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민이 알려주는 내 기분

조울증일기

by 정헴






퇴원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누군가 내게 좀 나아졌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금 평범하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고 느끼는 중이다.




퇴원 직후 며칠 동안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몹시 힘들었다.

회사 사람들이 모두 나를 욕하는 것만 같고,

내가 꾀병이라고 생각하는 것만 같아 아프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썼다.

불안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덜덜 떨기도 했다.

필요할 때 먹으라고 처방해준 안정제를 하나 둘 복용하며 괜찮아질 거라고

수십 번 되새겨 보아도 나아지지 않는 나를 보며 괜히 입원했다고 생각했다.

회사 눈치를 볼 대로 보고도 나아지지 않는 내 모습이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졌다.




외래 진료 때, 언제 괜찮아질 수 있냐는 나의 물음에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지나고 보면 그때가 평온했었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너무 무책임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교수님은 해당되지않는 일이니까.

결국 상태가 나아지는 것에 대해 포기하고 매일 1~2알씩 안정제를 챙겨 먹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나는 요즘 피크민(Pikmin Bloom) 게임을 즐겨 한다.

매일 걸음수를 체크하는 겸 피크민들을 키워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루의 끝에는 걸음수와 함께 그날의 기분을 선택할 수 있는데,

문득 일요일에 지난 한 주 동안의 기분을 확인해보니 모든 날이 '좋음'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오, 나 이번 주 내내 기분이 좋았네?'



나는 매주 한 번씩 PT를 받는다.

예전에는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어디 아프냐'는

말을 가장 많이 들을 정도로 기운이 없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PT 시간에 운동 의욕이 생겨나고,

운동을 하고 난 뒤 뿌듯함과 행복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신이 나서 말했다.

"나 요즘 기분이 너무 좋아. 운동도 열심히하고싶고 ~"

재잘재잘 혼자 말하고 있으니 남편은 살짝 눈물이 고인 감격이 섞인 흐뭇한 얼굴로

"자기가 좋아한다니 다행이네"라고 답했다.




나의 불안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남편이다.

퇴원하고 나서도 도통 나아지지 않는 나를 보며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들어했을 것이다.

나는 나의 힘듦을 남편에게 털어놓지만, 남편의 고충은 어디에도 털어놓을 곳이 없어

속이 타들어 갔을 것이다. 그런 남편에게 활기찬 의욕으로 가득 찬 나를 보여줄 수 있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이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니,

내 어두운 면이 아닌 괜찮아진 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니.

이제서야 입원하길 잘했다며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한편으로는 이 좋은 기분이 내가 또 조증으로 접어든 것은 아닐까,

내 질병의 일부분은 아닐까 조심스럽다.

조증과 지금의 기분이 어떻게 다른지 아직 명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이전과는 어딘가 다른 안정된 기분이라고 느낀다.




앞으로도 이번 주 같은 일상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매주 행복한 나날들일 수는 없겠지만,

기복이 없는 안정된 기분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남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안정적인 내가 되고 싶다.

어쩌면 교수님이 말씀하신 '지나고 보면 평온함'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싶다.

매일 피크민에 남기는 나의 기분이 '좋음'이 아니더라도,

'무난'으로 체크할 수 있는 나의 기분에 감사하며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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