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책상을 정리하다가 속이 한결 시원해졌다. 쌓아둔 먼지를 털어내고,
쓸모 없는 것들을 버리니 공간이 확 비워졌다.
동료들은 내가 이직이라도 하나 싶었을 만큼 책상이 깔끔해졌다.
“이제 다시 채워야지.”
원래 자리에 물건들을 되돌려 놓으며 하나둘 채워나갔다.
그러다 비어 있는 생리대 파우치에 새 물건을 채우려는 순간,
낯선 종이쪼가리 하나가 손에 잡혔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버리려다가
곱게 접혀 있는 모습이 신경 쓰여 펼쳐봤다.
5 년 전, 내가 쓴 일기였다.
노트도 아니고, 종이에 짧게 적어둔 기록이었다.
가끔 그 집이 그리울 때가 있다.
마치 한밤중에 전 애인이 생각나는 것처럼,
불현듯 스치는 그런 그리움?
한없이 올라가야 했던 언덕 끝에 있던 집이라
언제 이사가냐며 징징거리기도 했지만 막상 떠나게 되니 아쉽다.
우리 가족이 애지중지했던 집,
학창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집.
엄마아빠와 함께했던 추억이 있었고,
무엇보다 우리 고양이들이 가장 사랑하던 곳이었다.
부모님의 이혼 소송이 판결났기 때문에 떠날수밖에 없다.
허탈하다.
둘에겐 서류 정리에 불과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추억과 가족이 동시에 정리되는 일이었다.
햇살 가득히 내려앉아 짜증내며 일어났던 순간도 이제는 돌아오지 않는다.
놀라웠다.
내가 이렇게 디테일하게 감정을 표현할 줄 알던 사람이었나?
지금의 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글로 꺼내는 일이 쉽지 않은데,
예전의 나는 이렇게라도 다 털어냈구나 싶었다.
“그때 나는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곧 깨달았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는 걸.
그때 집을 잃으며 느낀 허망함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땐 그랬지~’ 하고 추억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그때의 감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짧은 일기였지만, 거기엔 무력감이 가득했다. 내가 조금 더 어른스러웠다면,
부모 사이에서 잘 조율했다면 집도, 가족도 지켜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이 녹아 있었다.
그 허무함은 5 년이 지난 지금의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아침부터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렇게라도 기록해두었기에 과거의 나를 지금의 내가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도 대신 공감해줄 수 없는 감정을, 기록 덕분에 붙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글을 쓴다. 기쁘든, 슬프든, 모든 감정을 미래의 나에게 전해주기 위해.
언젠가 또 다른 내가 이 기록들을 읽고, 지금의 나를 위로해줄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