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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ernalYoung Aug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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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s of “The Whiteman” 서평

Portraits of “The Whiteman”; Linguistic play and cultural symbols amoing the Western Apache


 학교와 교회의 설립, 근대적인 모델의 경제개발 등 중요한 근대화의 과정들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리조나 주에있던 대부분의 웨스턴 아파치인들은 여전히 미국 사회의 외곽에 남아있으며 끈질기게 그들의 독특한 종족 정체성이나 문화체계 등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건강검진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 등으로 앵글로 아메리칸, 백인과의 접촉이 잦아졌다. 저자는 웨스턴 아파치인들의 백인에 관한 농담이 전혀 다른 형식의 인간 지침에 대한 인식된 차이에 관해서 캐릭터들에 대한 의견일뿐 아니라 앵글로 아메리칸에 대해 모방을 하는 것은 두개의 매우 어긋나는 사회적 규범들이 사회적 대면을 통해 충돌하였을때 자존감을 가지고 그들이 어떻게 품위있게 지낼수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고 했다.        

 따라서 이때 이들 농담에서의 ‘백인’이란 그 전에는 없던 사회적 카테고리이자 문화적인 상징이며, 아파치인들의 추상적인 아이디어와 가치들의 총합인 것이다. ‘농담’이라는 담론의 형성 방법은 아파치인이 다언어사회인데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다언어사용 사회에서 전형적으로 언어는 차별적인 기능을 가진다.  문학에서 전경화foregounding이라고 불리는 개념인데 특정언어를 사용해서 그 언어를 원래 사용하는 사람들을 카테고리화 하고 그들에 대해 매우 문화적으로 특수한 태도나 가치들을 보여줄 수 있다. 또한 언어를 통해 일반적으로 그 언어가 사용되는 상황처럼 일련의 세팅을 할 수  있다.  

 언어전환Language switch를 통해 그 언어에 일상적으로 연관되는 발화자들의 정형화된 제스처와 표정 등 대조적인 이미지들을 만드는 것이다. 고프만의 연극이론을 적용한다면 농담이라는 인위적인 세계를 통해 농담자와 상대방은 자신의 정체성이 포함하지 않던 가면을 쓰게 되고 농담의 수행을 통해 창의적인 발명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  이 작은 연극은 영어로 이루어 지며 주로 농담자와 농담자가 사용하는 가면, 백인은 모두 성인 남성이다. 관객이 10명 남짓한 술을 마시는 파티나 사교적 활동의 장소가 주 무대이며 농담의 상대방but은 결혼으로 맺어진 형제들이나 모계사촌처럼 농담이 의무인 관계들인 경우도 있다.  

  아파치들이 하는 백인에 대한 농담의 해석적인 기능은 매우 명확하다. 백인은 너무나 잘못된 행동을 하기 때문에 농담은 주로 이들을 대조와 왜곡을 통해 보여주고 아파치들의 적절한 행동과 비교하여 비난하기 위한 목적이다. 책에서 농담 사례를 통해 제시되는데, 아파치들은 백인들이 성급하게 친구라고 부르거나(Hey friend!) 친구관계를 설정하는 것을 싫어한다. 개인 건간이나 감정, 상태에 대한 질문(How you feeling?)은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등장하거나 퇴장할 때는 주목(Look here everybody)을 받지 않고 조용이 하고 싶어 한다.  또한 개인의 이름을 부르는 행동은 일반적이지 않으며, 과한 신체접촉 역시 삼가야한다. 백인들의 가장 큰 특징으로 여겨지는 명령조(Don’t stand outside, come in)로 말하거나 우두머리 행세를 하고, 모든 것을 다 아는 행세를 하는 것은 아파치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이다 .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혹은 대답을 듣지 않고 질문을 퍼붇는 것은 무례하다.  불운한 상황에 대한 암시나 추측(Maybe you get sick)은 해서는 안되며 다른 사람의 외모를 지적해서도 안된다. 크고 높고 과장된 목소리톤은 듣는 사람을 짜증나고 초조하게 한다. 패턴화 되어 있는 농담 상대방의 대답을 통해서도 아파치인들이 백인들에 대해 비난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상대방은 주로 백인은 역시 자기행동에 대한 인식이 안되는 사람들, 겸손하거나 신중하지 못하고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척하는 오만한 사람들 등으로 대답한다.  

 아파치의 백인에 관한 농담을 저자는  백인과의 접촉과 사회적 상호작용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너무 달라 서로 충돌하는 문화들에 대한 아파치의 미세한 차원의 현실해석이며 농담이라는 재치있는 방법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려 한다고 말한다. 비슷한 예시로 유대인에 관한 농담(Jewish joke)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오랜시간 동안 흩어져 초국가적인 생활을 하며 다양한 사회와 교류해온 유대인들 때문에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단어도 생기게 되었다. 또한 각지에서 유대인들과 사회적으로 상호작용하던 많은 사람들이 아파치와 백인들처럼 충돌하는 사회규범들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유대인에 대한 관점과 해석을 담은 농담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유대인 농담은 그 양이 매우 방대하고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면 매우 쉽게 볼 수 있다. 필자는  구글에서  5 Best Jewish joke Ever 을 통해 간략하게 살펴 보았다. 5개의 농담에서 유대인에 관한 테마는 각각 종교(랍비, 유대교와 기독교),  음식(Matzo-ball soup), 문화(할례), 문화(Jewish divorce custom), 음식 혹은 문화

(Matzo)였다. 아파치인들의 농담이 백인을 명백히 ‘틀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하고 이들을 모방하여 조롱하는 방식이었다면 유대인에 관한 농담은 유대인을 떠올릴 수 있는 특정 의례나 음식등의 문화적 요소를 사용한다. 일종의 환유의 방식을 채택했다고 볼 수 있다.

