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선생님이 되었다.

"선생님!"매주 한 번, 아이들이 나를 이렇게 부른다.

by 우혜진 작가

"선생님!"

"선생님!"

매주 한 번, 아이들이 나를 이렇게 부른다.



글쓰기 강의를 시작한 건 21년부터였다. 책을 써 작가가 된 일을 계기로 작게나마 독서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열었고, 그 시간이 쌓여 글쓰기 수업 요청이 들어왔다. 우연히 글을 써 책을 내게 되었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글쓰기 비법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 제안을 단번에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직업을 갖고 싶어서 그냥 글을 써 내려갔던 시간들을 찬찬히 되새겨보았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글쓰기 비법을 적용하지 않았더라도 나만의 쓰기 방법이 하나 정도는 있지않을까 하고 말이다. 내가 쓴 글들은 글쓰기보다 책 쓰기 기술로 이루어진 면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쓰는 동안 나만의 방식이 있었음을 발견했고, 그렇게 도서관과 평생학습관 등에서 어른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하게 되었다.


글쓰기 강사로 산 지 4년을 채웠다. 그동안 거의 매달 글이라는 매개체로 사람들을 만났고 친밀감을 형성하게 되었다. 함께 쓸 때는 그만큼의 밀도가 높아졌고 지금은 보지 않는 사이더라도 그 사람의 글이 가진 느낌은 아직도 남아있다.


'어른들과 글을 많이 썼으니 아이들과 써보는 건 어떨까.'

함께 하는 대상이 바뀐다는 건 도전이다. 같은 주제로 수업을 하더라도 아이와 어른은 분위기부터 이해하는 능력까지 모든 것이 천지차이 아닌가. 일상의 글을 쓰고, 하나의 주제로 책 쓰기를 하고, 자신의 일대기를 자서전으로 엮으며 함께 하던 어른이 아닌 초등학생들을 만나겠다고 결심하는 일은 처음 글쓰기라는 수업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시기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들과 글을 써보고 싶었다. 이 좋은 글쓰기를 어릴 때부터 누려야 한다고 믿고 있으니 말이다.



초등학교 방과 후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의 도움으로 작년 말 방과 후 선생님이 되기 위해 서류를 넣었다.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도 없는 초짜 독서논술 선생님이라 서류통과도 쉽지 않았다. 10군데를 넣으면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오는 곳은 고작 2,3군데가 될까 말까였다. 어렵게 면접을 보러 가서도 면접자 3명 중에 내가 뽑힐 확률은 거의 제로 상황이었다. 아무렴, 나 같아도 경력 많은 선생님을 쓰겠다 생각하고 보니 면접에서 탈락하는 날에도 힘이 빠지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여러 군데 떨어져도 결국 한 곳만 붙으면 되는 거니까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또다시 지원을 했다.


경력만렙 선생님들은 빠르게 자신의 학교를 결정했고 많은 학교들이 자신의 방과 후 선생님을 선택하고 난 후반기. 학생수가 비교적 작은 학교들은 경력만렙 선생님들이 선호하지 않으니 재공고까지 내면서 아이들을 만날 방과 후 선생님을 찾고 있는 시기, 채용 막바지쯤 감사하게도 어느 작은 학교에 합격을 했다.

초보인 나에게 학생수가 많은 학교는 부담이 되기에 작은 규모가 딱이었다. 그리고 집에서도 가까우니 금상첨화. 전교생수가 적으니 방과 후수업을 신청하는 아이의 수가 적어서 나의 주머니가 두둑해지지는 못하지만, 경력을 쌓으면서 조금이나마 돈을 번다니 이것보다 좋은 게 어디 있나 싶다.


7명의 아이가 나의 첫 학생들이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이 독서논술을 들으러 교실로 온다. 어떤 아이들을 만날까, 나는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주어야 할까. 많은 걱정과 설렘이 가득한 초보 선생님이 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