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27_2

2023. 08. 23._제주 한 달 살기

by 오늘도 시작

‘쇠소깍(제주 서귀포시 쇠소깍로 104)’으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험난했다. 초행길인 데다가 비가 억수같이 내렸기 때문. 일단 목적지를 정해놓았기에 가보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도착한 쇠소깍. 비가 멈출 줄 몰랐다. 앞이 안 보일만큼,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내렸다. ‘쇠소깍이 그렇게 좋다던데. 오늘 아니면 언제 올지 모르는 제주에서 그것도 쇠소깍을 또다시 올 수 있을까?’ 아쉬운 마음을 곱씹어 가며 발길을 돌렸다. 점심 식사 후라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왠지 모를 오기가 발동했다. ‘우리는 북쪽에서 제주 섬을 가로질러 남쪽인 서귀포를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한 달 살기가 며칠이 채 남지 않은 상황이다. 이렇게 돌아가기엔 너무나 아쉽다.’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들이 쉬이 내 발목을 놔주지 않았다. 그래서 결정했다. 근처에 있는 북카페를 찾아가 맛있는 음료를 마시며 책도 보기로. 더군다나 셋째의 수유 시간도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게 찾아 나선 북카페는 ‘백주산보(제주 서귀포시 칠십리로 406)’였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인지 카페 안을 들어서고 보니 손님은 우리 가족밖에 없었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 때문에 습한 기운만 사라져도 살 것만 같았다. 카페 ‘백주산보’는 건물이 두 채로 나뉘어 있었고, 주문은 왼쪽 건물에서 이루어졌고, 오른쪽 건물에 자리를 잡았다. 일단 아이들을 먼저 자리에 앉혔다. 한숨 돌리고 나서 음료를 주문하려고 보니 예상치 못한 손님을 맞이한 것처럼 사장님은 다소 분주해 보이셨다.(이렇게 비 오는 날, 가족 단위 손님이 들어서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실 수도.) 주문을 하려고 보니 아이들이 먹을만한 음료가 없었다. 탄산음료를 아직 먹지 않는 아이들인지라 에이드마저도 먹을 수 없는 음료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네 가족이 와서 커피 한 잔만 시킬 수는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스 바닐라 라테 한 잔과 청포도 에이드 한 잔을 시켜 먹기로 했다. 그렇게 찾아온 잠깐의 여유. 왼쪽 건물에 마련되어 있는 책들을 보기 위해 나는 셋째를 큰 아이들에게 잠시 맡기고 이동하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둘째가 뒤쫓아온다. “엄마, 책 보지 말고, 가자.” “엄마 음료 나올 때까지만 보고 갈게.” “아, 싫어. 그냥 가자.” 평소 잘 그러지 않던 둘째가 보채기 시작한 것이다. 잘 달래서 보내야지 싶어 일단 자리로 돌려보내고 나는 비치된 책을 보는데 둘째의 보챔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생각보다 책이 많지 않아(대체로 영화 관련 서적) 음료가 나오자마자 자리로 돌아갔다. 우리 가족뿐인 커피숍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달달한 바닐라 라테까지. 쇠소깍의 아쉬움이 단번에 사라지진 않았지만 나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둘째가 음료가 나오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 빨리 집에 가자.” “이제 음료 나왔으니까 이것만 먹고 가자.” “싫어. 나 여기 있기 싫어.” 그럴 수 없는 상황임에도 끊임없이 징징거리며 안 그래도 우중 일정을 소화하기가 벅찼던 나를 자극하고야 말았다. “지금 음료가 나왔는데 어떻게 바로 가. 먹고 가야지. 힘든 것은 알겠는데, 조금만 기다려줘.”라고 화도 내고 달래도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카페 안에 사람도 없겠다, 훈육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아주 격렬하진 않았지만 엄마인 나는 짜증으로, 둘째는 보챔으로 서로의 감정을 나누다가 결국 둘째가 피곤하고 힘들어서 더 그랬던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부지런히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아이들의 감정을 이성적으로 바라보지 못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힘들 때 대체로 부모인 나도 힘들기 때문에. 이성적이고 차분한 대화는 아니었지만 나름의 소통 끝에 둘째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나도 마음을 다스렸다. 물론 위와 같은 상황은 언제든지 벌어질 테고, 또 우리는 같은 주제,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할 것이다. 어느 날은 격렬했다가 어느 날은 이성적이었다가. 그래도 부모와 자녀가 어떤 한 가지의 상황을 놓고 끊임없이 대화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말도 하지 않고 일단 덮어놓기 시작하면 곪을 대로 곪아 결국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숙소를 향해 움직였다. 역시 돌아가는 길에도 비는 억수같이 내렸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차에서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을 때 나는 소리가 울렸다. 소리 자체도 문제지만 숙소까지 돌아가는 길 내내 반복적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죽을 맛이었다. 당장 비가 그치면 카센터를 찾아가 봐야겠다고 결심했다.(제주 한 달 살기를 마치고 15년이 된 차를 보내주기로 했건만, 가기 전까지 말썽을 일으켜 꽤나 난감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간단한 저녁거리와 주전부리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 천국이 따로 있나. 이곳이 천국이지.

비로소 안정을 되찾은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27일 차 제주에서의 시간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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