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올해는 캠핑장 예약만 해두면 비요정이 나타난다. 1달 전쯤 미리 날짜를 잡고 캠핑장을 찾아 예약을 해두는 거라 일정을 짜는 당시에는 날씨 확인을 할 수가 없는데, 떠날 때가 되면 어김없이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다. 올해는 유별나게 그렇다. 그러고 보니 해외여행을 갈 때도 비가 왔다.
비가 와도 캠핑을 가면 잘 지내다 오긴 하지만, 불편함이 있는 건 당연하다. 남편과 나는 '음..' 하며 어쩔까 고민을 했지만 아이들은 단호하게 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미 며칠 후면 캠핑을 간다는 사실을 아는 아이들에게 비가 와서 취소를 하자고 설득하기는 쉽지 않고.. 이미 우중캠핑을 몇 번 해본 아이들은 오히려 비 오는 날을 반기기도 한다.
"엄마, 비가 오니까 더 특별한 거야! 꼭 가야 돼! 가고 싶어!"
그래 뭐.. 특별하긴 하지.
비가 오는 날이면 베란다에 가서 캠핑의자를 손수 펼쳐두고 앉는 아이. 한겨울 추워도 빗소리를 듣기 위해 창문을 열어놓고 이불 하나 꺼내 덮는다. 그러곤 자신이 마실 음료도 가져와 노래를 흥얼거리고 책도 읽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그렇지. 저런 모습을 보여주며 키웠지.'
-
어린아이 둘과 집에 있을 때 비가 오는 날이면 나갈 수가 없었다. 그날이 휴일이면 더욱 1일 1 놀이터는 기본인데 집에만 있으니 내가 너무 힘들었다. 날은 흐리고 아이들의 에너지는 넘치고.."우비 입고 우산 들고 밖에 나가볼까?" 이 한마디에 우리의 우중 나들이는 시작되었다.
우비 입고 장화신기고 작은 우산도 들게 하고.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비를 맞으며 놀러 나간다.
어른들은 피해 다니는 물웅덩이를 아이들은 일부러 찾아다녔다. 나는 에둘러가는 그 웅덩이를 아이들은 굳이 찾아가는 명소 같은 곳. 금지된 곳이라고나 할까. 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어른과의 차이를 그날도 또렷하게 발견했다. 작은 웅덩이, 큰 웅덩이를 번갈아 찾으며 어디가 더 물이 잘 튀나 둘이 상의하며 누나가 발견한 곳 한 번, 동생이 발견한 곳 한 번. 멀리 나갈 것도 없이 아파트 단지 안에서 만난 물웅덩이에서 한참을 놀았다.
장화를 신었지만 이미 장화 안으로 물이 들어 제법 무겁고 발도 찼을 텐데 아이의 첨벙거리는 발은 신이 낭보였다. 우산도 어느덧 무거워 바닥으로 떨어진 지 오래되었지만 우비를 입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감기 들까 봐 걱정이 되고 말려야겠다는 마음보다 그냥 웃음이 났다. 너무나 자유로워 보이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행복이었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참 싫어했다. 남편은 비 오는 날의 감성을 좋아하던데, 나에게는 그저 신발과 옷이 젖는 찜찜함으로 다가왔다. 출근 버스에 타면 옆 사람의 우산이 나에게 붙는 상황, 집을 나설 때 비가 최대한 새지 않는 신발이 뭘까 고민하는 시간들이 모두 번거롭고 탐탁지 않았는데 아이들 덕분에 비 오는 날이 조금씩 좋아졌다고 할까.
-
"그래, 뭐 비가 와도 가는 거지. 우리가 뭐 언제 화창한 날만 캠핑을 갔어?"
남편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비예보를 안고 우리는 캠핑을 떠났다.
텐트를 피칭할 때 비가 많이 오지 말기. 그리고 텐트를 걷기 한두 시간 전에 햇빛이 나서 텐트를 말리고 집에 올 수 있기. 그 와중에 이 2가지 희망은 버리지 못한 채 말이다.
하늘이 내 말을 제대로 이해 못 한 걸까. 어른들의 소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캠핑장에 도착하기 1시간 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텐트를 걷을 때 비가 그치긴 했지만 텐트가 마를 정도의 화창함은 아니라 젖은 텐트를 그대로 접에 집에 가져왔다. 날씨가 뭐 내 마음대로 될까.
비가 와서 아이들이 뛰어노는데 방해가 되는 부분은 있었지만 우비 입고 캠핑장 옆 나무에서 떨어진 밤송이와 밤을 잔뜩 주웠고, 밖에서 많이 놀 수 없으니 실내에서 둘이 부둥켜안고 레슬링 하며 노는 시간이 많았다. 비가 오는 날은 또 비 오는 날대로 아이들은 재미있는 놀거리를 찾았다.
아이들이 커서 비 오는 날에 캠핑을 떠올리면 좋겠다. 화장한 날도 기억하면 좋겠지만 그것보단 비 오는 날 와닿으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비가 오면 나처럼 찝찝하고 번거로운 날씨라고 생각하지 않고 비 오는 날도 그 나름의 추억과 좋은 기억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