 긴 시간 동안 내가 그렇게 지냈다. 밥 먹다가도 일하다가도 그 일에 대해 생각하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머리끝까지 열이 올랐고 한숨이 저만큼 쉬어졌다. 덕분에 뒷목을 주무르는 시간이 늘었었다.
강의하러 운전하며 가는 길, 날이 너무 좋아 친구가 생각이 났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그 일들을 이제는 조금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 때쯤, 친구와 몇 달 만에 통화를 했다. 그동안 나에게 있었던 일을 우르르 쏟아내고 나니 입이 아플 지경이었다.
"가만있어봐, 너 생일은 내가 알고 태어난 시는 언제야?"
뜬금없이 사주팔자를 봐주겠다며, 풀이를 잘은 모르는데 대충 봐줄게 라며 저녁 8시에 태어났다는 내 말을 끝으로 친구는 전화를 끊었다.
너는 토가 많으니 땅을 사라고,
oo살이 많은 거 보라고, 너는 호랑이 3마리가 지켜준다며
부지런한 것도 여기에 나온다며
너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며
다만 욱하는 것만 좀 고치자고
아무 걱정 말라고
다시 전화가 와서는 아주 대충이지만 나에게 힘 되는 말만 쏙쏙 해주었다. 사주팔자, 명리학을 공부하는 친구가 아니기에 지금 듣는 해석이 진짜일 확률은 적을 것이다. 그래도 아무 상관이 없다. 나는 그 짧은 몇 마디에서 또 잘 살아갈 힘을 얻었으니까.
지금 네가 겪은 일이 큰 일 같지만 이건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이 계기로 더 성장할 거라는 해석 덕분에, 나를 지켜주는 호랑이가 3마리라는 사실에, 그리고 제일 중요한.. 이렇게 지금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입이 찢어지게 웃을 수 있었다.
아주 든든해, 나에게는 너와 호랑이 3마리가 있으니까.
고맙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