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리뷰
거짓말 같은 건 잘하지 않는 모범생이었다. 선생님 잘 들으면 그게 곧 내신 관리였고, 좋은 대학에 가는 지름길이었다. “농담도 빼먹지 않고 필기한다”는건 농담이 아니다. 딱 한 번. 중학교 삼 학년 때. 아침 조회에 빠졌다. 화장실에 숨어있었다. 그때 안서중학교에는 ‘진태’라 불리는 체육 선생님이 소위 미친개 역할을 했다. 두발 단속이 엄해진 건 진태가 학생부의 관리자 역할을 하고부터였다. 진태는 각 반을 돌며 규정에 어긋나게 머리를 기른 학생들의 명단을 적어갔다. 사흘의 말미를 주고는 깔끔하게 정리해 오라는 것이었다.
딱히 반항심이 큰 것도 아니었지만 길게 늘어뜨린 구레나룻과 뒷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2007년 당시에는, 옆머리를 귓불 위로, 앞머리를 눈썹 위로 치라는 명령이 꽤나 폭력적인 것이었다. 진태를 피해 화장실 변기 칸에 숨어있었다. 1교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교실로 돌아갔다. 어디 있었냐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요즘 속이 좋지 않다고 둘러댔다.
이 얘기를 왜 했냐면, 두발단속은 내가 외고, 그러니까 외국어고등학교를 가게 된 결정적 계기이기 때문이다. 당시 비평준화였던 광명에서 나의 최대 고민거리는 어느 고등학교를 가느냐였다. 공부 잘한다는 아이들이 가는 두어 개의 학교는 모두 반삭이 기본이었다. 첫 학년을 군인처럼 빡빡 깎고 다니며 공부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것이 끔찍하게 싫었다. 그러던 중, 같은 반의 라이벌 친구가 학원 외고반에 다닌다는 얘길 들었다.
그때만 해도 외고는 뭔가 특별한 아이들만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학원비가 비쌌기 때문이다. 내신 공부는 독학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외고 입시를 혼자 하는 것은 무리였다. 우리 집은 문제집 한 권 사는데도 꼭 필요한 게 맞는지 엄청난 숙고를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들어보니 외고에 가면 머리를 빡세게 안 잡는단다. 어머 이건 꼭 가야 했다. 사춘기에 접어들고 거의 최초로 부모님에게 졸랐다. 외고에 가고 싶으니 외고반에 보내달라고. 그렇게 엄마손을 잡고 학원을 등록했다. 이미 1-2학년 때부터 특목고 준비를 하며 관리해 온 애들 사이에서 공부하자니 힘이 부쳤지만 뭐, 그때나 지금이나 악바리 근성은 있어서 버텼다.
그렇게 합격을 했다. 두발자유를 향한 갈망과 함께 외고 생활이 시작됐다. (자유라 해봐야 당연히 파마, 염색은 꿈도 못 꾸고 고작해야 길이지만) 일반계 고등학교보다 학생들에게 훨씬 관대한 자유가 주어졌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외고생들은 대부분 자유롭게 풀어놔도 스스로 제 미래를 위해 공부하고 자기계발 할 줄 아는 명석한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자유라는 것도 분명 돈의 제약을 받았다.
아직도 상처로 남은 장면이 있다. 의자였다. 9교시까지의 수업과 이후 4시간의 야자, 집에 와서 자습을 반복하는 생활이 익숙해질 때 즈음, 허리가 아팠다. 심각하게 아픈 건 아니었지만 늘 가벼운 통증을 달고 살았다. 그땐 그것도 뿌듯해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당시 학생들이 쓰던 의자는 전 국민 공통, 나무의자였다. 이게 오래 앉으면 허리며 다리가 배겨서 여학생들은 방석을 갖다 놓기도 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유명 브랜드의 의자 하나를 홍보했다. 인체 공학에 맞게 설계되어 앉았을 때 자세를 잡아준다는 거였다. 강매는 아니었다. 필요한 사람들만 사면 된다고 했다. 한 번 사면 졸업할 때까지 갖고 다니면 된다고 했다. 가격이 얼만진 기억 안 나지만, 꽤나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부모님에게는 아예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 겨우 졸라서 다닌 십여만 원의 학원비마저 몇 달 치가 밀려있었으니까. 어쨌든, 그날 이후로 친구들은 하나 둘 그 의자를 사기 시작했다. 반에는 보급형 나무 의자와 쌔삥 플라스틱 의자가 공존했다. 부럽지는 않았다. 위화감이 조금 들었을 뿐이다. 나의 의자는 졸업할 때까지 주인이 여러 번 바뀌는 나무 의자였다.
