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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Jul 22. 2020

그 수업, 참 비싸다.

인생의 수업료

에어팟 한쪽을 또 잃어버렸다. 이번엔 차 안이다. 업무차를 타고 복귀하던 중, 고객사에서 전화가 와 에어 팟을 끼려는데 손이 미끄러졌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작은 틈새로 에어 팟이 사라져 갔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았다. 왜 늘 작은 것들은 틈새로 떨어지는가. 회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온 몸을 수그려 바닥을 샅샅이 뒤졌다. 오래된 영수증, 과자 부스러기 따위만 나왔다. 에어팟은 보이지 않았다.


‘나의 아이폰 찾기’ 앱을 켰다. 에어팟에서 큰 소리를 내어 위치를 추적하는 기능이다. 어디선가 삐-삐-삐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귀를 바짝 갖다 댔다. 조수석의 다리가 놓이는 곳, 그 밑에서부터 기계음이 흘러왔다. 시트를 뜯어봐도 하얀 에어팟은 보이지 않았다. 좌석 아래 구조를 자세히 살펴봤다. 저 아래, 지하세계로 통하는 작은 틈이 하나 있다. 설마. 떨어진 에어팟이 우연히 틈을 발견하고, 구멍 아래로 홀연히 빨려 들어간 것인가.


검색을 했다. 나와 비슷한 분들이 계셨다. 차량 정비를 맡겨 아랫부분을 뜯어냈더니 잃어버렸던 립밤이며, 에어팟이 들어있더란다. 정비 비용은 약 5만 원. 에어팟 한쪽을 새로 사는데 드는 비용은 마찬가지로 오만 원. 다이소 집게 자석을 사서 그 안쪽에 집어넣었더니 달려 나왔더라는 댓글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다이소에 갔다. 집게 자석은 없었지만 길쭉한 강력 자석이 있었다. 한 걸음에 주차장으로 달려가 저 깊은 구멍으로 자석을 집어넣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땀이 비 오듯 흘렀고, 업무 시간은 다가왔다. 같이 에어팟을 찾아주겠다며 나선 대리님도 이제 포기하자며, 중고 사이트에 올라온 에어팟 링크를 보내주셨다.


두 달 전에 오른쪽 에어팟을 잃어버려서 새로 구입했는데, 또 잃어버렸다. 차라리 왼쪽을 떨궜으면 덜 억울했을 테다.


지하철 문이 열리면 늘 승강장과 열차 사이 어딘가에 에어팟을 떨어뜨릴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날은 상상 속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퇴근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에어팟을 꽂고 음악을 재생시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들어갔고, 사원증을 벗었다. 사원증이 그만 귀에 걸렸다. 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에어팟은 나의 귀를 떠나 엘리베이터의 열린 틈 사이로 떨어졌다. 황급히 내려 당황한 표정을 짓자, 문 앞에서 지켜보던 보안요원분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 되겠죠..?”

“안될 거예요..”

나이가 들면 문장에 ... 이 늘어난다던데, 이런 일은 나를 나이 들게 하나보다...


다음부터는 에어팟을 조심스럽게 착용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면, 이런 곳에 들어가는 비용을 인생의 수업료라고 할 수 있을까. 수업료 하니까 대학교 2학년 때, 3월 한 달 동안 후배들 밥 사주는데 백만 원 넘게 썼던 생각이 난다.


내가 신입생이었던 2011년에는 새터에 가면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찾아가 술 게임으로 술을 진탕 마신 뒤 선배들의 번호를 따가는 게 문화였다. 3월에 개강을 하면 그 선배들에게 연락해 밥을 얻어먹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술 별로 안 좋아하는 나는 새내기 때 단 1명의 선배 번호도 얻지 못하고 뻗어 잠들었다. 결국 3월 내내 선배와의 약속은 거의 잡지 못했다.


새터의 밤은 후배들이 각 방에 대기하고 있으면 선배들이 이방 저 방을 돌며 술 게임을 하는 식이었다. 문 앞에 선배들을 도발하는 문구를 잔뜩 써놓고 선배들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보통은 후배들도 무섭기 때문에 대부분의 문구는 인싸 선배들이 직접 써주었다.


2학년 때 선배로 참여한 새터였다. 어느 방을 가보니, 나에 대한 문구가 써져 있었다. “존재감 없는 이 x희, 들어와라” 이런식이었다. 나는 과의 주류였던 아이들과 전혀 교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싸는 아니었다. 과활동과 동아리 활동을 잘 병행해 나가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나는 그저 “존재감 없는” 선배였던 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존재감을 보이고 싶었나 보다. 후배들에게 따로 술을 먹이지 않고 마구 번호를 뿌렸다. 특히, 술을 잘 못 먹거나 나처럼 수줍음이 많아 선배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후배들을 보면 먼저 다가가 친절하게 번호를 줬다. 술 안 마셔도 되니, 배고프면 연락하라고.


그리고 3월이 되었다. 겨울방학 동안 과외, 카페 알바, 교내 우편물 알바 등으로 모아둔 150만 원을 후배들 밥 사 주는 데 탕진했다. 공강 때 아웃백에 데려가는 것은 기본이요, 굳이 연락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연락해 밥을 사주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존재감을 보이고 싶었다. 몇몇 착한 후배들은 4월 이후에 보은 하겠다며 나에게 밥을 사기도 했으나, 후배들 사이에서 나는 대체로 밥 잘 사 주는 착한 호구였다. 그리고 군대에 갔다.


전역을 했다. 후배들과 모두 연락이 끊겼다. 한두 명만 간혹 안부를 주고받는 정도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돌아보면, 내 사람이 되지도 않을 이들에게 무리해가며 밥을 산 행동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어렸으니까, 스물한 살이니까 가능했던 거다. 백오십만 원을 지불하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다짐했다. 내 사람들에게 잘하는 법을 익혀야겠다고. 모든 이들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겠다고. 돈을 좀 현명하게 써야겠다고. 존재감을 보이는 방식이 꼭 돈일 필요는 없었다. 아, 존재감이란 걸 꼭 가질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외에도, 나는 돈을 참 바보같이 소비한다. 옷 한 벌 사지 않다가, 충동적으로 가디건이 끌려서 파란색, 노란색, 초록색 가디건을 한꺼번에 결제했는데 결국 한두 번 입고 엄마에게 줬다. 원색 가디건을 입어보지도 않고 산 게 화근이었다. 그것도 수업료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언제까지 이 수업료를 지불해야 할까. 그 뒤에 오는 깨달음이 그렇게 커도 나는 결국 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했는데. 재수강에 삼수강을 거듭하는 수업들도 많은데. 야무진 성격이 아닌 걸 깨달았으니 그 또한 수업료라고 해야 하나. 그 수업, 참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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