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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Nov 14. 2020

3. 다시, 발을 뻗으며

비밀의 숲2, 공무원 헌장, 이야기 하나(김광석)

3-1. 발걸음의 무게는 동일하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티비나 웹툰, 책에서 기억해 놓았던 대사나 책의 내용을

노트 위에 옮겨 적습니다.

그리고 다시 읽으면서

그것에 대한 생각을 일기처럼 적어 놓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진리를 좇아 매진하는 것
도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
이는 모두 끝이 없는 과정이다.
멈추는 순간 실패가 된다.
변화를 향해 나아간다는 건
나의 발이 바늘이 되어
보이지 않는 실을 달고 쉼 없이 걷는 것과 같다.
한 줌의 희망이
수백의 절망보다 낫다는 믿음 아래
멈추지 않는 마음으로
다시

비밀의 숲 2, 창준의 독백


드라마 속의 인물들이 하는 일을 보면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이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저러한 대사 역시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지만

규모에서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개인의 선택이라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저 역시 드라마 속 인물들이 처하는 상황과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지 않았었나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나라는 사람이 가진 규모에서의 변화가 의미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모든 개인이 변화를 향해 나아감에

그 발걸음의 무게는 동일하다·동일해야만 한다라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이 결론을 부정하기 위해선

개인 수준에서 일정한 수준 이상의 규모가 얼마만큼인지 알 수 있어야 하며

그 규모의 차이가 개인이 느끼는 내적인 갈등의 크기를 결정·비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규모와 크기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저로서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며

그날의 내가 하찮다는 느낌을 이겨봅니다.


3-2. 신규 교육을 받았습니다.


발령이 난 지 2주가 되고 나서, 신규 교육에 다녀왔습니다.

신규 교육은 보통 3-4주 정도의 기간 동안 공직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배워갈 수 있는 스타터팩

+ 비슷한 시기에 임용된 동기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하여 축소에 축소를 거듭하여

총 2주 간의 신입 교육 기간 동안

3일은 인재교육원에서의 집체교육과 7일간의 사이버 교육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이버 교육의 목적은 재택에서 수업을 듣게 하여 최대한 비대면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집은 너무 춥기 때문에

매일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씻고 준비를 해서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강의를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08:30-17:00) 머물러야 하는 것에 눈치가 보이기도 합니다.

선임분들은 단 한번뿐인 시간이라며 즐기라고 하시지만

집중하기 힘들어  차라리 출근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하나 좋은 것은 퇴근이 한 시간 더 빠른 것일까요.


3-3. 헌장 속에서, 일어나


입교식 중에 짧게 스쳐 지나간 공무원 헌장이었습니다만

앞으로의 30-40년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쓰일 이 곳에서

조직이 정한 울타리와, 그 울타리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를 변화시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또 앞서 말한 변화의 의미와 방향 이전에

변화 자체가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퇴근 후, 밀려오는 육체적-정신적 피로함에

침대 위에서 유튜브 만을 보며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굳이 무엇인가를 해야 할까, 그냥 이렇게 쉬어도 되지 않을까 변명을 대봅니다.

하지만 어떤 찝찝함이 남아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HMTS4jcLu4

...


답답해
뭐가
재미없어
아 글쎄 뭐가
답답해
너만 할 때 다 그래
근데 그 키가 180이에요
형이 언제 나만해 봤어
그래 나 64다 숏다리에 휜다리다 왜
뭐 그런 답답함이나 재미없음이나
그런 것들이 그즈음에 그 나이 즈음에
저뿐만이 아니라 또 그 후배뿐만이 아니라 다들 친구들도
그렇고 비슷한 느낌들을 가지고 있더군요

...
이야기 하나, 김광석


답답함, 사람의 신체적 감각기관은 정말 쉽게 답답함을 느낍니다.

역치 값을 넘는 자극이 지속되면

아무리 많은 신호전달물질이 수용체에 도달한다고 하더라도

뇌는 더 이상 그 자극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이 답답함이라는 감각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스스로가 정한 자신의 테두리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 자아는 딱 그 경계선만큼만 세상을 수용하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 아닐까.

이 지점에서, 변화가 과연 필요한 것이냐라는 질문에

저는 변화를 선택하겠다고 답하겠습니다.

겁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지나가 버린 날들의 찝찝함에 치이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아직 헌장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하루를 쌓아갈지에 대해서는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

그 규칙들을 소극적이기보단 적극적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 수준에서 위와 같은 규칙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는 무엇이 있을까.

앞으로의 몇 년은 이런 것들을 찾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 부서지지 않은

이 믿음을 근거로

멈추지 않는 마음으로

다시

발을 뻗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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