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상어를 잘 그리고 싶어요
"저, 그림 배울 수 있나요?"
공방을 오픈하고 몇 달이 지난여름, 우리 엄마 나이쯤으로 보이는 어머님 한 분이 공방 문을 빼꼼 열고 들어오셨다. 운동복 차림에 커트머리. 왠지 씩씩해 보이는 어머님은 그림을 배울 수 있는지 물어보셨다.
"아이들 가르치는 곳인가요? 손자가 있는데 아기상어를 그려달라고 하는 거야~그런데 사진을 보고도 따라 그릴 수가 있어야지.. 이게 상어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그릴 실력이 되면 되는데, 내가 진짜 그림을 못 그리거든요. 나 같은 사람도 배울 수 있을까요?
옆에 미용실 다니는데 몇 번 지나가다가 봤는데, 한 번 가봐야지 해놓고 마음먹기까지 시간이 걸렸네요 "
많은 나이에 그림을 배우러 오는 게 어색하셨는지 어머님은 그림을 배우고 싶은 이유와 자신이 정말 똥손이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셨다.
"그럼요. 나이는 상관없어요~저는 2시간씩 수업을 하고요, 수강료는 00이에요"
"아~나는 하루에 2시간도 필요가 없어요. 이 나이에 그림 잘 그려서 할 것도 없고 그냥 꾸준히 하면서 누가 내 그림보고 뭘 그렸는지 알아볼 수만 있으면 되니까 1시간씩만 와서 하면 안 될까요?"
공방의 프로그램은 모두 2시간으로 짜여있다. 작은 캔버스라고 해도 완성도 있게 그려내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에 1시간은 빠듯하다. 더구나 초보자인 경우, 아크릴 물감과 표현하는 방식에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하기에 2시간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더구나 손이 느리거나 꼼꼼한 분들은 3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 갑자기 1시간을 제안하셔서 순간 당황을 했다. 그러면 수강료는 어떻게 책정해야 하지..?
초보 사장은 당황했지만 한 명의 수강생도 놓칠 수 없기에 원래 수강료의 반으로 어머님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 매주 목요일 10시면 지각 한 번 없이 공방에 오셨다. 손주가 그려달라고 했다던 아기 상어도 그려서 선물하고, 뽀로로도 덤으로 그리고, 태어날 손녀에게도 그림을 선물하셨다. 오실 때마다 대화를 이어 나가 보니 그림에 대한 갈증이 생각보다 크셨다. 문화센터나 도서관에서 하는 그림수업도 많이 참여해 보셨는데, 초보도 가능하다고 해서 가보면 막상 대다수의 수강생들은 초보가 아니라 실력자들이 많았고 그렇다 보니 수업도 그 눈높이에 맞춰 진행이 되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1대 1 수업이 아니라 10명 이상의 수강생들과 강사 1명의 구도에서는 한 명 한 명 그림을 친절하게 봐주기가 어렵기 때문에 정말 초보인 어머님에게 손길이 오기 여의치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자신에게 집중해 주고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는 공방이 좋다고 하셨다.
"선생님, 내가 여기 다닌 지 1년이 됐더라고요. 밥 한 번 사주고 싶어요~선생님 시간 될 때 밖에서 밥 한 번 먹어요!"
40대에 탁구를 시작하셨고 20년이 넘게 지금까지 하고 계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자신이 재능은 없어도 꾸준하게 하는 끈기는 정말 자랑할만한다며 웃으셨는데, 딱 살아온 모습 그대로 그림도 1년째 꾸준하게 그리고 계셨다. 실력이 느는 것 같지 않아도 상관없다며 하다 보면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다면서 이미 시간의 힘을 알고 계신 어머님이셨다.
수강생은 1달만 딱 그리고 없어지기도 하고, 2주 만에 발길을 끊기도 한다. 약속시간 1분 전에 취소하는 사람도 있고 2시간을 예약해 놓고 아무 양해도 없이 3시간을 넘게 자리를 떠나지 않기도 한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1년이라는 긴 시간을 취미활동하는 분은 유일했다. 그림을 그린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연세도 있으신 분이 정말 즐기면서 공방을 찾아주시니 보는 내가 다 기분이 좋기도 했다. 그러니 내가 감사하다고 밥을 사드려도 모자란데 오히려 1년 동안 잘 알려주셔서 감사하다며 밥 한 끼를 사주셨다.
그렇게 30개월을 공방과 함께 하셨다.
공방에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이렇게 좋은 시간을 사람들이 왜 모를까 하며 엄마처럼 공방운영을 걱정해주기도 하시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림 그리는 곳이 있다며 데리고 오기도 하시고, 덕분에 내가 그림 그리고 보는 눈이 높아졌다고 인사도 자주 해주셨다. 집에 안 쓰는 물건이 있는데 혹시 선생님 필요하시냐고 가져다주기도 하시고, 이게 맛있는 빵이라며 종이가방에 잔뜩 빵도 사주셨다.
정말 이런 수강생은 없었다.
그런 분에게 공방을 그만둔다는 말을 전하기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공간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알고 그림에 대한 열정을 알기에 이제 이 시간이 끝이라고 말하면 내가 울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정을 하고도 소식을 못 전하고 그렇게 한 주 두 주 미루다 결국 말씀을 드렸다.
"아쉬워서 어째요. 다른 곳에 다시 여는 건 아니고? 또 오픈하면 꼭 연락 줘요, 내가 그리로 갈 거니까. 혹시나 근처에 도서관이나 그런 곳에 수업 나가면 그것도 연락을 줘요. 내가 신청하고 또 그림 배우러 갈 테니까. 다음 주부터 이제 나는 뭘 하나 싶네~"
공방을 연 이유는 누군가 어른이 되어서도 하나의 취미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아무 욕심 없이 스트레스 없이 즐길 수 있는 게 그림이었으면 했다. 어릴 때는 그림으로 인정받고 입시를 준비하며 순위를 매기지는 상황 때문에 그림을 즐기는 건 어렵다. 어른이 되어서 가지는 취미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이 취미가 되기에 그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고 싶어서 이 일을 시작했다. 그런 내 마음을 딱 알아주는 분이셨다. 내가 하는 일에 애정을 보여주는 분을 만난 게 나의 복이자 운이었다.
30개월의 다정함 덕분에 공방을 잘 끝낼 수 있었다. 비록 많이 찾는 곳은 아니었지만 다정함을 곳곳에 남겨두고 가는 분들이 있어서 감사했다. 이별이 또 하나의 만남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어머님과의 인연은 잠시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