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la S. Chudori의 『집』 (Home)과 Linda Le의 『중상모략』 (Slander)를 중심으로
작품의 영어제목인 Slander, 프랑스어 원제인 Calomnies 모두 중상모략, 비방, 험담 등을 뜻한다. 한국어에서 중상모략이란 근거 없는 말로 남을 헐뜯고 사실을 왜곡하거나 속임수를 써 남을 해롭게 한다는 뜻이다. 즉 제목에서부터 우리는 어딘가에서 환영받지 못한 자들, 그리고 오해받은 자들에 대한 이야기임을 추론할 수 있다. 특히 작가인 린다레가 베트남을 떠나온 1977년경이라는 역사적 상황은 이미 오명이 씌인 자들이 배제와 차별의 대상이 되고 결국 그들은 스스로 떠나야 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을 보여준다. 그리고 스스로 떠나온 자들은 적극적으로 정착할 곳을 찾아 나서야만 했다.
베트남전쟁 이후 남베트남의 패망으로 인해 북베트남이 사회주의 통일을 이루었다. 통일을 성공한 베트남은 정당성을 확보한 상태로 국가통합을 위해 민족주의를 이용한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을 물리쳤다는 베트남정부의 자부심은 국내의 화교를 비롯한 타자들을 박해하는 국수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또한 베트남이라는 영토를 떠나기 이전에도 베트남은 통일의 과정에서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고향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통일 전의 베트남과 통일 후의 베트남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또한 물리적인 망명을 실행하기 이전에도 민족-국가 내부에서 성공적인 통일을 위해 진행된 편협한 민족주의 하에서 이질적인 존재들은 모두 차별, 격리, 배척 등 국가 내부에서의 추방, 즉 봉쇄의 상황에 처해있었다. 망명을 떠난 이들은 이미 모국의 민족-국가 내부에서도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최호림(2007)에 따르면, 베트남의 문화정책은 1940년대 중반이후 지속적으로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강조해왔다고 한다. 민족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의 영도적인 개념 중 특히 강조되는 한 가지는 조상들의 위대한 업적을 기념하는 것이며, “물을 마실 때는 그 근원을 상기하라”(uong nuoc nho uguon) 는 속담으로 표현되고 있다. 즉, ‘원래 자신의 것’이 곧 ‘최고의’ 민족 문화라는 의미를 다시 내포함으로써 ‘이방의 것’과 대조되는 것으로서 ‘원래 자신의 것’ 으로 돌아갈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계속되는 ‘우리'에 대한 강조는 자연스럽게 ‘타자'에 대한 경계와 차별, 배제와 억압으로 귀결된다.
첫번째로 삼촌인 광인(Madman)에게 있어 망명은 강제 추방으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자유와 탈출로서 의미를 가지게 되는 변화가 나타난다. 그는 모국의 민족주의의 희생자로서 남아있기를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망명의 의미를 재정의한다. 그에게 망명은 비록 원치 않게 시작된 것일지라도 자신을 배척하던 곳에서의 탈출 성공으로 인한 자유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망명 이전, 그가 처해있던 내부에서의 추방, 다시 말해 봉쇄의 상황이 묘사된다. 삼촌의 가족들은 삼촌 이전의 미친 ‘조상’에게 가짜 무덤을 만들어 ‘사회적 죽음'을 선고했었다. 가족들은 이번엔 통제불능인 삼촌을 미쳤다고 말했고, 요양원(the sanitorium)에 격리시켰다. 그리고 후에는 프랑스 코레즈에 있는 정신병원(asylum)에 보냈다. 왜냐하면 칼을 든 미친 삼촌의 존재는 가족들에게 잊으려 했던 그 미친 조상의 존재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매세대마다 미친자로 지정될 한명을 골라 희생시킴으로서 나머지 사람들은 미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얻었다. 삼촌에게 미쳤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저 그들이 강요하는 유전자를 차분하게 할 좁고 직선적인 방법을 따르지 않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미쳤다’고 언급하는 것 조차 매우 꺼렸고 그가 ‘아프다'고 말했다. ‘아프다'는 것은 일시적이고 회복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나 아플 수 있다. 그가 순응하길 거부하자 남은 것은 국외로의 추방밖에 없었다. 망명지에서도 물론 그는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미친사람, 거무스름한 외국인, 혐오스러운 자, 경멸스러운 프랑스의 외국인(The madman, the loathsome, swarthy foreigner, the métèque; p. 2) 등으로 불린다. 그는 이전에는 원숭이 얼굴로 불렸고 지금은 미친 중국인이라고 불린다고 말한다.