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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녀ㅣ이혜진OT Oct 31. 2019

누군가의 수고; 존재의 이유

너의 수고로 나는 존재한다.

  존재의 이유라고 하니, 김종환의 노래가 머릿속에 스친다. 언젠가는 너와 함께 하겠지... 이 노래는 20년도 훌쩍 넘은 1996년 9월부터 1997년 4월까지, 총 66부작으로 65.8%의 시청률을 기록한, 첫사랑(KBS 2tv)의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곡이다. 그 당시 12살의 나이였던 내가 이런 심오한 음악을 기억하고 있다니, 엄청난 드라마였다는 것은 틀림없다.

  이번 글 제목을 정하다 보니, 뜬금없는 드라마로 글이 시작되었지만, 이번 글의 주제는 내가 지금 나로서 존재하는 이유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하고자 한다.




  한 남자와 결혼을 약속했다. 약속했다기보다는 해야 한다. 우리 커플은 양가 부모님께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경제적 도움은 아니지만, 경제적인 도움보다 더 큰 도움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너희들 알아서 해라는 부모님들의 마인드셨다. 실제로 결혼식 날짜, 장소 등 모두 우리 커플이 정하는 데로 동의해주셨다.

너희을 알아서 해라.

  몇몇 지인들의 결혼 준비과정을 지켜볼 때, 많은 일들로 골머리를 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에 반해, 나의 결혼 준비과정은 아빠의 건강 부분 말고는 고민할 게 없었다.

  결혼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의 결혼은 너무 간단해서 뭐가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지 느끼지도 못했다. 혼수, 예단... 등... 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다. 나의 엄마도 외동딸의 결혼까지 생각할 상황은 아니다. 모두 생략하기로 하고, 나는 단 돈 삼백만 원으로 결혼식을  수 있었다.




  내 남편은 솔직하고 담백하며, 자상하다. 거기에다 성실하기까지 하다. 남자가 인물도 이 정도면 되었고, 성격도 이 정도면 따질게 어디 있겠나. 연애기간 동안에도 알콩달콩 지냈으니, 걱정 없다. 는 욕심도 많고, 독단적이며, 자기주장도 강한 나 밖의 모르는 여자다. 거기에다 남자 보는 눈도 똑똑하다. 그런 여자에게 걸렸으니, 내 남자는 이 생에서 내가 마지막 여자일 것이다.

이 남자.

  결혼 며칠 전 흔히들 본다는 궁합을 보았다. 궁합이 좋든 안 좋든, 우린 결혼을 할 것이다.  나는 이 남자를 만나면 날개가 생겨 가고 싶은 곳을 맘껏 다닐 수 있다고 한다. 새에 튼튼한 날개가 생기는 것이니, 이만한 궁합이 없다며, 궁합 보시는 분이 호들갑을 떠시며 말씀하셨다. 그런데, 둘 다 좋은 것은 아니란다. 나는 이 남자를 만나면 좋지만, 이 남자는 나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 많아질 것이란다. 같이 날 수는 있지만, 날개가 되어주는 격이라서 빛을 보긴 어렵고, 항상 하는 일마다 내가 태클을 걸 거란다. 다행히 남편은 안 오고, 혼자 궁합을 보러 왔다. 론은 천생연분이니, 잘 살아보란다. 감사의 인사와 복채를 주고 나온 후, 신나서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궁합에 대해 말했다.     

 궁합 따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 남자와 결혼했다.


  내가 적어놓고 보아도 우리 남편은 꽤나 멋있다. 여자의 날개가 된다고 해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모든 결혼 준비 과정에 아무런 태클도 없었던 것을 보면 그렇다. 내가 남자복은 있을 거라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결혼 7년 차, 궁합처럼 나는 튼튼한 날개를 달고 하늘 위로 비상하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더 열심히 날아가야지만, 그런대로 타인의 부러움도 살 만큼 잘하고 있다. 우리 남편은 궁합처럼 나의 날개 역할을 곧 잘해준다. 새가 새처럼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튼튼한 날개이다. 나의 날개는 남편이니, 우린 궁합대로 천생연분이다. 오글 거리지만, 사실이다.


  자녀도 둘이나 생기고 이차 저차 핑계 삼아 19평 집에서 29평 집으로 곧 이사를 가게 된다. 얼마 전 전셋집을 계약했고, 계약 당시의 일이 떠올라 회상해본다.

    부동산에서 집주인 분과 대화를 하며, 남편이 참으로 잘생기고 예술가 같다고 하신다. 스타일리시한 감각과 턱수염을 겸비한 털보 남편을 보면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임대를 주는 임차인이 무슨 직업을 하는지 궁금했을 듯, 직업을 물어본다. 남편과 나의 직업을 말하기가 무섭게 부동산 소장님부터 시작하여, 모두 다 날 칭찬한다. 부동산 소장님과 집주인분은 모두 여자이다. 자녀도 잘 키우고 공부도 함께 하며, 젊은 나이에 전문대 조교수라고 하니, 대단하다고 엄지 척을 내주셨다. 물론, 남편도 함께 칭찬하며 우리 부부는 기분 좋게 계약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의 지인들은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편의 날개이다. 남편의 날개가 다치지 않게 보호해주고 싶지만, 훨훨 더 높은 곳을 함께 날자고 채찍질도 하고 싶다.


   글을 마무리하며, 남편에게 말해봅니다. 우리 좀 더 멀리멀리 가자. 가다가 힘들면, 쉬기도 하고 늦장도 부려도 돼. 우리가 가는 목적이 같으면, 늦는 건 문제 되지 않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사는 부부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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