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5년만 봐줘.
여보. 나 5년만 봐줘. 날 바라보라는 것이 아니다.
산정특례 등록번호가 문자로 왔다. 이 문자를 받은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외면하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은 중증 등록이라고 흔히 말한다. 등록되어있는 질병으로 인해 생기는 의료비는 5%의 본인부담금만 내면 된다. 참으로 좋은 제도다.
돈 없어서, 이제 치료 못하겠단 말은, 한국에 직장인으로 살고 있는 한 할 수 없는 소리다. 난, 실손보험이라는 개인보험도 있으니, 아빠가 아팠던 그때 상황이랑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는 여유롭다. 더군다나 나 자신이 아픈데도 우아하고 여유롭다.
전, 2020년 1월 갑상선 암 진단을 받고 갑갑한 미녀가 되었습니다.
70%의 갑상선을 절제하고, 30%의 남은 갑상선으로 부족한 호르몬을 약으로 보충하지만, 제 삶에서 지금이 제일 우아하고 여유롭습니다.
그래서 갑갑한 미녀가 되었다고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약간의 공주병으로 늘 본인이 이쁘다고 생각하고 살기에 미녀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어색하지 않기도 합니다.
갑상선 암 정보 등을 적으려고 만든 매거진은 아닙니다. 갑상선 암의 정보는 갑상선 환우모임의 카페부터... 여러 블로그 등 수없이 많은 정보들이 있기에 전문가도 아닌 제가 할 이야기는 없습니다.
한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취미였던 브런치 글쓰기는 미루고 살았습니다.
새로운 주제가 제 삶에서 생겼고, 주변에서 흔히 위로라고 말씀해주는 그 착하고 착한 갑상선 암 이후의 제 삶을 다시 기록하기 위해 오늘 매거진을 만들고 첫 글을 두드립니다.
갑상선암이라고 말하면, 착한 암이다. 거북이 암이다. 암 중에서도 긍정적인 단어로 치장한 암이다. 난 아무런 증상도 없었으며, 제일 친한 친구가 작년 유방암으로 수술과 항암 등 유방암으로 바쁜 2019년도를 보냈다. 유방암과 싸우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나는 불안한 마음에 근처 병원에 검진을 갔고, 유방이 아닌 갑상선에 암을 확인했다.
우연찮게 갑상선암은 발견되었고, 2개의 결절의 세침 결과 암 의심과 비정형화 세포가 발견되었다. 암 의심에 해당하는 결절은 하필 기도 바로 옆으로 크기는 0.5mm 매우 작지만 위험한 위치이기에 빨리 수술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간이 콩알만 한 사랑하는 내 남자에게 소식을 알리고, 담담한 척 씩씩하게 말했다. 어른들에게도 씩씩하게 알렸다.
수술하면 괜찮데요.
사실, 의사가 그렇게 말해주진 않았다. 괜찮다고 말해 준 적은 한 번도 없다. 암은 수술로 제거하고 계속 관찰해보자고 했지, 나에게 괜찮을 거라는 말은 없었다. 난 수술하면 괜찮은지 의사에게 묻지도 않았다. 그 이후에 어떠한 치료 방법이 기다리고 있는지, 이미 여러 정보들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 뒤이기에 재차 물어보지 않았다. 수술 후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기에 설레발치고 싶지도 않았다.
당연히 괜찮을 거니깐, 괜찮아야 하니깐. 괜찮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진 않았다.
내가 참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이번 갑갑한 미녀가 되면서 확실해졌다. 적어도 이 정도로는 슬퍼할 수 없다는 것을...
2월 20일 수술을 하고... 지금은 확정진단까지 받았다. 최종 작은 결절은 4개였고, 한 개는 양성 세 개는 악성이었다.
그 무섭던 미세 전이, 전이도 없다. 다행이다. 전이가 없다는 것은 저요오드식이도 안 해도 되고, 방사 치료도 안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닌가.
감사합니다.
나는 수술대 누워 잠이 들기 까지, 아빠에게 수없이 말했다. 아빠가 있는 그 세상에서는 딸을 위해 뭔가는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아빠를 그리도 찾았다.
림프절과 갑상선 일부를 제거하고, 지금은 목주름 선으로 흉터가 자리 잡고 있다. 수술 후 통증은 제왕절개 통증의 10분의 1로 아프긴 하지만, 참을 수 있었다.
이제 나에게는 앞으로 주어진 삶이 중요하다.
얼마 전, 갑상선암 카페에 오픈 채팅방에 만난 환우분이 한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잘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