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티 안 나게 아픈 사람이고 싶다

by 정헴





나는 아프지 않은 사람이고 싶다.





비록 내가 조울증을 소재로 글을 쓰고 있지만,

이 병이 아니었다면 글조차 쓰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아프지 않은 사람이고 싶다.




참 아이러니하다. 아픈 걸 소재로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정작 아프지 않은 사람 취급을 받고 싶다니.

이건 나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나만의 모순된 지점이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길 바래서 쓰는 글은 아니지만,

막상 누군가 반응해주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다. 나만 그런걸까?








나는 흔히 말하는 K-장녀답게 힘든 티를 잘 내지 않는다. 장녀라서가 아니라 성격상 ‘가오’를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남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 누군가 나를 약하게 볼까 봐 괜히 센 척도 한다. 그래서 많이 웃고,

많이 이해하려 하고, 늘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엄마 아빠나 남편 앞에서도 눈물은 절대 보이고 싶지 않았다. 눈물은 약하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런 어느 날, 너무 우울해 수건 한 장을 깔고 20분 동안 목 놓아 운 적이 있었다. 수건이 홀딱 젖을 만큼 울었다. 혼자 있을 때도 습관처럼 소리를 죽여 울다가 문득 ‘왜 나는 늘 소리를 죽여 울까’ 싶어 더 서러워졌다.

처음으로 소리를 내서 울어봤다. 그때 마침 퇴근한 남편이 들어왔다. 나는 황급히 눈물을 닦고 헝크러진 머리를 질끈 다시 묶은 다음 활짝 웃으며 맞이했는데, 남편 입장에서는 눈은 퉁퉁 부어있고 얼굴은 새빨간데 해맑게 웃고있는 내가 오히려 더 당황스러웠을 거다.




이 정도로 나는 남들 앞에서 약해 보이지 않으려 괜찮은 척을 오버한다.




내 병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음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병명이 붙으니 나름의 이유가 생겼다. 회사에서 병명을 밝혀야 할 일이 있었다. 입원 확인서를 제출했을 때 상대방이 멈칫하던 그 정적을 잊을 수 없다. “이 사람, 속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지?”라는 기류가 느껴져 불편했다.

나는 그냥 평소처럼 똑같이 지내고 싶은데, 오히려 나를 약자로 대하는 태도, “내가 다 이해해줄게”라는 말들이 나를 위축시켰다. 제일 싫은 말은 “젊은 것이 안타깝게 됐다”였다. 늙으면 다 괜찮은 건가?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넘겨버리곤 한다. 괜히 내가 자격지심에 과민반응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나는 남들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의 동정 섞인 도움은 받고 싶지도 않고, 받을 이유도 없다. 하지만 내 기분이 파도처럼 철썩거리며 변할 때, 누군가 나를 이해해주고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스치기도 한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도움을 받는 순간, 내가 그 사람에게 끝없이 기대고 의지할까 봐 두렵다. 완전히 의지하다가 그 사람이 떠나버리면, 나는 삶의 의지를 몽땅 잃어버릴 것만 같다. 그래서 남편이든 가족이든, 누구에게든

나는 ‘아프지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나는 스스로를 동물원 철창 속 코끼리라고 생각한다. 철창 안에서 혼자 있지만 익명의 누군가들에게 둘러싸여 관심과 위로를 받는 모습. 가려진 채라도 속마음을 털어내고 싶어 하는 이 심리, 누가 좀 해석해 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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