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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치욱 Sep 14. 2021

<학교 가는 길> 그리고 <너에게 가는 길>

지난하지만 가야만 하는 길

우리 회사가 인더스트리(쉽게 말해 업계 관계자) 자격으로 참여한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너에게 가는 길>을 개봉 전에 미리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성소수자부모모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고 해서 영화제에서 꼭 보고 싶은 작품 중 하나였다. 이 단체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냐면... 닷페이스에서 지난해부터 개최한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에 올해 성소수자부모모임이 참가하면서 내건 플래카드가 압권이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부모모임의 2021년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 참여 게시물(출처=닷페이스)


성소수자부모모임의 운영위원 중 닉네임 '메이'라는 분이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딸에게 웹 디자인을 의뢰했는데 위와 같은 재치 있는 게시물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다양성에 반대하고 혐오 표현을 늘어놓는 무례한 사람들에게 이토록 쿨하고 유쾌한 카운터를 날릴 줄 아는 이분들은 대체 누구일까. 영화를 통해 만난 성소수자 부모들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멋지고 단단한 분들이었다.


아직 개봉 전인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은 올해 5월에 개봉한 <학교 가는 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제목에서의 유사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소수자의 부모(특히 엄마)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두 다큐멘터리 영화의 이야기 전개 방식도 유사하다. 개별 부모와 자녀 간의 어릴 적 추억을 보여주며 관객과 등장인물 사이의 친밀도를 높인 뒤 이들이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혐오와 차별의 장벽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지지를 유도한다. 그리고 사건의 해결과 경과를 보여줌으로써 모두의 마음 속에 작은 희망을 품게 하는 것까지.


두 영화의 유사점을 이야기하면서 한 쪽이 다른 쪽을 따라했다든가 뻔한 작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두 영화 모두 별로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두 영화가 안정적인 작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비슷해보이게 된 것일 뿐이고 이러한 작법이 관객들의 이해를 돕고 몰입을 높였다고 나름의 '변호'를 하기 위함이다.




<학교 가는 길>과 <너에게 가는 길>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사회적 소수자의 부모가 자녀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자녀가 사회 속에서 받는 차별을 부수기 위해 투사가 되는 과정이 담겼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의 남들과는 다른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는 아마도 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험난하리라 생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자녀가 행복하고 무탈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부모의 염원일 터. 그러나 자녀가 사회적 소수자임을 아는 순간 부모들은 다양성을 포용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회 속에서 살아갈 자녀들의 앞으로의 삶이 머릿 속으로 쫙 펼쳐진다. 그래서 그들은 결심한다. 자녀와 함께 이 사회를 바꾸기로!


<학교 가는 길> 스틸 컷(출처=네이버 영화 DB)


<학교 가는 길>에서는 그 유명한 '엄마의 무릎'이 나온다. 초기 계획도시의 미숙한 개발과 방치로 인해 낙후된 지역 사정에 주민들은 박탈감으로 괴로워했다. 여기에 한 국회의원이 허준의 옛 터전이었다는 이유로 한방병원 설립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불을 당긴다. 그런데 하필이면 예전부터 건립 예정이었던 특수학교인 서진학교가 들어설 자리에 특수학교 설립을 막아서고 한방병원을 짓겠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교육 시설을 지어야 하는 부지로 지정되어 국회의원이 용도 변경을 할 권한도 없음에도 주민들에게 헛된 희망(특수학교를 없애고 한방병원을 짓는 일이 희망이라고 불리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이 자라났다. 포퓰리즘의 힘은 무서워서 내 터전에 특수학교 들어서는 것 막고 한방병원 들이겠다는 세력이 이익집단이 되어 서진학교의 설립은 큰 암초를 만났다. 그렇게 주민 공청회에서 장애학생의 어머니들은 제발 반대를 거둬달라며 무릎을 꿇고 호소했지만 '쇼'라는 비아냥만 화살처럼 가슴에 꽂혔다.