(Before I was called Monkey-Face. Now they call me the Chinamad. ; p. 8) 외모와 인종적 특징이 프랑스에서의 정착에 문제가 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인종차별은 디아스포라 의식을 강화한다. 이런 인종차별은 후에 조카에게서도 같은 문제를 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촌은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강하게 다짐한다.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특별한 유대감을 느꼈다는 조카에게도 조언한다. “그들은 나를 강제로 추방했다. 그녀는 그녀 의지로 스스로 떠나왔고, 그녀가 예견하고 바랐던 대로 가족 유산으로부터 그녀를 떨어뜨릴 이민에 대한 기대 속에서 박수를 쳤다.” (They exiled me by force. She left of her own free will, clapping her hands with delight at the prospect of an immigration that-she foresaw, she hoped- would deliver her from the family heritage. P. 3) 강제 추방을 당한 삼촌과 달리 조카는 스스로 떠나온 것이다. “우리, 그녀랑 나는, 어디에서도 오지 않았다. 나는 그 나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국가 없는 미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녀는 언젠가 가족과 국가를 찾으리라는 믿음을 반드시 버려야한다.” (We are from nowhere, she and I. I won’t go back to the Country; I will be a madman without a country. She must stop believing that someday she will find a family, a country. pp.143) 국가 없는 미친 자가 되기를 다짐하는 바로 그 순간 망명은 극단적인 자유의 추구라는 의미를 획득한다.
그 후 조카인 여성화자는 스스로 모국을 떠나 프랑스 사회에 동화하려 노력한다. 프랑스어는 그녀의 유일한 언어, 그녀의 도구, 그녀의 무기가 되었다. 그녀가 가족에 대항하여, 국가에 대항하여 사용하는 무기. 그녀에게 프랑스어는 삼촌의 광기와 같은 것이었다. 즉, 가족을 벗어나는 방법이자 그녀의 고독과 정신의 온전함을 보호하는 방법인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인종의 장벽은 쉽게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동화하려는 시도가 실패하고 그녀는 프랑스 내부의 디아스포라 공동체에 연루된다. “그녀를 더욱 더 짜증나게 한 것은 낯선 사람이 그녀에게 모국어로 말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동포들이 우연히 같은 이국땅에서 스스로를 찾는다는 구실로 그녀에게 접근하는 것을 싫어했다.”(What irritated her even more was that the stranger had addressed her in her native language. More than anything she hated it when compatriots approached her on the pretext of finding themselves by chance in the same foreign land. pp.10) 인종, 외모, 언어로 인해 실패한 프랑스로의 동화노력이 같은 이유로 베트남 디아스포라가 본인이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여성화자를 디아스포라의 구성원으로 포섭한 것이다. 특히 삼촌으로 밝혀진 제화공(the shoe repairman)은 언제나 베트남인으로서의 인식, 확고한 정체성, 향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 주인공을 먼저 보았을때 외적인 요소로 인해 그녀를 베트남인 동포로서 인식하였다. 이는 베트남의 신화 속 믿음과 베트남어의 호칭어로 인한 사회적 관계의 형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테스 도(2005)는 린다레의 작품에서 근친상간은 더 광범위하고 일반적으로는, 쌍둥이 간의 성적인 결합을 넘어서 베트남 사람들 사이의 영적인 유대로 확장된다고 말한다. 베트남의 기원에 대한 신화가 혈연관계에서 동포 겨레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베트남 사람이라는 것은, 같은 자궁에서 나왔다는 것으로 후손들은 아버지 용인 낙용군(Lạc Long Quân)와 어머니 요정 구희( u Cơ)라는 공통의 신화적인 부모를 갖는다. 무경(2000)의 『베트남의 신화와 전설』에 태곳적이라는 건국설화를 보면, “용군과 구희가 함께 산 지 1년 만에 구희는 삼 하나를 낳았는데,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들판에 내다 버렸다. 7일이 지나자 삼이 열리며 백개의 알이 나왔는데, 알 하나마다 사내아이 하나가 태어났다. […] 구희가 낳은 백명의 아들은 백월(百越)의 시조다.”라고 한다. 모든 베트남인들이 예외없이 서로를 같은 가족의 자녀들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매우 비유적인 단어 đồng bào(동포)라는 단어의 뜻은 “같은 자궁에서 온"으로 그들의 동포를 지칭하면서 그들 사이의 가족적 유대를 재강화한다. 이 유대는 그들이 서로 사용하는 친족용어로서 견고해진다.
