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무요원 여우씨의 일일 - 17
이문구의 『관촌수필』의 주인공은 낚시꾼들의 간드레 불을 유년 시절의 환상과 추억이 깃든 도깨비불로 착각하고 반가움과 즐거움에 들떠 희미한 빛 덩이 하나하나를 세기 시작한다. 그러나 복산이가 그 불빛의 실체를 알려주자, 그는 ‘무슨 재산붙이를 어둠 속에 잃고 찾지 못한 투로 무거워진 가슴’으로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거꾸로 떨어진 기분’을 느낀다. 그는 벅찬 감정에 휩싸인 채로 그것이 순수함을 간직하던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살아 있는’ 불이라고 생각하지만, 복산이의 말을 들은 후에 불꽃들이 제자리에 ‘죽어 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복산이가 옆에 없었다면, 애초에 그가 복산이에게 도깨비불에 대한 언지를 하지 않았다면 그에게는 도깨비불이 여전히 실존하는 대상처럼 남았을지도 모른다. 조르주 디디-위베르반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깨비불이 그에게서 소멸된 이유는 그가 머물러 있는 장소가 더 이상 도깨비불을 발견하기에 좋은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의 장소는 절대적 객체, 영향력이 완벽하게 없는 대상으로서의 장소가 아닌, 변화된 현실을 인식하게 하며 그의 상상력을 파기하고 ‘계몽’시키는 복산과 더불어 있는 장소이자, ‘서울서 온 낚시꾼’에 의해 그의 경험과 느낌이 훼손되는 장소이다. 네트워크처럼 방대하고 난잡하게 얽혀 있던 자아의 편린 일부가 변형되면서 전체적인 사고 회로에 영향을 미치고, 기억을 보정함으로써 보존하고 싶은 욕구와 현재가 불러일으킨 과거에 대한 회의감과 불신이 대결하며 트러블을 일으킨다.
그러나 위베르만이 파솔리니의 한계로 ‘혐오스러운 역사의 현재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현하는 것을 상기의 새로움과 ‘순결한’ 새로움으로서 보는 능력’의 소멸을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현재가 언제나 과거와 착종된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주어진다는 점을 인식하고, 스펙터클한 조명과 수많은 연장근무가 만드는 화려한 야경을 암흑으로 만든 후 그 속에 감추어져 있던 미소한 빛의 ‘잔존’을 지각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푸코는 칸트의 계몽을 묵시록적 징후나 니힐리즘적 지옥으로서만 표상되는 현재가 아닌 ‘현재’ 그 자체의 의미를 묻는 ‘현대적 태도’로 간주했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경계이고, 이 경계(한계)에 대한 성찰이 바로 비판이라면, 카르페 디엠은 순간순간의 실천적 비판을 통해 단순한 규범과 보편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위반과 변동을 통해 수직적인 일신론의 세계에서 탈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기적 시간성에 귀속되고 타자에 의해서도 정의되는 ‘나’를 인정하는 그 속에서 자유의 한계를 탐구하는, 자발적인 종말과 자발적인 구원의 반복이 연대해야 한다는, 현대적 인류를 향한 언명이 아닐까.
이 글 어딘가..
김항(2016). 『종말론 사무소』
이문구. 『관촌수필』 (2018학년도 대수능 일부 참고)
조르주 디디-위베르만(2020). 『반딧불의 잔존』
파스칼 키냐르(2021). 『하룻낮의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