<너에게 가는 길> 스틸 컷(출처=네이버 영화 DB)


<너에게 가는 길>에서 성소수자의 엄마들은 자녀와 함께 용감한 발돋움을 시작한다. 기를 쓰고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반대하는 이들에 맞서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한다. 특히 퀴어 퍼레이드에 온 다른 성소수자들에게 프리허그를 해주며 따뜻한 포옹과 위로를 전하는 모습은 성소수자인 자녀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온 마음으로 지지한 그들이기에 만들 수 있는 모습이다. 또한 FTM(Female to Male)트랜스젠더인 '한결'의 엄마 '나비'는 아들과 함께 법원에 성별정정 신청을 하러 가면서 원하는 변화가 쉽게 찾아오지 않을 것을 알지만 함께 부딪히기로 선택한다. 법원의 대기실에서 엄마 '나비'가 '한결'에게 판사가 성별정정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가리를 찢겠다"고 말한다. 실제로 판사가 그런 판결을 내릴지라도 어떠한 공격성을 표출하지 않을 것이 자명하지만 아들을 위해 힘껏 분노하리라는 의지가 담긴 그의 언어를 나는 너무도 사랑한다.




앞서 이야기했듯 두 영화는 투사가 된 용감한 엄마들이 다함께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것으로 끝이 난다. 결국 서진학교가 설립되고 '한결'의 성별정정이 인정된다. 충분치는 않지만 일보 전진하는 모습은 우리가 손을 잡고 더 앞으로 나아갈 힘을 마련한다.


서진학교 실내 사진(출처=서울서진학교 홈페이지)


<학교 가는 길> 영화와 관련해서는 8월에 송사가 있었다. 영화에서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공청회 속 인물로 등장하는 사람이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다. 모자이크 처리되어 영화에 등장했음은 물론이고 영화가 균형감있는 시각으로 한쪽을 절대악으로 다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개봉이 3개월이나 지난 영화에 몽니를 부린 것이다. 결국 영화와 학부모에 대한 여론의 지지에 힘입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은 취하되었지만 등장하는 장면의 삭제를 요청한 건에 대해서는 아직도 소송이 진행 중이다(2021/9/16 현재 영상삭제가처분신청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그래도 기쁜 소식도 들려왔다. 서진학교가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서진학교의 사연에 공감한 건축가의 노력으로 장애학생들의 신체적 특성과 이동환경을 고려한 건축물이 지어져 비단 특수학교에 한정되지 않고 교육시설 전체의 모범이 된 사례다.


20210912 <너에게 가는 길>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무대인사


이제 <너에게 가는 길>과 관련된 기쁜 소식이 들려올 차례다. 2007년 최초로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슬프게도 15년 표류의 역사의 전철을 밟을 위기에 놓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차별금지법의 심사는 거대양당의 무관심 속에 외면받고 있다. 다수 기득권의 문법에 의해 짜맞춰진 사회에서 소수자가 정당히 누려야 할 삶을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이 사회의 틀에 끼워맞추기를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며 사회가 더 많은 개인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함을 알고 있다. 영화 상영이 끝난 뒤 무대인사에서 '한결'의 엄마 '나비'는 영화제 일정을 소화하면서 많은 관객들의 '환대'가 감사하다고 전했다. 나는 여기서 자연스레 [사람, 장소, 환대](김현경 저)를 떠올린다. 해당 책의 구절을 아래에 인용하면서 성소수자부모모임을 비롯한 사회의 소수자들과 함께 차별금지법 제정을 열렬하게 촉구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절대적 환대가 타자의 영토에 유폐되어 자신의 존재를 부인당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일, 그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일,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자리를 주는 일, 즉 무차별하고 무조건적으로 사회 안에 빼앗길 수 없는 자리/장소를 마련해주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러한 환대가 필요하며 또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환대는 실로 우정이나 사랑 같은 단어가 의미를 갖기 위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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