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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Nov 07. 2020

2. 엄마 차를 빼앗은, 첫차입니다.

361을 타고 집에 간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2-1. 요정에게


https://www.youtube.com/watch?v=FatgM2iIWuI

언제쯤 되야 내 차를 가질 수 있을까
오래전에 면허는 따놨는데
어쩜 까먹었을지 몰라
오락실에 들러서 점검해봐야지

예전처럼 똑같이 두근두근 내 마음은 설레지만
정말 예전과는 달라
몇천 배는 좋아졌다
몇만 배는 복잡하다
'제비우스, 갤러그, 엑스리온'
...
이제는 집에 다 왔다, 나는 내릴꺼다
바퀴벌레만 나를 반기는 곳
그 곳으로 나는 향한다 그 녀석들과 함께 티비를 볼꺼다
여기저기 빨래가 나뒹구는 방에서 한판 자주고
내일 아침 다시 보자
구질구질한 세상아, 버스에서 다시 보자
그 때에는 어딘지 좀 알려다오

361을 타고 집에 간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요정, 거기에 잘 계시죠.

저도 첫 차가 생겼어요.

엄마 차를 빼앗은 첫 차이지만 말이에요.

차를 운전하게 될 줄은 저도 몰랐어요.

공원에 민원이 오면 그때그때 나가서 확인하려면 차가 필수이기에

어쩔 수 없이 차를 뺏는 수밖에는 없었어요.

엄마와 누나는 이제 조금 불편해지겠지만,

어쩔 수 있겠어요.

아직 새 차를 살 순 없으니.

그래야 또 새 차를 살 수 있으니.


한동안은 꿈에서 자꾸 사고가 나서 겁이 났어요.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더니

5일이 지난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답니다.

아마 곧,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 듯싶어요.(평행주차가 너무 어려워요.)

아! 겨울이 와서 바퀴벌레는 요즘 없어요.

물론 요정이 있는 그곳에도 더 이상은 없겠죠.

요정, 거기에 잘 계시죠.




2-2. 지금까지 이런 초보는 없었다.


아직 혼자 출장을 나가서 업무를 보진 않지만

과의 선배분들 모두 최소 하루에 한 번은 진행 중인 사업이나 민원 처리를 위해 밖으로 나가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지금이 기회란 생각으로 엄마의 차를 빼앗아 열심히 출퇴근 중입니다.

다만, 아직 평행주차가 어려워서 조금 일찍 출근하고 조금 늦게 퇴근하는 방법으로 전면주차를 하고 있습니다.


"극한초보, 지금까지 이런 초보는 없었다! 이것은 엑셀인가 브레이크인가"라는 초보 스티커를 붙이고

부디, 그 글을 보고 피식하시며 저를 귀엽게 봐주시길 바라는 수밖에는.


차를 운전하는 것도, 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벼슬이 아니기에

아직은 모두 서툴러서 주변 사람들에겐 죄송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조금 다른 초보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 중입니다.

선배분들에게 배운 팁과, 업무처리 방법을 제 나름대로 정리 중입니다.

아직 투박한 형태이지만, 제 후임이 오면 제가 받은 것들을 잘 전해줄 계획입니다.


이 자리에 올 또 다른 초보에게.




2-3.  606번을 타고 집에 가진 않겠지만.


집에 돌아오면 진이 빠집니다.

새로운 것들에 대한 긴장이 침대 위에서 한번에 풀리고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몸이 녹으면

잠에 든 기억도 없이

어느새 아침이 옵니다.


목욕을 하고 짐을 챙겨

다시 엄마에게 뺏은 저의 첫 차를 탑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많은 안팎의 거울들에

창문을 내려, 시야를 넓히고

초겨울 이른 아침의 찬 바람을 맞이합니다.

얼굴도 손도 시리지만

처음이 주는 차가움을 기꺼이 맞이합니다.

얕고 거친 굳은살이 살포시 제 위에 내려앉을 때쯤이면

그 초보도 창문을 올리겠죠.


더 이상 606번 버스를 타고 집에 가진 않겠지만

그래도 그 노래들은 듣고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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