조롱을 위해 아파치 농담에서 사용되었던 대조와 왜곡이라는 방식이 유대인 농담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오랫동안 다양한 사회의 가치와 관점이 반영되었기 때문에 약간의 웃음을 위한 비꼼은 있더라도 유대인의 문화를 틀렸다고 말하지 않고, 농담의 정도도 비교적 약하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컬러풀 웨딩즈(2014)>라는 프랑스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보통의 프랑스 가정에서 4명의 딸이 각각 중국인, 아랍인, 흑인, 유대인 남편들과 결혼하며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영화의 주된 내용인데 이 영화에서도 유대인 남편과 결혼한 딸 에피소드에서 가장 명확히 보여주었던 것이 랍비와 할례, 코셔(Kosher)음식 문화였다. 영화 장르가 코믹이기도 하고 연극과 맥을 같이하는 영화라는 특수한 형식을 고려하였을 때 이 영화 역시 점점더 다문화적이 되는 프랑스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회 갈등과 문화적 충돌에 대한 프랑스인 감독의 해석과 관점이 반영된 일종의 농담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아파치인들의 백인들에 대한 농담이 농담을 주고 받는(농담자와 농담 상대방) 사이의 관계를 늘이는 (Stretching the relationship)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고, 농담을 통해 어쩌면 위험하다고도 할 수 있는 수위의 농담을 통해 돈독한 그들의 관계를 과시하는 역할을 했다면 이 영화 역시 비슷한 사회적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어쩌면 위험하고 민감한 소재일 수 있는 인종과 종교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농담(코믹 영화)를 하는 감독은 이러한 다양한 문화적 갈등 조차 포용하여 다채로운 사회를 형성해가고 있는 프랑스 사회를 세계에 과시하고  프랑스 사회 내의 구성원들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기능을 목적으로 두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파치의 농담은 연극과 모방이라는 뚜렷한 형식으로서 부적절한 사회적 행동에 대한 도덕적인 명분 혹은 방패(커버)를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때문에 농담자는 1차 텍스트인 현실에서는 누릴 수 없는 도덕적 자유를 가지고 실제로 소유하지 못한 정체성을 자신과 농담 상대바에게 자의적으로 부여할 수 있다. 농담 내의 백인을 모방하여 만든 세계가 아파치 사회라는 현실에서 매우 부적절한 행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프레임이 깨진다면 농담자와 상대방의 관계가 깨질 수 있는 위험부담을 가진다. 영화의 경우,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향성을 가진다. 다민족, 인종, 종교 간의 조화로운 사회가 완벽하게만은 이루어지지 않은 1차 텍스트인 현실에 대해 완곡한 어조로 비판하고 좌충우돌 끝에 행복하고 함께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보여주어 넌지시 바람직한 사회에 대한 제안을 한다.  농담이라는 2차 텍스트 내부의 더 나은 사회라는 긍정적인 방향성은 농담이 실패해도, 프레임이 깨져도 감독과 관객, 프랑스 사회내의 구성원들의 관계가 찢어질 가능성과 위험부담을 낮춰준다.   