주인공 한지우는 입시 명문 자사고에 입학했지만 ‘사배자’였다.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사연이 있는 아이들이 ‘사회적 배려 전형’을 통해 들어온 사례 말이다. 당연히 동급생들에 비해 내신 성적이 뒤처진다. 지우도 수학이 9등급이었다. 그런 지우를 향해 수학 담당이었던 담임은 “일반고로 전학을 가라”라고 권한다.
지우는 우연한 계기로 학교 경비원으로 일했던 탈북자 ‘이학성’을 만난다. 학성은 천재 수학자였으나 북한 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탈북했다.
“수학 한번 제대로 해보갔다고 목숨 걸고 국경을 넘어왔습네다. 북쪽에선 나의 수학이 오로지 무기 만드는 데 쓰여진다는 사실에 환멸을 느껴서 남쪽으로 내려왔더만, 여기서는 고작 좋은 대학 가고 돈 많이 버는 직장에 가는 수단으로 쓰이더군요.”
학성에게 밤마다 수학을 배우며 지우는 수학의 즐거움을 알아간다. 점수 잘 받기 위해 머리를 쥐어 짜내는 수학이 아니라, 신비한 원리로 가득 찬 수학. 3.141592... 의 무한소수 ‘파이’가 음악과 만났을 때 아름다운 화음이 이뤄지는 것까지. 그렇게 수학을 알아가던 지우는 수학 선생님의 오류를 지적하는 데까지 이른다. 그의 지적을 들은 선생은 말했다.
“니들도 잘 들어. 대한민국 시험에서 수험생이 할 일은 딱 하나야.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 출제자가 콩을 팥이라고 하면 팥인 거야. 거기에 토를 달아? 그럼 니들만 바보 되는 거야.”
예전부터 참된 어른을 갈망해왔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이나, <여인의 향기>에 알프레도, <굿 윌 헌팅>의 숀 교수, <세 얼간이>의 란쵸같은 사람들. 맹목적으로 주어진 길을 따르라고 가르치지 않고 거기 이르는 과정과 샛길을 보여주는 사람들. 이학성도 비슷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지우에게 깊게 감정이입을 했는데, 학성은 그에게 한 줄기 빛과 같았다.
마음은 아직도 고등학교 소년에 머물러 있어서, 그저 지우가 잘 되길 바라며 몰입했다. 누군가는 그 아픔을 알아봐 주기를, 구세주처럼 나타나 주기를! 그런데 돌아보니 참 많은 시간이 지났다. 멋진 어른을 갈구하기에는 내가 너무 어른이 되어버렸다. 화장실에 하루 회피해 있는 것으로는 주어진 책임감을 외면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말았다. 학생들을 쥐 잡듯이 잡아야 했던 진태는 얼마나 괴로웠을까가 이해되는 나이가 됐다. 어리광 부릴 곳은 점점 없어지는데, 누군가의 어른이 되어주어야 할 일은 많아져만 갔다. 아직도 배울 것은 산더미 같은데 말이다. 나무의자가 만들어 낸 상처 같은 거, 이미 무뎌진 지 오랜 세월이 지났으면서도 때로는 그보다 더 사소한 아픔에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여전하다.
수학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공식을 단순히 암기하지 말고 이해를 하라고. 그럼 쉽다고. 이학성도 지우에게 말했다. 이해를 하면 사랑하게 된다고. 그런데 삶은 수학과 달라, 머리로 이해 안 되는 것이 더 많았다. 이해할 수 없으니 사랑하지도 못하겠는데 사람들은 제 삶을 사랑하라며 권했다. 고통, 후회, 연민, 아픔, 이런 감정들을 공식처럼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아니, 차라리 공식처럼 암기라도 할 수 있게 되면 좀 나았을까. 수많은 번민과 후회를 지나쳐오며 공식은 틀어졌고 암기는 무의미해졌다. 그런 과정을 수차례 거치고 나니 키팅은, 이학성은, 란쵸는 점점 멀어졌다. 나는 변변찮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