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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Mar 29. 2017

지도교수 면담.

학부생으로 마지막 지도교수 면담을 했다. 실사판 수레바퀴 아래서를 찍고 온 기분이다.

"졸업하고 뭐할계획이니?"
"제가 중남미로 배낭여행 갔다온 기억이 너무 좋았어서요. 그쪽으로 중장기 파견 봉사나 인턴 같은 걸 해볼라구요. 스페인어도 계속 공부 하고싶구요. 마침 코이카에서 하는 2년짜리 프로그램은 전기전력분야도 뽑더라구요."
"2년? 너무 길지 않나? 그 뒤에는 뭐 할 건데?"
(웃으며)"아무 계획 없어요. 일단 지금 하고 싶은 건 그거에요."
"계획이 없다고? 너희 집 부자니?"
"아뇨. 저희집 가난해요."
편한 면담인 줄 알고 왔다. 나는 여유로운 표정과 몸동작, 말투로 교수님의 질문에 응했지만 교수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진다.
"자네 말대로 일이년 하고싶은거 하면서 자유롭게 사는 거도 좋지만 이걸 하고 나면 그 다음엔 뭘 할지, 계속 인생 계획을 세워 놓아야지.(중략)"
"교수님 근데 저는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것 만큼 무책임하고 미래에 대해 생각 없이 사는 학생이 아니에요. 전기과 어느 학생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부해요. 학점도 잘 챙기고 있고 언어공부도 열심히 하고 동아리 회장까지 하고 있는걸요. 다만 교수님께 표현하는 방식이 서툴 뿐인거죠."
"내가 지금 상당히 기분이 나빠. 자네 그렇게 말 하면서 방긋방긋 웃는건 원래 습관인가?"
"저는 면담 분위기가 무거워지는게 싫어서 계속 웃는건데요.(웃음)"
"웃는건 좋은데 말이야. 상황을 가려 가면서 해야지. 내가보기에 너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아."
".. (정색) 불편하셨다면 죄송해요. 좋은 거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원래 어른들을 대할 줄 모르거든요."
"그리고, 아까 너가 장난식으로 말한건지 난 잘 모르겠는데, 집이 가난하다며. 그럼 마냥 하고싶은 거만 하면서 살 순 없는거 아니냐? 너가 일을 하지 않아도 부모님이 괜찮은 수준이야? 부모님 걱정을 해야지."
"교수님 저는 불효자 아니에요. 가정에서 부모님한테 얼마나 따뜻하게 하려고 노력하는데요. 다만, 부모님 편하게 해드리고자 당장 맞지 않는 분야로 취직 해서 평생 불행하게 살면서 부모님을 원망하느니, 지금 좀 방황하더라도 하고싶은 일을 찾고 싶어요. 4년동안 적성에 맞지 않는 과 공부 하느라 얼마나 괴로웠는데요."
"별 생각 없이 사는거는 ... (생략)"

경제적인 잣대로 학생의 미래를 재단해 놓고서는 거기에 끼워 맞추시려는 당신의 태도도 역겹구요.
학생의 꿈을 키워주진 못할 망정 짓밟아 버려서 사회에 참 도움되는 기계같은 인재로 편입 시키려는 당신의 교수관도 참 마음에 안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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