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8. 21._제주 한 달 살기
섭지코지 온 더 스톤 브런치카페
엄마인 나 혼자 부푼 가슴을 안고 ‘섭지코지(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로 향하였다. 에어컨 작동이 잘 되는 차를 타며 이동하는 길은 흡사 천국과도 같았다. 차 안에만 있어도 살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기에 30여분이라는 긴 시간을 달리고 달려 섭지코지에 도착했다. 열정이 부른 참사란 이런 것일까. 그늘 한 점 없는 김녕미로공원에서 더위로 고생하고도 섭지코지에 갈 생각을 하다니. 섭지코지도 그늘 한 점 없기는 매 한 가지였고, 후덥 한 바닷바람까지 겹치며 더위는 상상 이상이었다. 차에서 내려야 했다. 목적지에 왔으니 차 속에만 머무를 수는 없을 터. 일단 유아차를 꺼냈다. 안 그래도 무거운 유아차가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더위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았다.(정신을 붙잡지 않으면 안 되는 더위였다.)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지면 위에 유아차를 내리고 셋째를 유아차에 태웠다. 유아차에 냉각시트와 선풍기가 있다 해도 전혀 해소되지 않는 더위였다. ‘이렇게 까지 하는 게 맞을까. 열에 취약한 아이를 그늘 한 점 없는 해변가에 거닐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고민도 잠시, 눈앞에 펼쳐진 제주 바다의 드넓고, 푸르른 광경은 직진 본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맞다. 내가 이것을 보기 위해 뜨거운 더위를 해치고 왔던 것이지.’ 반면 큰아이들은 원성이 자자했다. “엄마, 너무 더워. 안 가면 안 돼?”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순 없지. 저기 올라가면 언덕 위에 말도 있을 거야. 우리 올라가 보자. 언덕 위라 조금 시원할지도 모르잖아?” 다행히 유아차가 갈 수 있도록 길이 잘 되어있어 더위만 아니면 이동하기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9년 전에 좋았던 기억만을 떠올리며 열심히 언덕 위를 올라갔다. 그땐 사람이 제법 많았던 것 같은데 경기 탓인지, 더위 탓인지(9년 전에도 한 여름이었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걷고 또 걸으며 생각했다. ‘해가 머리 위에 떠 있는 이 시간에 섭지코지를 온다는 게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일까.’ 그 생각과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변했다. 정말 숨도 못 쉴 만큼 더웠다. 울먹이듯 징징거리는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게다가 숨 쉴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더위 속에서도 잠이 든 셋째를 보니 정녕 못 할 짓을 했구나 싶었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 시원한 곳으로 가야만 했다. 이른 점심을 먹고 3시가 넘은 시각이 되니 슬슬 허기가 지는 기분도 들었다.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무거운 유아차를 밀며 더위와 사투한 탓에 도저히 저녁밥 해 먹을 힘이 남아있질 않았다. 그러니 집에 들어가기 전에 밖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들어가야만 했다. 저녁을 사 먹을 이유는 충분(?)했다. 검색을 한 끝에 우리의 저녁 식사를 책임져줄 장소는 수제버거를 파는 ‘온 더 스톤 브런치 카페(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해맞이해안로 2746H동 1층, 2층)’로 결정했다. 섭지코지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 있었고, 섭지코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서둘러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다. 10 여분을 달려 드디어 브런치 카페에 도착했다. 2층으로 된 건물이었고, 건물 앞에 제주 동쪽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경치가 좋은 곳이었다. 먼저 주차를 한 뒤, 식당을 둘러보기 위해 홀로 차에서 내렸다. 더위를 능가하는 문제가 또다시 발생할 거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는데, 새로운 시련이 나에게 닥치고 말았다. 고픈 배를 부여잡고 겨우 도착한 브런치 카페 식사 공간이 2층에만 마련되어 있었고, 당연히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그 말인즉슨 유아차를 들고 2층에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생각했다. 일단 여기서 밥을 먹어야 한다. 그럼 유아차를 올려야 하는데, 문제는 셋째를 어떻게 해야 하나 깊은 고민에 빠져든 것이다. 고민 끝에 유아차를 옮기기 전 아이들 먼저 윗 층으로 보내고, 큰아이들에게 셋째를 잠시 맡긴 사이(좌식 형태가 아니라 식탁 위에 셋째를 눕혀놓고 유아차를 이동시킬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아차부터 먼저 올려놓고 아이들을 차 속에서 기다리게 한 다음 함께 올라갔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아차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식당 점원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도움을 부탁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렇게 힘겹게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더위만 아니어도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잠에서 깨어난 직후라 셋째가 배가 많이 고픈 상태였다. 일단 우리가 먹을 음식부터 주문해 놓고, 셋째 수유를 했다. 이제 음식만 나와서 먹기만 하면 된다.
힘들고, 심지어 괴롭기까지 한 오후 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마음 편히 이른 저녁을 맛있게 즐겼다. 더위도 가시고 배까지 부른 시간. 너무나 행복했다. 고진감래와 같은 하루가 어쩌면 진짜 행복에 가까운 건 아닌지 새삼 깨닫게 한 하루였다.
자, 더위야! 덤벼라! 어디든 떠나 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