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혜진 작가 Nov 20. 2021

내가 원하는 삶은 뭘까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작더라도 마당이 있는 집에 한 번은 살아보고 싶었다. 아이들이 집과 마당을 하나로 생각하고 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 꿈을 품은 건 7년째인데 우리는 아직 실행을 하지 못한 채 아파트에 살고 있다. 현실은 아파트, 꿈은 주택. 그 두 가지를 나름 절충한 선택이 아파트 1층이라고 해야 할까. 



부산 시내에 있는 주택을 찾아보면서 우리는 금액적으로 한계를 부딪혔다. 아파트는 24평에 살 수 있지만, 주택은 최소 50평. 주택은 대지면적이 넓어서 아파트보다 평단가가 낮아도 좋은 아파트 가격과 맞먹는다.  그런 데다가 대부분 지어진 지 20,30년 된 집이라 내가 생각하는 이쁘고 번듯한 마당 있는 집과는 거리가 멀다. 이걸 사서 집수 리비도 1억 이상 들 텐데... 그럴 여유가 없다. 그렇다면 내가 꿈꾸는 집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시골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한 번 꽂히면 밀어붙이는 성격인 나는 부산이 아닌 근교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난여름, 남편과 나는 시골에 집을 보러 다녔다. 김해 안쪽에 위치한 동네. 마을 입구에 슈퍼가 있고 초등학교가 있었다. 그리고 버스가 2대 운행 중이고 시내까지는 차로 15분 정도. 마을이 크지는 않지만 외부인들이 이사를 제법 와서 새로 지은 집들과 30년도 더 된 집들이 거의 반반 섞여있었다. 시골학교는 이런저런 혜택도 많다는데 우리 아이들이 뛰어노는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는 곳이 어쩌면 시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금액에 맞추어 집을 안내받았다. 집은 당연히 수리가 필요했고 마당은 아이가 충분히 뛰어놀 수 있게 적당했다. 약간의 오르막에 위치해있어서 마당에 서면 먼 산이 훤히 보였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조용한 그곳에 가만히 서서 풍경을 바라보며 숨을 크게 쉬어본다.


이게 네가 원하던 곳이니? 

맞아?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모습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열심히 지도를 들여다보고 부동산에 전화를 해가며 주말마다 보러 다니던 시골집 일정은 이미 시들해졌다. 대신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에서 그런 환경을 어떻게 누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포기와 인정. 그 둘 사이를 계속 줄다리기하고 있다. 거뜬히 살 수 있는 환경인데 나는 왜 자꾸 이탈하려고 하는 건지. 무언가를 가지려면 반대로 포기하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시골에 아이들과 사는 대신에 무엇을 잃게 될까.






내년 아이 둘을 새로운 어린이집으로 옮기기로 했다. 두 아이 모두 3살에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어린이집에 몇 년째 다니고 있다. 한 번도 원을 이동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공간으로 가야겠다는 결정을 하기 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마당이 있는 집의 차선책으로 이 어린이집을 선택했다. 집은 그런 환경을 제공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인정 했고, 그렇다면 많은 시간을 보낼 시설이라도 엄마가 제공하고 싶은 환경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선생님, 저희 어린이집 내년에 옮겨야 할 것 같아요. 재원 한다고 신청해뒀는데 죄송해요."

"너무 아쉬운데요 어머니~ 유치원으로 가세요?"

"아.. 유치원은 아니고요. 어린이집인데..."

"어머니 어딘지 말씀해주셔도 괜찮아요, 제가 궁금해서 여쭤봐요"

"아.. oo어린이집이라고 생태어린이집이에요. 매일 뛰어놀고 하는 곳이요"

"어머니~oo가 너무 좋겠어요. 저는 아쉽지만 아이들에게는 진짜 좋죠. "



아이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이 친구 엄마도 내년에 원을 옮긴다는 소식에 아쉬워하면서도 oo어린이집으로 간다고 이야기하니 나타나는 반응이 한결같다.



거기 나도 들어봤는데 애 보내면 좋겠더라

엄마가 대단하다

애들이 복 받았네 정말



아이 친구 엄마는 부러워하면서도 함께 원을 옮기지 않는다. 친구와 같이 이동을 하면 우리 아이에게 좋겠지만, 그곳은 엄마의 손이 많이 닿아야 하기에 선뜻 같이 가자고 말을 못 했다. 아이만 어린이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엄마도 함께 가게 된다. 그래서 나도 고민이 많았다.

뭐가 대단하다는 건지 뭐가 좋겠다는 건지.. 어떤 의미인지 알 것도 같지만 정확히 와닿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 보이면 함께 할 수 있는 건데 좋아 보이기는 하나 나는 하고 싶지 않은.. 그런 선택을 내가 했구나, 느낄 뿐이다. 그저 용기가 필요할 뿐 대단한 일은 아닌데.



잘 다니고 있는 원을 그만두고 굳이 7세에 어린이집을 옮기는 것이 엄마의 욕심일까.. 잘 살고 있는 이 집을 떠나서 시골로 이사 가는 것 또한 나만의 욕심일까.. 생각한다. 우리를 위해서, 너희에게도 엄마에게도 좋은 환경을 찾아간다는 것이 누구의 기준일지 누구의 평가일지 여전히 답을 내리기 어렵다. 그래서 아직 나는 마당 있는 집 그리고 아이가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포기하지 못한다.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 계속 다듬어가고 있다. 품고만 있던 것들은 형태 없이 희미해지고 사라지기 쉽다. 생각이라는 이름으로 흩어져있던 것들을 일부러 눈에 보이도록 어딘가에 써두기도 하고 행동으로 옮겨본다. 그렇게 해야 그리는대로 살지는 못해도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만큼의 거리로, 점차 가까운 현실로 데려올 수 있다. 비록 그 모습이 허상이고 유토피아라고 해도.

그래서 지금 당장 이루지 못하더라도 나만의 삶을 계속 상상하고 현실로 만드는 일을 계속하며 살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