후웅 딩 란(2011)에 따르면, “베트남의 가족주의는 호칭어에서도 나타난다. 베트남인들은 지극히 공식적인 자리를 제외하면 직장, 학교, 어디에서건 지위와 고하를 막론하고 그저 장유유서의 관념에 따라 서로를 ‘Anh(형/오빠)’, ‘Chi(누나/언니)’, ‘Em(동생)’ 그리고 삼촌뻘이 되는 사람은 ‘Chu(작은 아버지)’, 조카뻘이 되는 사람은 ‘Chau(조카)’라고 부른다. 베트남 국민 모두는 이렇듯 형, 누나, 동생, 삼촌, 조카 등 가족호칭으로 부르고 불리는 한 가족이다. 친족화 하는 호칭어는 회사뿐 아니라 학교, 병원, 식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사회에 있는 개인마다 집단, 단체의 작용을 받고 집단에 사람들은 집단을 큰 가족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또한 “부부가 대화할 때 남편이 아내를 ‘em(동생)’라고 부르는 것은 가장 많이 통용되는 것으로서 원래 형제간에 사용되나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이가 적은 사람을 부르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반면 아내가 남편을 ‘anh(오빠/형)’이라고 부르는데 남편이 아내보다 어려도 사용한다. 아내는 한 등급 낮게, 남편은 한 등급 높은 호칭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호칭어와 지칭어를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베트남어의 언어예절의 영향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처럼 친밀감을 표현할 수 있는 친족 호칭어가 폭넓게 사용된다. 친족 호칭어를 사회에서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연인과 배우자 사이에서도 가족 내 형제나 같은 세대의 사람들을 칭하는 용어를 사용한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혼란스럽게 서로를 부르는 방법은 형제, 동포, 연인 사이의 경계를 흐리고 그들간의 관계에 근친상간적인 함축을 가져온다. 베트남 디아스포라의 사회적 맥락을 고려했을때, 삼촌과 조카로 밝혀진 베트남인 제화공과 여자 주인공 사이의 상호적인 끌림은 근친상관적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이 우연적인 만남 이전에 서로를 알았거나 연루되어 있었던것 과는 관계없이, 두 이민자들은 이미 인종, 외모 그리고 언어에 기반한 유대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을 다른 프랑스 원어민들과 분리시킨다. 파리의 공원에서 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진행되는 대화 속에서 제화공은 “자매"라는 친족용어로 그녀를 호명하여 오로지 인종적 배경에서 비롯한 가족성을 부과한다. 억압하는 가족에게서 탈출한 삼촌은 역설적으로 가족성을 부과한 주체가 되었고 이것은 여자 주인공이 불편함을 느끼게 했다. 전통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관계에 익숙한 삼촌은 도처에 지배와 통제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가족을 지배로부터의 피난처로 삼기보다는 지배의 현장으로 만드는 것에 더욱 익숙했던 것이다. 그는 가족 밖이 아닌 가족 안에서 인정을 받고 싶었다. 또한 여자 주인공은 제화공이 혈연관계의 삼촌이라는 것을 안 후에야 이 관계를 받아들였다. 그녀는 처음부터 디아스포라의 구성원들과 관계 맺기를 희망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