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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May 05. 2017

소하동 이야기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떨어져 이모 댁에서 살다가 우리 가족이 다시 합친 것은 내가 6살 때였다. 소하동으로 처음 오던 날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가족이 같은 차에 탄 게 오랜만이었다. 내 기억 속에 처음 남은 아빠가 운전하는 모습이었다. 4명이 함께 살게 될 거라는 부푼 꿈이 여섯 살 어린 나를 기쁘게 했나 보다. 그로부터 20년이나 세월은 흘렀다.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거로는 손가락 안에 들 동네, 광명시 소하2동이다. 산업화 시절에는 소하리공장으로 광명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나 지금은 활기를 잃은 동네다. 우리 동을 기준으로 소하1동, 일직동, 광명역 주변에는 새 아파트 단지와 상업지구가 들어섰는데 이 동네만 낙후되어있다. 나도 다 쓰러져가는 우리 빌라가 마음에 안 들어서 아빠에게 늘 푸념한다.

"우린 언제 소하동 떠나?"

"허허. 돈을 조금만 더 모아 보자."

말로는 그렇게 했지만, 20년 세월이 어디 짧은가. 내 유년, 청소년 시절의 모든 추억이 담긴 동네인데. 언제 이사 갈지 모르니 빨리 동네 사진을 찍어 놓고 평생 간직해야지 생각했다. 생각만 하고 실천에 안 옮기던 찰나, 남미 여행기 다음으로는 무슨 이야기를 연재해 볼까 하던 중 우리 동네가 생각났다. '남미'라는 낯설고 새로운 모험의 땅에서 돌아와 이제는 내 방에서 출발해서 평범한 어린 시절이 묻어 있는 이곳을 소재로 글을 써 보자, 유년 시절의 모든 기억들을 사진과 함께 풀어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미 여행기는 색다른 환경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과 감정들을 글로 이어 붙이기만 하면 됐었다. 어떤 글을 쓰든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공간 여행은 그렇다. 그런데 여행이 꼭 공간 여행만 있으란 법은 없다. 소하동을 산책하면 항상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어떤 골목에는 초등학교 2학년 때 항상 내 이름을 맨 위에 올렸던 범버맨 오락기가 있는 슈퍼가 있다. 어떤 놀이터에는 학교 마치고 가서 신발 멀리 던지기를 하던 그네가 아직도 남아 있다. 집 앞 세탁소 아저씨는 세탁 퀄리티가 좋지 않지만 동네 마당발이다. 슈퍼 아주머니는 내가 몇 개월 안보이다 나타나면 늘 먼저 소식을 궁금해하신다. 요즘에는 세계로 마트라는 대형마트가 들어왔는데 이게 원래 있었던 대기업 GS슈퍼마켓을 몰아냈다. 원미동 사람들의 실사판을 보는 기분이다.


동네 친구와 카페에 앉아 단 둘이 수다를 떨자면 끝이 없을 어릴 적 이야기다. 하지만 글로 옮기는 작업은 또 다른 것 같다. 소재 자체가 너무 어렵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이 동네에 누가 관심을 가질까? 나만 재밌으면 안 될 텐데.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공감하고 즐거우려면 어떤 글을 써야 할까 많이 고민했다. 그래도 일단 시작해 보자. 별다른 굴곡 없이 살아온 내 인생이지만 이야기들을 잘만 풀어내면 재밌는 작품이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



지긋지긋한 이 동네를 떠나면 뛸 듯이 기쁘겠지만 떠나고 나면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은 이상한 동네. 고향이라고 하기엔 낯간지러운데 딱히 여기 말고는 '고향'이라 할 만한 지역도 없는 동네.

소하 2동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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