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여우 Feb 13. 2023

땀에 젖은 아우라

사회복무요원 여우씨의 일일 - 16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고 했었나,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침울하고 꿉꿉한 글과 사진들을 자주 봐서 그런지 별로 공감이 되는 말은 아니었으나 그건 나의 알고리즘 탓이었고, 돋보기만 눌러도 쏟아지는 밈과 릴스의 챌린지, 자기계발의 전시회를 구경할 수 있다. 입장료는 마이 데이터, 유얼 데이터, 아월 데이터, 데얼 데이터.      

‘헬창’이라는 단어는 상스럽지만 유행처럼 번지는 운동에의 열정과 광기를 잘 드러내는 표현인 것 같아 신어 중 직관적으로 의미를 명쾌하게 전달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국소해부학 교재의 모델로 등장해도 될 정도로 선명한 근육을 자랑하는 사진들을 보면 땀에 젖어 지친 육체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고, 아날로그의 물질 그 자체가 내뿜는 생기는 시공간을 초월해 디지털로 변환되었다가 다시 아날로그의 상태로 흩날린다.

      

물신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아우라가 살아남을 곳은 없다고 비관하고들 하지만, 아직까지 완벽한 복제 기술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 개체 각각은 특수한 아우라를 지니고 있기에 역동적인 ‘헬창’들의 모습은 능력주의에 대한 탄력적인 저항인 동시에 순응이라고 할 수 있다. 잘생기고 공부 잘하는 새끼들은 운동하면 안된다는 자조적인 댓글들처럼, 능력주의를 받아들이면서도 ‘노오력’이 배신하지 않는 영역이 바로 ‘몸 만들기’라는 집합적인 감정을 공유하고 있기에 헬스의 유행이 가능하고, 집합적 감성은 개인의 원자화를 넘어서 이런저런 시대를 특정짓는 일종의 아우라의 가능 조건을 창조한다. 그렇다면 단단한 몸에서 나오는 아우라는, 개별적인 육체의 특이성이 가지는 아우라와, 대중문화로서의 헬스에 참여하는 행위 그 자체가 자아내는 아우라가 혼합된 신축성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아우라가 점점 옅어질 때는, 헬스의 유행이 사그라들 때일 것이고, 그때는 아마 노력도 재능이라는 잔인한 말이 독사가 되었을 때가 아닐까.     


물론 난 운동이라면 치를 떨기에, 그들의 결과물에 감탄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동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열심히 벤치프레스를 하는 영상이 끝나고 스크롤을 내리면, 단체로 시발섹스를 외치며 제로투를 추는 클럽의 영상이 나오고, 그 다음은 MZ 세대 풍자 영상, 그 다음은 뉴진스의 하입보이, 그 다음은 옛날 무한도전 클립, 그 다음은 퀴어플러팅하는 이성애자 남성들의 헬스 영상, 그 다음은 나폴레옹의 성적 취향. 나폴레옹은 더티 페티시가 있었는지 자신의 아내에게 일주일 동안 씻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런 릴스의 장점은 댓글창에서 자기랑 비슷하다며 애인을 태그하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고,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관객들의 모습에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소소한 길티 플레저랄까. 그러다가 얼굴에 고양이 털이 붙은 부분이 간지러워질 때쯤, 핸드폰을 잠근다.     


나는 디지털 박물관에 박제할 수 있는 개인기가 없어서 온라인으로부터 외면당한 유령이 되고,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붙여 보려고 하지만 역시 SNS는 청소하지 않는 공중변소라는 생각을 했고, 이것은 자랑거리가 없는 내가 받는 벌칙이다. 나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너네는 아는 게 너무 많아서 너무 생각을 안 한다고 자위한다.



이 글 어딘가..

서이제(2021). 『0%를 향하여』

미셸 마페졸리(2017). 『부족의 시대』

작가의 이전글 은근한 어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