 이처럼 재미있지만 위험한 농담에서는 “농담 가능한 관계”의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  주한인도네시아 대사관에서 열리는 인도네시아 전통 오케스트라 가믈란 수업에 참여관찰하며 농담 가능한 관계의 형성에 대해 경험한 적이 있다.  가믈란 선생님인 우기씨가 처음 만났을 때 Pak(남성 어른, 아버지, 아저씨, 선생님)-Saya(저)/Mbak(아가씨, 젊은 여성)의 호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때 필자가 “Saya orang Jogja.(저 족자 사람이에요.)”라고 하자 선생님이 매우 당황하며 “진짜요?” 라고 되물었다. 그리고나선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Benaran orang jogja(정말로 족자 사람이에요)?”, “Suaminya orang jogja(남편이 족자사람이에요)?”라고 물었다. 이것은 농담이 실패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연구자가 선생님의 출신지인 족자에서 1년동안 거주했다는 정보가 없었고, 농담이 가능한 사회적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충분한 2차적 맥락, 농담이라는 맥락이 전달되지 않았다. 그러나 “농담 불/가능한 관계”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몇달간의 참여관찰이 지난 후, Mas(젊은 남성, 형, 오빠)-Kamu(비격식 너)의 호칭으로 변화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가믈란 연습 중 악기의 울림통 지지대가 망가진 상황이 있었다. 선생님이 마침 오셨을 때 “이게 너무 흔들려요. 고장난 거 같아요”라고 하자 우기씨(선생님)이 “너가 망가뜨렸지? 내가 너무 세게 칠때부터 알아봤어”라고 하였다. 이는 농담 가능한 사회적 관계로 변모했음을 보여준다. 농담은 관계를 유연하게 만들어 재미있지만 언제나 사회적 관계를 파열시킬 위험을 안고있어 동시에 위험하다. 그런데 충분히 라포가 형성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농담은 위험한 것이 아닌 재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른 예시로,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경우 네덜란드 식민지기를 겪으면서 갑작스레 백인(이 경우 유럽인, 특히 네덜란드인)들과 교류가 많아지고 사회적 상호작용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이들을 지칭하는 Bule불레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사회에서 외적, 문화적으로 다른 집단과 접촉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다양한 사회변화가 일어났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현대에 와서는 국적, 언어 등 출신에 관계없이 백인을 불레레고 부르고 있다. 불레에 관한 농담은 알고 있는 바가 많이 없지만 일반적으로 요즘 불레라는 단어와 많이 사용되는 말들이 있다. 예를 들어 Bule Price , Bule Hunter , Bule house, Bule marketing등이다. 불레 가격이란 관광지 등지에서 인도네시아인처럼 생기지 않은 외국인들에게 2~10배 정도 높은 가격을 매기는 것을 말한다. 외모가 일반적으로 기준이 되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인이라 하더라도 아랍계, 중국계라면 간혹 해당하는 경우가 있으며 이때는 유창한 인도네시아 언어를 통해 불레 가격을 피한다. 불레 헌터란 외국인과 집착적으로 어울리고 싶어 하거나 외국인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어하는 사람들, 외국인과 영어 연습, 사진 촬영 등의 목적을 가지고 공격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불레 마케팅이란 어떠한 행사나 물건을 광고함에 있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백인 외국인을 전면에 내세워 광고 주목효과를 노리는 것을 말한다. 그 외 외국인이 사는 집이란 뜻의 불레 하우스 등이 있다.  이 불레에서 보여지는 예시에서는 농담이나 연극이 주는 형식적 유사점은 볼 수 없지만 문화적으로 다른 두 집단이 면대면 상황에 자주 놓이게 될 때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불레라는 단어와 관련된 현상들에 관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눈으로 구별할 수 있는 ‘피부 색’인 것으로 보인다. 많은 경우 불레인 외국인은 백인으로, 인도네시아인은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사람으로 상정된다. 당연히 흰 피부를 가지지 않은 외국인들이나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처럼 밝은 피부색을 가진 인도네시아인들은 담론 밖에 밀려나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된다.  

     아파치인들이 멍청한 백인들, 오만한 백인들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과는 대조적으로 불레라는 단어와 실생활에서의 사용을 통해 인도네시아 사람들 사이에 백인은 뭔가 좋은 것, 검은 색 보다 흰색은 더 좋은 것, 심지어 백인인 외국인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아파치인이 자신의 영역으로 점점 더 밀고들어오는 백인들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것과는 다르게 왜 인도네시아인들은 백인들을 우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과거 색민지배자였던 네덜란드인(백인)들과 피지배자였던 인도네시아인들의 역사에서 그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  식민제국 시기 프랑스에서 알제리 출신 검은 피부의 지식인이자 정신과 의사였던 프란츠 파농은 <검은 얼굴, 흰 가면>에서 흑인과 아들러의 이론에 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을 앙틀레스인들에게 적용해본다면 이 관점에서 흑인은 비교대상이다.  그는 비교대상으로서 자기 평가와 자아 이상에 집착한다. 자신의 모든 입장과 안정감의 정도도 타자를 얼마나 위축시키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이때 타자는 나에게 주체적인 승인을 확인케 해주는 도구일 뿐이며, 나의 충만을 위해 무대에 출현할 뿐이고 그 세계에서 나만이 영웅이다. 하지만 이는 앙틸레스인들에게 개인심리가 아닌 보편적 특징이다. 이들은 모두 신경증 환자며 앙틸레스 사회 전체가 신경증 사회, “비교” 대상을 필요로 하는 사회다. 아들러가 의미하는 비교 대상의 개념의 도식이 “자아>타자”라면 파농이 제시하는 앙틸레스인의 비교 대상 개념 도식은 “백인/자아>타자”이다. 아들러 식의 비교 대상이라는 개념 속에는 자아에 의해 양극화된 두 가지대상만이 존재하는데 반해 앙틸레스인의 비교 대상에는 백인이라는 제 3의 개념이 개입한다. 이것은 소위 허구적 지배로 개인적이 아닌 사회적인 것이다. 이를 백인 네덜란드인들과 인도네시아인들의 관계에도 적용해 본다면 백인이라는 지배자의 개념이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에 불레라는 인식도 사회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당시 인도네시아 사회 역시 많은 개인들이 자신의 주체성을 승인받기 위해 백인과의 비교, 백인의 승인에 집착했었음을 유추 할 수 있다.


          

[1]

(https://www.huffingtonpost.com/lawrence-rifkin/5-best-jewish-jokes-ever_b_76308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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