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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녀ㅣ이혜진OT Nov 13. 2019

유년시절의 기억

잊을 수가 없어요.

  유년시절의 기억이라 제목만 보면 밝은 주제일 것이라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주제는 굉장히 어두울 수 있어, 첫 글을 시작하는 마음이 무겁다.


  유년시절의 기억과 관련된 이야기.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당시 너무 격하게 공감이 되어 팩트만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으니,  아동심리와 관련된 연구의 내용이다.

성년이 된 이후에도 유년시절의 기억이 많을수록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낸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다.
연구에서 말한 유년시절은 영유아기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를 말한다.
유년시절의 기억

  나는 기가 막히도록 생생한 유년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엄마와 대화를 하다 보면, 문득 나의 유년시절이 회상되어, 그때의 감정과 기억을 엄마에게 말해준다.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며, 신기해한다.


그때가 3살쯤이었을 건데, 그것을 어찌 아직 기억을 하노? 니 참말로 신통 하디.

  나의 엄마는 참으로 단순하다. 내가 주로 기억하는 유년시절의 기억들은 좋은 기억이 분명 아니다. 평범한 가정이 될 수 없는 조건의 남자와 여자가 만나 이룬 가정이 우리 집이었다.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도 수많은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일들이 스친다. 엄마에게 들려주는 나의 기억 조각들은 그 당시 아이가 겪으면 안 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일들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는데, 그저 신기하고 신통하단다. 

  나는 그래서 이리도 단순한 엄마가  좋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나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낀다면, 아마도 내가 더 불편했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깊은 뜻이 엄마의 속내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나의 엄마는 그리 속 깊은 여인은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 유년시절의 기억 몇 가지를 말해본다면,


 부부싸움을 그렇게 한참 한 후, 엄마는 큰 가방을 싸고, 3살 된 여자아이(나)와 함께 집을 나갔다. 투숙이 가능한 식당에 취직하여 며칠을 보냈다. 식당 구조, 골목 위치 아직도 생생하다.

부부싸움을 그렇게 한참 한 후, 아빠는 홧김에 집을 나갔다. 엄마는 4살 된 딸과 함께 죽자며, 연탄불을 피웠다.  주인집 아줌마의 발견으로 그저 어른들 싸움에 끼인 불쌍한 여자아이가 되었다.

거칠었던, 외삼촌이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엄마에게 화가 났다. 가죽장갑을 끼고, 그렇게 엄마를 때린다. 5살의 여자아이는 발만 동동 구르며, 엄마를 살려달라고 외친다. 다행히도 금방 경찰이 왔다.

사흘이 멀다 하고 부부싸움이다. 친할 때도 많았지만, 늘 아빠의 술주정 때문에 싸웠다.

싸움은 월남전 전쟁보다 더 세다. 집안에 남아있는 물건이 없다. 유리파편에 발을 다쳤다.

엄마가 나를 두고 집을 나갔다. 너무 무섭다. 아빠가 무섭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가 필요하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자꾸 내가 불쌍하단다. 엄마와 짧은 통화를 했다. 엄마가 미안하다고 운다. 너무너무 슬프다.

아빠와 엄마가 싸운 다음날, 학교를 가야 한다. 가기 싫다. 엄마가 또 집을 나갈 것 같다. 하교 후 엄마를 불러보지만, 대답이 없다. 옷장을 확인하니, 다행히 엄마 옷이 그대로 있다.

엄마가 자살시도를 했다. 나에게 500원을 주면서 과자를 사고 면도칼을 사 오란다. 심부름한 후 옆집 언니 집에서 놀고 왔다. 집에 오니 문이 잠겨있다. 때마침, 아빠가 왔고 어디서 구급차가 온다.

엄마가 아빠의 술버릇을 고쳐보겠다며, 나에게 가만히 보고 있으란다. 그러면서 하얀 거품을 물고 온다. 티눈 약을 먹었단다. 구급차가 온다.


  이하 더 많지만, 생략한다. 나의 유년시절의 기억이다.


  평범한 집안에서 이쁨 많이 받으며, 부족한 것 없이 성장했을 것 같은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넌 몇 살 때부터 기억이 있어? 그 기억은 뭐니? 초등학교 저학년의 기억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나는 뭘 이렇게 세세하게 기억한데? 슬프지만, 지나가다 주워들은 그 연구 결과가 맞는구나 싶다.


  아동의 성장발달에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동발달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래서 나는 환경론을 반박하고 싶을 때가 많다. 나는 그 어린 여자 아이가 그 당시 겪지 않아도 될 많은 일이 있었지만, 잘 자라온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잘 성장했다.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의 바른 가치관과 인격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했다. 속으로 나에게 박수를 크게 쳐주고 대견하다고 말한다.

속으로 나에게 박수를 크게 쳐주고 대견하다고 말한다.

  우리 부부가 싸우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다. 


  내 아이의 유년시절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그저 좋았던 감정만 남겨주고 싶다.

  사람의 감정과 공포는 머릿속(뇌) 편도체라는 곳에서 담당하고 있다. 생생하게 기억하진 못하지만, 어떠한 특정 상황이나 사물을 보고 좋지 않은 기분이 들었던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 편도체가 하는 일이다. 나의 편도체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편도체가 기억히는.것.


  바로 부부 싸움의 기억이다.


  지난해, 윗집에서 늦은 시간 부부싸움을 한다. 쾅쾅 발소리부터, 물건을 집어던지고, 딸아이의 울음소리와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경찰에 신고를 한 후, 마무리되었지만 밤늦은 시간 부부싸움 소리가 거슬렸던 게 아니다. 그 부부싸움 소리가 나의 편도체를 자극하여, 공포를 느끼게 했다. 나의 손 발에는 땀이 났고,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 아이들의 기억에는  싸운 적이 한번 도 없는 부모의 모습을 남겨주자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싸우지 않기 위해, 무작정 참자는 것이 아니다. 나는 계속해서, 우리 부부에게 맞는 싸움과 화해의 기술을 터득할 것이다. 나아가 사랑과 우정이 싹틀 수 있는 지혜를 깨우칠 것이다.


  아이들 교육에서 사이좋은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라고 하는 말이 있지 않는가. 굳게 믿고 우리 부부는 실천할 것이다. 내 아이의 20년 후 성장 모습이 대신 말해 줄 것이라 믿는다.

우리 부부는 실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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