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짧은 글과 말에 나를 다 담을 수 없다
나는 언제나 자기소개가 어려웠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도 누군가 앞에서 나를 소개하는 일도 말이다. 취업할 때 어떻게 하면 더 나를 두드러지게 보이게 할지 고민을 하다가 언제나 멈췄다. 너무 좋게 표현하는 건 거짓말 같고 있는 그대로 쓰자니 너무 보여줄 게 없고. 어떻게 나를 설명해야 나에게도 상대방에도 나는 합격일까. 이건 지금도 의문이다.
자기를 소개하는 일이 쉬운 사람이 있을까?
나의 장점을 수없이 생각하고 정리해두었거나 내가 하는 일이 뚜렷해 직업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자기소개가 쉬울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더 이상 취업을 할 일도 누군가를 새로 만나는 일이 없기에 자연스레 자기소개는 멀어졌다. 육아를 하는 동안 새로이 만나는 사람은 대부분 아이 어린이집 엄마이기에 나를 소개하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쉬웠다. 누구 엄마. 네 글자면 나를 다 표현할 수 있었다. 얼마나 간단한 지. 너무 짧아서 시원하기도 섭섭하기도 했다.
그러나 작년부터 만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다시 나를 소개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책을 내고 어딘가 참여하거나 나서는 일이 많아질수록 공식처럼 내 소개글이 필요했다. 줌으로 누군가를 만날 때, 강의를 할 때, 카페에 가입을 할 때... 새로운 공간에 나를 등장시키는 순간에 꼭 '자기소개'시간이 있다. 나이가 들었다고 이 과정이 쉬워졌을까. 똑같이 어렵고 난감하다.
예전에도 지금도,
내가 존재하는 순간 중에 자기소개가 쉬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자기소개를 하세요.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위해 나를 기본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인사를 나눠야 하니 이건 일종의 격식이고 예의이고 조금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이, 결혼 여부, 사는 곳, 관심사, 취미,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아이의 나이 등 자기소개서의 틀이 우리 머릿속에는 이미 저장이 되어있다. 정해진 것을 토대로 나를 이야기하면 되는데 그 순간이 너무 싫고 언제나 나에 대한 생각 없이 그냥 살다가 그제야 나를 돌아보기도 한다.
자기소개는 간단해야 하는 게 포인트다. 그래야 상대방이 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얼마나 간결하게 나를 잘 표현하느냐 그것이 자기소개의 중요한 부분이다. 주저리주저리 길게 쓰는 자기소개서는 매력이 없다. 그래서 더 어렵고 뾰족한 설명을 할 수 없는 내가 찌질 해 보이기도 한다.
자기소개를 할 때 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나의 부분을 찾으려 현미경을 든 채 나를 들여다본다. 꼭 합격, 통과, 상대방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썩 괜찮은 사람으로 인식되었으면 좋겠고, 더 보고 싶은 사람으로 비치길 원한다. 과하지 않지만 모자라지도 않게 약간 포장을 하며 당당해 보이려 애쓴다.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들이 올라온다.
이 짧은 분량 안에 나를 다 담을 수 있을까?
몇 문장으로 나를 다 알려줄 수 있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 나의 역할과 생각이 바뀌는데...
이건 불가능한 게 분명해
저는 작년 책을 출간한 초보 작가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며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요즘 나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나는 아이만 키우고 있을 때와는 다른 내용으로 이야기하게 되고, 이제는 엄마 보라는 이름보다 '나'를 내세우려고 노력한다. ' 4살 6살 엄마'라는 말은 이제 내 소개의 끝에 등장한다. 그만큼 자기소개서를 바꾸고 싶었고 조금은 더 멋지게 나를 소개하는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런 자기소개를 처음 했을 때 개운하지 않고 왠지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저 문장 속에 거짓말은 하나도 없지만 진짜 내가 저렇게 살고 있는지 자꾸만 반문을 하게 되었다.
진짜 매일 책을 읽어?
다른 사람들에게 글을 쓰라는 말을 할 자격이 되니?
자기소개, 자기소개서에는 어차피 나를 다 담을 수 없다. 사람은 입체적인 존재다.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과 행동이 변하는데 그 짧은 시간과 공간에 일일이 다 표현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그냥 내가 그렇게 목표로 하고 있고 그 시간을 채워가고 있음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으면 된다.
자기소개를 하고 나면 나는 내가 뱉은 말을 나의 틀로 만들어버렸다. 사람들이 나를 정말 그렇게 단정 지어버릴까 두렵기도 했고, 그걸 더 지키려고 애쓰기도 했다. 그래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어쩔 때는 의무감에 하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야 함을 과장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항상 나는 자기소개가 무겁고 무서웠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하루 정도 정신없이 지내느라 책도 한 장 못 읽고 지나갔다고 나의 자기소개가 거짓말이 되는 게 아니다. '저 사람 자기소개는 뻔지르하게 하고 매일 그렇게 사는지 살펴봐야지' 하며 누가 일일이 나를 관찰하고 있지도 않는다.
이제는 자기소개에 대한 부담을 조금씩 줄여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나를 소개하는 일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때마다 부담을 느끼고 싶지 않다. 나를 완전히 소개하는 건 불가능하다면 내가 가고 싶은 길, 담고 있는 가치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멋진 자기소개가 아닐까 싶다.
자기소개가 쉬워지는 그날까지.
나를 조금 더 잘 담을 말을 생각해내는 그날까지.
실제 '나'와 담길 '나'의 균형을 맞춰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