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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Nov 26. 2021

도를 아십니까

오랜만에 만난 언니들

내가 20대 때 엄마는 늘 새해가 되면 점을 보러 가셨다. 예약까지 필수라는 그곳을 매해 들리셨다. 답답하고 궁금한 게 많으면 들르는 곳이 점집 아닌가. 엄마는 한 해 가족의 건강과 취업, 결혼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묻고 오곤 했다. 1년을 잘 보내기 위한 엄마만의 연례행사라고나 할까. 늘 해오던 걸 안 하면 왠지 찝찝한 기분이 드는 그런 일 중에 하나였다. 왜 그런 걸 보러 가냐며 돈 아깝다고 핀잔을 주면서도 내심 올해 나는 어떻게 살게 될지 앞으로 순탄하게 살 팔자인지 궁금했다. 2월이 되어도 엄마가 점집을 가지 않으면 올해는 안 가는지 먼저 묻기도 했다.



매번 점집을 갔다 오면 엄마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는 똑같았다. 갈 때마다 나를 두고 선생님이 되어야 좋은 사주라고 딸이 지금 선생님이냐고 물어본다고 했다. 엄마가 자주 가는 점집뿐만 아니라 엄마 친구가 용하다고 하며 데려간 그곳에서도 말이다. 엄마는 내가 학생 때 공부 열심히 해서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지라고 했었다.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많이. 선생님이 되려면 얼마나 공부를 잘해야 되는데, 나는 공부를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해서 그건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 말했다. 

엄마가 나의 직업으로 선생님을 그렇게 강력하게 어필한 것은 자신의 꿈이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님에게서 태어난 엄마는 5남매 중 장녀다. 돈이 없던 시절, 5명 아이를 고등학교 보내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여상을 졸업하고 바로 돈을 벌어 집안에 도움이 되는 딸들이 대다수 아니었나. 엄마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대학 진학을 희망했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 세 딸들은 모두 고등학교까지 나왔고 아들 둘은 모두 대학을 갔다. 그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집안이 가난해서 선생님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던 엄마. 그런 엄마는 딸이 선생님이 되길 바랬다.(물론 자신의 꿈이 아니었더라도 엄마들은 대부분 자녀가 안정적인 직업 선생님이나 공무원이 되길 바란다)  엄마가 보기에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대학 보내줄 수 있는데 싫다고만 하는 딸.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엄마는 나를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사실 내가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공부를 잘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또 하나, 남 앞에서 말하는 걸 즐기지 못하는 내 성격 때문이었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발표시킬까 봐 늘 조마조마했고, 누구 이야기해 볼 사람~했을 때 자신 있게 손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내가 반 번호 15번일 때 5일, 15일, 25일은 학교 가기 전부터 오늘 발표를 시키면 어쩌나 걱정하며 학교를 갔던 아이였다. 그런 내가 수많은 아이들 앞에 나가서 수업을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혹시 다이소 어디 있는지 아세요?"

점심으로 김밥을 한 줄 사서 집에 오는데 누군가 길을 물어본다. 뒤를 돌아보니 30대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아, 저기 육교 보이시죠? 지나면 바로 있어요. 이쪽으로 쭉 가세요"

여기서 건물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간단하게 설명을 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뒤에서 또 말이 들려온다. 더 물어볼 게 있으신 것 같아서 뒤를 돌아봤다.

"네?"

"말하거나 가르치는 일을 하세요.~~"

흠칫. 

아... 그렇다

'도를 아십니까'


예전에는 얼마나 그런 사람들이 많았는지, 길을 가다 보면 한 명쯤은 거뜬하게 만났다. 나는 그들의 말을 못 들은 첫 하며 지나쳤지만,  궁금해서 차를 같이 타고 가봤다는 사람도 있었고 이런 거 하지 말라고 야단을 치는 사람도 있었다. 지겹도록 만나던 도를 아십니까 언니들이었다.



말을 더 이상 섞지 않고 집으로 오는데 그분들의 이야기가 자꾸 귀에 맴돈다. 생각해보니 점집에서도 이 분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콕 집어 선생님이라는 일을 하라고 한 건 아니지만 가르치는 일을 하고 사는 게 좋다고.

미신이라고 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해도 그냥 기분이 좋았다. 엄마가 그리 원하던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살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 나는 가끔 선생님이라 불리면 살고 있으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나서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물론 아니다. 그런데 여태까지 내가 상상해보지도 못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렇게 못한다고 손사래 치던 강의도 하고, 내가 아는 것들을 알려주는 일을 분명하고 있다. 나에게 집중하는 사람들 속에서 10분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내가 어느새 50분 동안 혼자 떠든다. 나름 즐기면서. 

누가 등 떠밀어 사는 요즘이 아니라 100% 자발적으로 내가 선택하는 삶을 살고 있기에 불안할 때도 있다. 이제 어떤 걸 또 채워야 할지 계속 강의를 하며 살 수 있을지 주위를 자꾸 두리번거리게 되고, 길게 또 짧게 계속 성장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러면서 함께 하는 사람들도 더 많이 그리고 길게 같이 가고 싶은 마음까지. 챙길 것이 늘어나는데 제자리 같아서 나도 모르게 자꾸 한숨이 늘어간다.



그런데 뜬금없이 나타난 도를 아십니까 언니들이 해준 이야기가 '너 잘하고있어' 이런 뜻 같아서 씩 웃음이 났다.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믿을 게 없어서 그걸 듣고 좋아하냐는 듯이.. 한심하게 쳐다봤지만, 내가 좋게 믿으면 결국 좋은 거지 뭘.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또한 내 몫인 걸.



예전에는 피해 다니던 도를 아십니까 언니들 덕분에

21년 11월, 나는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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