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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Jul 19. 2020

사진이 말을 걸어오는 경험

인스타그램 피드와 스토리는 늘 멋들어진 사진들로 가득 찬다. 그것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나보다 행복한지 어떤지 비교하고 싶어 하는 못난 습성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지라 실시간으로 인스타에 접속한다. 요즘 힙하다는 곳에 놀러 가고, 비싼 돈으로 무언가를 Flex 하고(난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은 어찌나 많은지. 거기다 인스타로 옷 두어 번 구입했더니 피드 광고가 죄다 인터넷 옷가게로 도배됐다.


그날도 인스타그램을 켰다가 다들 저렇게 행복하게만 살고 있을까? 내가 괜히 무겁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하며 2호선에 몸을 구겨 넣고 출근 중이었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대게 비슷하던데. 다들 이런 무표정은 어디다 숨기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며 살아가나. 좀 더 내추럴한 순간을 포착할 순 없을까. 그러자, 대학교 때 들었던 ‘사진 예술의 이해’ 수업 교수님의 말이 생각났다.


”사진 찍자마자 별로면 바로 지우는 사람들 있죠? 정말 미련한 행동이에요. 언제 어떤 사진이 정확히 원하는 프레임을 담았을지는 당시에는 몰라요. 사진을 다 찍고 집에 돌아와서 큰 화면에 하나하나 넘겨보면서 판단해야 돼요.”


수업 이후로 사진을 잘 지우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덕분에 핸드폰 용량은 늘 모자라지만, 의외의 곳에서 잊고 있던 추억이 나타나곤 한다. 월요일 아침, 지하철이 합정역에 도착할 즈음 오랜만에 클라우드를 열었다. 당시에는 마음에 안 들어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그 순간 나만 아는 추억이 떠올라 한껏 웃음 짓게 되는 사진들을 만났다. 2018년의 쿠바에서 온 사진들이었다.


Santi Spiritus라는 작은 도시의 풍경과, 마차꾼이 사람을 싣고 평화로운 길을 유유히 달려가는 풍광이 그려졌다.


Cafeteria 707. 골목 구석에 숨어있던 김밥천국 비슷한 현지 식당, 혼자 밥을 먹자니 심심하지 않냐며, 합석하자고 먼저 말을 걸어온 쿠바의 젊은 대학생들이 생각났다.
동양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도시, Santiago de Cuba. 숙소에서 흘러나오던 공룡 애니메이션과 선풍기 소리가 그날 느꼈던 적막함과 함께 들려왔다.
분명 15분 뒤 온다 했는데 2시간을 기다려 탑승한 시내버스, 해안가를 따라 달리는 풍광,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퍼지는 레게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젊은 커플들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남는 건 사진뿐이야”라는 말을 종종 한다. 그렇게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인생샷을 찍고, 예쁜 배경을 찾아 바쁘게 돌아다닌다. 그러나 그런 것은 분명 한 때다. 우리가 인생샷 이라 부르는 것들은 평소보다 좋아요를 많이 받겠지만, 일괄적인 장소에서 일괄적인 포즈로 만들어낸 사진 속에 고유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SNS용 사진이 꼭 보기도 좋고 맛도 좋은, 누구나 부러워할 음식일 필요는 없다. 엄지로 스크롤을 내리다 슬쩍 보기만 해도 여행 뽐뿌 가득 오는 이국의 멋진 풍경 사진일 필요도 없다. 좋아요를 엄청나게 많이 받을 수 있는 잘 나온 셀카일 필요도 없다. 당시에는 사진이 마음에 안 들어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그 순간 나만 아는 추억이 떠올라 한껏 웃음 짓게 되는 사진. 딱 그 정도여도 괜찮다.


수업의 종강 날, 교수님은 늘 냉장고에 붙어 있었는데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사진이, 어머니를 보내고 난 어느 날 새삼스레 다시 보니 건강하고 예뻤던 시절의 엄마였더라 하는 일화를 이야기하셨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당부했다.


“사진이 말을 거는 경험을 해 보세요.”


사진 예술은 내가 다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세상이었다. 수업을 듣고 실습을 하며 나는 사각의 프레임 속에 사물을 예쁘게 담아내는 재주가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사진을 지우지 않는 습관을 가진 것은 큰 소득이다. 보여줄 만한 사진은 몇 없을지언정 이야기를 간직한 수많은 사진들을 안고 가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지하철이 을지로에 거의 도착했을 때, 사진을 소재로 글을 써 보자고 마음먹었다. 월요일 출근길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고객사 김 과장이 날 아무리 괴롭혀도 나는 글을 쓸 테고, 인스타에 올릴 테다. 점심때쯤 좋아요가 많이 늘어나겠지. 사진을 잘 찍는 재주도, 글을 뚝딱 써내는 재주도 없지만 내게 말을 걸어오는 사진이 주는 힘과, 소박하게 써 내려간 글이 주는 위로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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