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가구를 재배치하는 엄마
우리의 첫 집은 사택이었다. 결혼 준비로 바쁘고 재정상 태도 빠듯한데, 집을 제공해준다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낡은 집이었지만 싱크대를 손보고 도배, 장판을 바꾸고 나니 신혼집으로 살기에는 충분했다. 복도식 아파트 20평. 그곳에서 신혼을 보내며 첫째를 낳았다.
넓지도 않은 곳이라 신혼살림으로 필요한 것만 간단하게 채웠고, 둘이 살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저 둘이 지낼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보다 좁네... 싶기는 했지만 청소, 정리를 귀찮아하는 우리에게는 넓지도 좁지도 않은 이 정도가 적당했다.
사택은 5년이라는 기한이 있었기에 그 시간을 이곳에 살면서 꽉꽉 채우고 나가자, 남편과 다짐했었다. 5년 동안 집을 마련할 돈을 부지런히 모으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그런데 1년, 2년.. 시간이 지나며 아이는 기어 다니기 시작했고 내가 3년 동안 잘 살던 이 집이 좁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곧 걸어 다닐 텐데 3명이 살기에 좁지 않나?'
생각의 힘은 참으로 크다. 이런 생각이 스치는 순간부터 이 집은 좁고 답답한 집으로 인식되었고 나는 이미 맘속으로 다른 집을 꿈꾸고 있었다.
30년 가까이 된 복도식 아파트. 현관문을 열어두면 옆집 사람이 지나가지 못해서 늘 현관문은 닫아두었고, 베란다는 하나여서 맞바람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집. 베란다 창은 은색 새시로 열고 닫을 때마다 삐그덕 소리가 났고 욕실 타일은 80년대 스타일 청록색.
3년 전 이사 올 때 분명 마음에 들었던 집인데... 어쩜 그렇게 느끼는 감정이 다른지. 하루아침에 이곳은 좁고 낡은 집이 되어버렸다.
아이 짐도 점점 많아져 이 집은 좁다,
언젠가는 나가야 할 사택이지 않느냐,
남편에게 매일 이야기를 했고 나는 당장 집을 알아봤다. 가진 돈은 적었고 이 돈으로 집을 살 수 있을지 기대감조차 없었지만.
그렇게 몇 달을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핸드폰으로 지도를 펼쳐보며 남편 회사와 가까운 동네에 있는 아파트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몇 평으로 갈 수 있을지 이 돈으로 갈 곳이 있기는 한 건지 현실적인 문제에 매일 마주했다. 마음으로 품는다고 해서 가고 싶은 곳으로 이사를 갈 수 없는 상황. 그럼에도 이곳에 눌러앉을 수는 없기에 부동산에 전화를 해보고 발품도 팔아보고 그렇게 이 집을 구했다.
우리 세 식구가 새로이 살게 될 집.
"여기 봐 베란다가 이렇게 넓어. 넓은 게 2개나 있어~"
살던 집에 베란다는 좁아서 빨래대를 펴면 지나다니기 불편했다. 그 집의 단점을 커버해줄 공간이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맘에 들었다. 더구나 베란다가 2개라니.
이곳 역시 20년이 된 아파트라 화장실과 주방은 새것이 아니었지만, 사택에 비하면 여기는 좋아 보였다.
사택에 사는 사람들은 그 고충을 알 것이다. 퇴근하고 집에 오는 내내 회사에서 종일 마주쳤던 사람들과 함께 이동하는 느낌. 그렇다. 사택이기에 회사 사람들이 북적댔다. 아파트 안에는 대부분 아는 분들. 남편은 엘리베이터에서도 슈퍼 가는 길에도 회사분들을 만났고, 나도 동시에 인사를 하느라 바빴다. 회사에서도 보는 사람들을 퇴근하고 집에 오가는 길에도 마주치는 게 편하지는 않을 터. 남편은 그런 분위기를 떠나는 것만으로도 이사를 찬성했다.
"남편, 나 3년 주기가 있나 봐.
또 다른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생각해보니 전에 집에서도 3년, 여기도 3년쯤 되니...
이러다 3년마다 이사를 가야 하는 건가??"
기분 좋게 원하는 집을 찾아 이사를 와놓고도 몇 년 살면 다 마찬가지. 처음에 보이지 않던 단점들이 보이고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 또다시 기웃거린다. 그때는 사택이라 어차피 이사를 해야 하기에 조금 당겨 나가자, 그런 생각에 진짜 실행으로 연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매번 집이 좁게 느껴질 때마다 이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이사를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살고 있는 집의 갑갑함을 이겨낼 수 있을까? 더 넓은 집으로 간들, 그 효과가 얼마나 갈까.
이곳에 그대로 머물면서 새로운 집처럼 느낄 방법. 내가 찾은 방법은 가구 배치를 바꾸는 것이다. 큰 가구나 전자제품은 옮기기 쉽지 않으니 그대로 두고, 나 혼자도 거뜬히 옮길 수 있는 것들 위주로 공간을 재배치한다. 소파, 식탁, 수납장... 바꿀 수 있는 건 몇 개 되지 않지만 그것만으로도 다른 느낌을 내기엔 충분하다.
집이 좁게 느껴지고 이사를 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 아이들이 등원한 후 혼자 일을 시작한다. 오늘은 소파를 어디에 둘까.. 이 선반을 어디에 둘까... 혼자 땀 흘리며 사서 고생을 하지만, 그렇게라도 기분을 달래 본다.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바라는 일도 아닌데 그저 자기만족을 위해서 몸을 바쁘게 움직여본다. 이것저것 재배치하며 뿌듯해하는 순간,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된다.
"엄마 또 가구 옮겼어?"
"엄마 집이 또 달라졌네?"
수시로 변하는 탓에 이제 아이들은 놀라지도 않는다. 짠~하고 보여주는 엄마 마음도 모른 채 '아, 또 바뀌었구나' 감흥이 없다. 아이들은 이래도 저래도 이 집이 그저 좋을 테니까.
가구 몇 개 옮겨두면 몇 달 동안 이사에 대한 마음, 이 집에 대한 불만이 잠잠해진다. 더 넓은 공간으로 당장 간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있기에...
3년 주기설이 1년 주기설이 되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이곳을 활용하며 사는 방법을 오늘도 연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