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처음인 이 곳

나의 첫 수업을 함께 해주어 고마웠다.

by 우혜진 작가

드디어 3월, 그중에서도 첫째 주 목요일이 되었다. 머릿속으로는 여전히 그려지지 않는 초등학교 방과 후 첫 수업 날이 왔다.


오전에는 공방에서 그림책 수업을 끝내고 나니 학교에 가야 할 시간까지는 20여분 정도가 남았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가야 할 것 같은데 밥을 먹기엔 시작이 너무 적어 김밥 한 줄을 입에 밀어 넣었다.

원래 아이들 방과 후 수업은 1시 40분에 시작하지만, 개학 첫 주간에는 학교 수업을 5교시가 아니라 4교시로 진행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의 수업시작 시간도 자연스럽게 당겨졌고, 더구나 1학년은 학교도 수업도 처음이라 오늘은 1학년 교실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것까지가 오늘의 내 역할이었다.


초등학교 교실은 첫째 아이가 입학할 때 거의 30년 만에 가보게 되었다. 그날 이 작은(아이에게는 어쩌면 큰) 교실에서 내 아이가 하루를 보내겠구나, 많은 것들을 배우겠구나, 선생님과 친구들과 시끌 복작하게 지내겠구나 싶은 생각을 했었다. 학부모로 교실 제일 뒤에 서서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반대로 내가 교실 앞에 서는 사람, 선생님의 입장이 되었다. 완전히 다른 입장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생각의 방향 자체가 달라졌다.

칠판 앞에 서 빈 책상들을 보고 있으니 어떤 아이가 올까. 6학년도 수업을 신청했던데 6학년은 어떤 존재일까. 수업시간에 형아를 방해하는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알려줘야 할까. 학부모의 입장, 아이의 입장, 선생님의 입장 3가지의 역할로 머릿속이 계속 변신을 거듭하다 급기야 머리가 멍해졌다.


이제 나는 1학년 지수(가명)를 데리러 가야 한다.

1학년, 우리 집 둘째도 올해 1학년이 되었다. 이 아이들이 학교라는 크고 낯선 공간에 아직 적응도 못했을 걸 생각하니 빨리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들과 같은 나이의 여자아이라니- 얼굴을 보지 않았지만 벌써 왠지 모를 친근감을 느꼈다. 내 아이를 만나러 가는 설레는 기분으로 지수를 데리러 가다 보니 2층에 순식간에 도착했다.


"여기 지수 있어?"

벌써 급식도 마친 교실, 반 이상의 아이들이 벌써 어디론가 떠나고 난 뒤였다.

"얘가 지수예요!"

한 명에게 묻자 바로 지수를 찾을 수 있었다.

지수가 너구나-


"오늘 독서글쓰기 수업 듣는 거 맞지? 글쓰기 교실로 가자~필통만 챙겨 와"

작지만 빠른 걸음으로 가방에서 필통을 꺼내 손에 쥐고 교실을 나온 지수. 뽀얗고 조금은 긴장한 듯한 지수의 손을 꼭 잡고 2층에서 5층으로 올라갔다. 손을 놓으면 이 아이를 잃어버릴세라 출발부터 도착까지 아이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처음 만나는 어른인데 고맙게도 손을 내어주는 모습을 보니 내가 얼마나 낯설까 싶어 내 이름도 말해주고, 우리는 지금 책도 읽으러 가는 거라고, 너는 책 읽는 거 좋아하냐며 계속 질문을 던져 아이를 안심시켰다. 하나도 안 떨리는 어른인 척.


사실은 아이의 손을 잡은 것도 계속 말을 한 것도 모두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나도 너도 이곳이 아직 어색하고 낯선 상황이니 서로 의지하자는 마음으로 손을 잡았다. 처음 만났는데 조용하면 어색하니까, 그래도 내가 어른이니까 말을 먼저 걸어야 한다는 약간의 의무감으로 어색하지 않고 싶어서 질문을 만들어서 했다. 이 조그만 손에 의지해 조금 덜 긴장해 보려고.


'어머니, 지수 방과 후 독서논술 교실에 잘 도착했습니다.

1학년이라 걱정하실까 봐 연락드려요'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지수 어머니께 문자를 드렸다. 방과 후교사가 처음이라 이런 연락까지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순간 나는 선생님이 아니라 학부모였다. 같은 1학년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선생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는지, 교실은 잘 찾아갔는지 등 무척이나 궁금하고 신경이 쓰인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나의 레이더는 온통 학교에 있다. 더구나 학교에 온 지 이제 2일 차가 아닌가. 아이가 핸드폰도 없을 테니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로 걱정 잠재우기 수십 번 했을 딱 그 타이밍이다.


이번 주만 당겨진 수업이라 1학년 지수만 첫 1부 수업을 나와 함께 했다. 원래 말수가 적은 지 아직은 부끄러운지 책을 읽고 짤막한 글을 쓰는 내내 지수는 1학년 같지 않은 차분함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서로의 이름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기록했다.


학교에 온 아이는 이제 자기를 소개해야 하는 기회가 많다. 몇 학년 몇 반 누구누구. 지나가는 어른들이 몇 살이냐, 어느 학교 다니냐고 묻기도 한다. 처음 만난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학생 수가 많지는 않지만 이름만으로 아이를 외우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 우리 가족소개 등 이름 외 다른 방법으로도 아이를 인식할 수 있다. 그것이 더 빠르게 각인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4교시 수업이 끝난 후 또 책상에 앉아있는 것이 힘들기도 할 텐데 지수는 40분 동안 반듯하게 수업에 임했다. 수업 종료 종이 울리자 젤리를 하나 건넸다. 자세가 바르지 못할 때 당근으로 쓰거나 수업을 아주 열심히 함께 했을 때 보상으로 쓰려고 챙겨갔는데, 첫 젤리를 후자의 경우에 쓰다니-지수 덕분에 출발이 아주 좋다. 1학년인데 어쩜 이렇게 글자를 또박또박 쓰는지. 집에서는 그렇지 않더라도 이곳에서는 글자를 바르게 써야 한다는 걸 벌써 아는 지수였다.


이제 8살, 처음으로 학교라는 큰 공간에 온 아이가 나의 첫 수업을 함께 해주어 고마웠다. 꼭 잡아준 손, 속삭이듯 그렇지만 정확하게 해 준 자신의 이야기, 재미있었냐고 묻는 나의 말에 진짜 재미있었다고 답해주는 것까지- 조그마한 아이는 큰 어른에게 많은 것을 주고 다음 교실로 이동했다.

지수가 남겨놓고 간 따스함 덕분에 그다음 시간도 그다음 시간도 수업을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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