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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Nov 24. 2021

가벼운 가볍지 않은

오지라퍼 아줌마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내리는데 뒤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곳을 한참 쳐다보면서 상황을 파악했다. 

10살쯤 돼 보이는 아이 둘. 

덩치가 있는 남자아이는 가녀린 여자 아이의 손목을 잡아끌고 있었고, 여자 아이는 넘어갈 듯이 울고 있었다.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울먹이고 목소리도 흥분상태라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까운 거리에 내가 쳐다보는데도 두 아이는 의식하지 못한 채 실랑이하는데 온 힘을 다하고 있다. 머릿속에 몇 가지 그림이 그려졌고 일단 아이 둘을 떼어놓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가 좀 끼어들어야겠어. 이 손부터 놓고 이야기하자"

어딜 가자는 남자아이와 집에 가겠다는 여자아이는 한치의 양보도 없었고 이 아줌마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 듯했다. 나도 힘을 써가며 두 아이를 떼어놓았다. 일단 그게 먼저였다.



"둘이 왜 그래? 무슨 이유이든지 약한 친구를 그렇게 힘으로 하는 건 아니지.

너는 괜찮아? 하필 날도 추운데 점퍼도 없이 둘이 돌아다니니. 

일단 진정해봐 괜찮아"

씩씩거리는 아이 하나, 울면서 버티는 아이 하나. 두 아이의 등을 번갈아가면서 쓰다듬어준다. 서로의 관계를 알고 싶고 길에서 이러고 있는 이유를 묻고 싶고, 질문거리는 수두룩했지만 일단 이 기분을 진정시켰다. 남자아이의 눈은 화로 넘쳤고 여자아이는 무서움으로 가득 차 있는 듯 보였다.



"둘이 친구야?"

"친구 아니고 오빠예요"

"친오빠?"

"아니요"

"너는 몇 살이야?"

"몰라요"

여자 아이는 간단하게 대답을 해주었지만, 남자아이는 대답조차 불성실했다. 10살과 11살. 남자아이는 내가 중간에 서있는 동안에도 동생에게 발길질을 하고 화를 냈다. 어른이 있는데도 이렇다면 평소에는 어떻게 할지...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집에 가고 싶은데 오빠가 놀자고 해서..."

"쟤가 먼저 나가자고 했어요"

"아 그래~동생이 먼저 나가자고 했어도 맘이 바뀔 수 있고, 나와보니까 추워서 들어가고 싶을 수도 있잖아. 그걸 억지로 끌고 가는 건 아니지. 얼마나 아프겠어. 동생이 그렇게 울면 놔줘야지.

너는 여기 살아? 그럼 집으로 올라가, 오빠는 오빠 집에 가고. 지금 같이 놀 수는 없을 거 같은데?"

"집에서는 쟤가 나 때리고 소리 지르고 난리예요. 나와서 착한 척하는 거예요."

"우리 같이 살아요"



친오빠는 아니라고 분명히 이야기했는데 같이 산다니. 그럼 이모 아들이거나 고모 아들이거나.. 사촌관계인 건가. 이야기를 나눌수록 두 아이의 관계는 모호해졌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아이들의 감정은 진정되었지만 두 아이를 한 집에 올려 보내기에는 마음이 불편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아까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질 텐데, 조금 전 내가 본 장면은 분명히 평범하지 않았고 대화하는 동안 느낀 두 아이의 관계 또한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두 아이를 떼어놓을 자격도 없다.


"엄마는 집에 계셔?"

"9시에 오시는데요"



나는 아직 어린아이들을 키우고 있기에 언제쯤 아이가 혼자 집에 있는 것이 가능한 나이인지 모른다. 내가 잠시 슈퍼에 뛰어갔다 오는 사이 두 아이만 놀고 있는 상황은 지금도 가끔 연출되지만, 아이 혼자 장시간 있는 건 초등학교 고학년이어야 안전하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경험하지 못한 나의 생각일 뿐, 다양한 현실에 맞춘다면 아이 나이는 당겨지고 늦춰질 수 있다. 

그럼에도 10살, 11살 두 아이가 학교를 다녀와서 밤 9시까지 둘이 있는 건 어쩐지 좀 그랬다.



둘이 한 집에 있을 때의 상황이 그려졌고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자꾸만 떠오르는 부정적인 모습에 아이들의 말까지 살을 더했다. 늦게 들어오는 날들의 연속이라면 오후 시간 아이들을 어딘가에 맡기는 게 좋지 않을까 선을 넘은 생각도 해본다.  

두 아이를 한 공간에 둬도 될까. 여자아이만 일단 우리 집에 데려가 있을까. 이 상황을 부모님이 아실까. 아이들이 행복한 걸까.

아이들을 번갈아 쳐다보는 내내 오지랖이 어디까지 뻗친다. 내 마음대로 남의 집 아이를 우리 집에 들이는 건 좋은 의도라고 해도 부모님이 어떤 성격, 생각을 가지신 분들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행할 수 없다. 정말 심하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면 경찰에 신고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는 또 아니었다. 무언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들지만 이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단정 지을 수가 없었다.



집에 가길 원하는 여자아이의 뜻에 따라 두 아이를 올려 보냈다. 남자아이에게 둘이 잘 지내야 한다는 당부를 건네면서. 당연히 처음 본 아줌마가 한 말을 듣지 않을 테지만,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옳은 말을 건네야 하는 진부하면서도 중요한 이야기들이 있는 거니까. 그 말만이 두 아이들에게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비겁하게.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 사이에도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를 툭툭 친다. 두 아이를 돌려보낸 그 순간부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나의 시선과 마음은 미로에 갇힌 사람처럼 갈 길을 잃었다. 짧은 시간 우리 가정이 아닌 다른 가족을 몰래 엿본 기분이다. 어른들과 이야기 나누지 않았기에 나의 추론이 사실일지 과한 걱정 일지 알 수 없다. 반대로 어른보다 아이들의 말이 정확하기도 하기에 내가 느끼는 것들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정확한 답을 알려고 하는 것이 맞는지도 불확실했다.

그런데 왠지 내가 비겁하다고 느껴졌다. 자꾸만.



잠시 후 우리 아이들의 등원 시간이 되었다. 웃으며 씩씩하게 돌아오는 두 아이를 반겨주면서도 자꾸만 그 아이들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때리면서 격하게 싸우기도 하고 금세 돌아서서 세상 둘도 없는 친구처럼 놀기도 한다. 동생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아픈 말들을 뱉어내다가도 너무 귀엽다며 안아주고... 기분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동지도 적도 된다. 그 수많은 장면 중에 내가 그날 본 건, 힘이 약간 포함된 사이가 좋지 않은 단면이었으면 좋겠다.



그냥... 내 아이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불행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 아이들도 그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부디 안전하기를 잘 꾸려나가고 있기를, 오지라퍼인 내가 진심으로 바라본다. 한동안 두 아이의 모습이 떠오르겠지. 그때마다 그날 나의 선택이 나에게 잘한 행동인지 묻게 될 것 같다.

어른이 뭐냐고. 정의로운 게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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