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13알 먹어," 약 개수로 싸운 유치한 현실

조울증 일기

by 정헴

10일간의 입원 생활이 끝났다.

사실 더 있어도 됐지만, 회사의 눈치 속에서 하루라도 더 빨리 퇴원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퇴원이 결정 나고 나서 같은 병실을 쓰던 맞은편 할머니가 물었다. "어디가 아파서 들어왔던 거냐"고.

조울증이라고 대답해 드리니, 나보고 "안 아픈 사람 같다"고 하셨다.

아픈 사람 같은 건 어떤 모습이길래? 하고 잠시 생각했다.




병원 퇴원 처리를 하면서 먹어야 하는 약들과 퇴원 후 안내 사항을 전달받았다.

병원복에서 내 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정말 집에 간다고 실감이 났다.

퇴원 전에 수납을 해야 해서 직접 내려가서 계산했다. 10일에 90만 원 정도.

지난번 입원했을 때는 2인실을 써서 160만 원 정도 나왔는데,

'역시 4인실을 쓰니 지난번보단 싸게 먹혔네' 하고 생각했다.

병원복을 벗고 내 옷을 입고 털레털레 병동으로 돌아오니,

남편을 대신해 친구가 와주었다. "와줘서 고마워."

집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속 시원하던지.

드디어 집에 가서 익숙한 내 침대와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퇴원을 했다는 기쁨 가운데 찝찝한 한 구석이 있었다.

아직도 어떻게 처리됐는지 연락을 주지 않은 회사에게 내가 먼저 전화를 해야 했다.

상사에게 전화 통화가 가능하냐 물었지만 저녁때까지 답장은 오지 않았다.

'도대체 뭘 하는 거야?'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출근까지 3일이 남았지만 그냥 내일이라도 당장 나가야겠다 싶었다.





그때 회사 인사과에서 전화가 왔다. 퇴원을 했냐 묻길래 오늘 했다고 대답했더니,

"왜 본인에게 전화하지 않았냐"며 대뜸 따지기 시작했다.

상사에게 연락했는데 안 받길래 내일 출근하려 했다 했더니,

급 업무 이야기를 하면서 일이 진행이 안된다며 나에게 뭐라 쏘아붙였다.

순간 욱하는 마음에 몇 마디 같이 따져 물었지만,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대충 마무리 짓고 끊었다.





10일이나 입원한 내 자신을 모두가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생각이 들어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입원하고 싶어 입원했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현

실적인 문제에서는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사실이 나를 좀 더 미치고 괴롭게 만들었다.

어제 전화 왔던 인사팀 사람은 본인도 약을 먹는다며 자기는 업무가 바빠 입원하지 못한다고,

나를 의지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무슨 약을 드시냐" 했더니 ADHD 약을 무려 2알이나 먹는다며

나에게 " 이런 나도 안 쉬는데 너가 뭔데?"라는 식으로 말하더라. 나도 욱해서 "난 13알 먹는다"며

약 개수 자랑을 했다. 약 먹는 개수로 누가 누가 더 힘든가 내기하는 어린아이들처럼 유치하게

기 싸움 하는 내 자신이 조금 미워지려고 했다. 그래도 곱씹을수록 너무 분해,

나중에 본인이 아플때 두고보라지 그때 똑같이 돌려주겠다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입원 기간 동안에는 외부 자극이 없는 병동 안에서의 일상, 아무렇지 않은 일상 속에서 살다가,

퇴원 후 내가 지내던 현실 일상으로 돌아오니 병동 생활과의 갭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입원 후 모두가 나를 미워하고 질타한다는 생각에 불안해서 하루에 안정제를 4알씩 먹곤 했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았지만, 이따금씩 불안하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견딜 수가 없었다. 입원하고 나면 모든 게 다 행복해지고 내가 건강해질 거라 믿었는데 내 에상이 빗나간걸까 죄절감감이 나를 못살게했다.





퇴원한 지 2주가 넘어가는 지금, 그때만큼 불안하지는 않다.

먹고 있는 약이 너무 졸려 18시간씩 자도, 침이 많아져 침 범벅이 되어도

어쩌면 이제 더 이상 불안하지 않고 평온한 일상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게 기대가 된다.

교수님 말처럼 내가 버텨온 시간들 속에 안정적이라는 구름을 지나왔을까.

차차 나아질 거라는 교수님의 말을 이해하는 때가 올까. 모두의 바람처럼 점차 나아지는 내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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