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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May 09. 2017

놀이터 이야기

소하동 사람들

집에 올 때 일부러 어릴 적 놀았던 놀이터를 거쳐 올 때가 있다. 요즘 놀이터를 가보면 대부분 바닥이 고무나 우레탄이지만 그때만 해도 다 모래였다. 지금은 어떻게 타는지도 모르겠는 기구들이 많이 들어왔던데 그땐 단순했다. 시소, 그네, 미끄럼틀, 동물원.(진짜 동물원이 아니다.)     


어렸을 적 가장 많이 간 놀이터가 두 개 있다. 각각 ‘개운 놀이터’와 ‘오리 놀이터’인데, 개운 놀이터는 큰 놀이터라고 불렀고 물개처럼 생긴 동상이 지하수와 연결되어 물을 뜰 수 있는 약수터가 있어서 물개 놀이터라고도 했다. 같은 이유로 오리 놀이터는 거북이 놀이터로 불렸다. 큰 놀이터 옆에는 당연히 작은 놀이터가 있었다. 작은 놀이터는 다니던 동네 학원 바로 옆의 아파트에 딸린 놀이터였다. 작은 놀이터에서는 주로 신발 던지기를 했다. 그네 위에 타서 신발을 멀리 던지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인데 나는 거의 1등을 한 걸로 기억한다. 그네가 정점을 찍으며 내려올 때쯤 발끝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신발을 쏘았다. 가끔은 너무 멀리 던져 신발이 담벼락 밖으로 넘어가서 곤욕을 겪기도 했다.


큰 놀이터에서는 할 수 있는 놀이가 많았다. 놀이터 입구에 정자가 하나 있다. 주로 어르신들이 더위를 피해 쉬었다 가는 정자다. 이거는 아직도 있어서 가끔 친구들이랑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정자에서는 ‘우리 집 너희 집’이라는 게임을 단골로 했다. 정자에 달린 8개의 기둥에 각각 자기 집을 하나씩 정하는 거다. 각자 집에 붙어 있다가 빈 곳으로 ‘남의 집!’ 하며 달려가는 식이다. 술래는 정자의 정 가운데에 있다가 플레이어들이 달려가는 틈을 타서 잡으면 된다. 왕따 게임 비슷한 거라고 보면 된다. 나랑 같이 놀던 친구들은 거기 전세 낸 것 마냥 정자를 마구 뛰어다녔다. 분명 거기서 쉬고 계시던 노인 분들도 있었을 텐데.     



발차기 동작이 인상적인 새천년 건강체조가 한창이던 2000년, 초등학교 2학년, 나는 그때 유재석에 빙의했었다. 지금의 소심한 성격으로는 상상할 수 없지만. 당시 TV 예능에 나오던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이 너무 재밌어서 그 포맷을 따라 친구들과 놀았다. 잘생긴 팀과 못생긴 팀으로 나누어 매주 게임을 하는데 진 팀에서 한 명씩 탈락시키는 그런 식이었다. 친구들이 너는 왜 탈락 안 하냐며, 너는 왜 잘생긴 팀이냐며 하도 따져서 결국 끝을 보지는 못했지만.. 오늘은 볼풀장, 내일은 작은 놀이터, 이런 식으로 장소도 제비뽑기로 정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이런 기질을 보였으니 그게 내 본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사춘기와 학창 시절을 겪으며 내성적이고 조용해진 지금의 내 모습이 진짜 나일까? 옛 유재석 빙의 시절의 나는 부활할 수 있을까? 미지수다.     

아무튼, 큰 놀이터는 나의 예능 프로그램 진행에 아주 좋은 장소였다. 요즘 애들도 이걸 하는지 모르겠는데, 땅따먹기 게임이 상당히 재밌다. 1번부터 8번까지, 그리고 ‘하늘’을 맨 끝에 놓고 각 번호마다 돌을 던져 차례로 땅을 따먹는 게임이다. 예를 들어 2번에 던질 차례인데 1번과 2번 사이의 금에 던져도 그 차례는 나가리인 거다. (지역마다 룰은 좀 다른 듯하다.) 3번이나 6번이 좋은 입지였던 걸로 기억한다.     


미끄럼틀에서도 응용할 수 있는 놀이가 굉장히 많다. 대표적인 게 탈출, 경찰과 도둑, 얼음 땡 등이다. 경도나 얼음땡은 상단부로 올라가 있다가 술래가 계단을 타고 올라오면 나는 미끄럼틀을 타고 슉 내려가 버리면 되었다. 다시 올라가려면 역으로 미끄럼틀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신발 밑창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거다. 탈출 게임의 정확한 룰은 기억이 안 나는데, 미끄럼틀 위에 있다가 순서대로 거기를 빠져나가는 뭐 그런 거였나 보다. 혹시 룰을 알고 계신 분은 꼭 좀 댓글에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끄럼틀에서 할 수 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고래사냥이었다. 술래는 미끄럼틀의 아래쪽에서 미끄럼틀을 올라 나머지 사람들을 흔들어댄다. 미끄럼틀 꼭대기에는 서서 타고 내려가지 말라고 낮은 위치에 봉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봉을 잡고 버티고 있는 거다.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내려오면 그 사람이 술래가 된다. 간혹 마찰력이 강한 신발을 신은 친구들은 아주 높이 올라와 봉 잡고 있는 손을 떼어놓기도 했다. 그러면 우리는 필사적으로 버티려고 온 몸을 베베 꼬았다. 바지를 벗기려 하는 친구도 있었는데,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떨어져 내려와야 한다. 어린 나이에도 부끄럼은 안다. 뭐 별 수 있겠는가.     



요즘 같은 고무 놀이터에서는 불가능한 놀이가 하나 있다. 바로 모래성 쌓기다. 바로 옆에 약수터도 있겠다, 물이 들어가면 금상첨화다. 모래를 깊게 파서 거기에 자기만의 나라를 만드는 거다. 그 위로 물을 흘려보낸다. 물들이 때론 흡수되기도 하고 웅덩이를 만들기도 한다. 그 사이에 터널도 만들고, 다리도 만들고, 여튼 어린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창의성이 드러나는 놀이터 놀이의 백미다. 물이 흘러가지 않으면 자기 땅이 아니다. 가장 큰 제국을 건설한 사람이 이기는데, 주요 요지를 차지하기 위해 싸움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옆 친구가 차지한 땅까지 물길을 넓혀 통합하기도 하고, 흡수하기도 했다. 주변으로 확장하지 못하고 자기 안에만 물이 고여 있는 나라는 결국 망했다. 우리는 이 게임을 통해 정치를, 지리를 몸소 익혔던 것 같다. 오! 이 게임은 교과서에 실려야 한다. 아, 모래가 너무 비위생적이어서 안되려나.     


밤이 되면 불꽃놀이를 했다. 어른들은 잘 때 오줌 싼다며 불꽃놀이는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원래 하지 말라는 것일수록 더 하고 싶은 법이다. 가장 대중적인 건 300원짜리 콩알탄이었다. 어느 모래 놀이터를 가든 바닥에 이 콩알탄의 잔재들이 박혀있었다. 조금 더 돈을 쓰면 막대 모양의 불꽃을 살 수 있는데 이건 꽤 리얼했다. ‘푱’ 소리도 났고 실제로 하늘에 불꽃이 쏘아졌다. 쥐불놀이처럼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얇은 막대기 불꽃도 있는데 이거는 좀 위험했다.     


놀이터 근처에 의류 수거함이 있었다. 어릴 때는 이게 뭔지 모르고 그 안에 인형이 들어있길래 기쁜 마음에 주워서 집으로 가지고 왔다. 누나와 공범이었다. 물론 엄마에게 드럽게 혼났다. 당장 다시 갖다 놓고 오라고 했다. 내가 인형을 너무 좋아하자 엄마는 거짓말을 했다. “그 인형에는 귀신이 씌어서 사람들이 갖다 버린 거야. 안 버리면 귀신이 밤에 널 잡아갈걸?” 어린 마음에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꿈에서도 귀신은 보기 싫었다. 원래 있던 자리에 인형을 갖다 놨다. 누나도 무서웠는지 “야 우리 귀신한테 죄송하다고 빌자.”했다. 우리는 그 밤에, 그 앞에서 무릎 꿇고 싹싹 빌며 “귀신님 죄송합니다. 귀신님 죄송합니다. 부디 우리 꿈에 나타나지 마세요.” 했었다. 아. 흑역사다.     


큰 놀이터 앞에는 가끔 꼬마 바이킹 아저씨가 왔다. 어린이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거금 500원을 들여 한 번 탈 수 있었다. 아저씨는 “이 바이킹은 거의 90도로 올라가. 롯데월드 바이킹 보다 훨씬 재밌어”라고 구라를 치며 아이들을 현혹했다. 난 어렸을 때 실제로 그렇게 느꼈다. 바이킹이 꼭대기에 올라갈 때는 내가 놀이터의 주인, 이 동네의 주인이 된 기분이었다. 요즘에는 마을에 이 꼬마 바이킹이 안 보이던데 좀 아쉽다.


글을 쓰다 보니 궁금해졌다. 이 시대 어린이들은 도대체 뭘 하고 놀까? 우리 때 없던 그들만의 또 다른 재미가 있겠지? 이런 상상을 하다 보면 어느새 놀이터를 훅 지나 집에 도착해 있다. 흐뭇한 미소로 회상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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