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부처님[A.E.1 첫 번째 델리.](2)

인도 불교 유적 순례기 : 델리 편

by 노루

15. 첫 아침


유심 개통을 위해서라도 오늘 하루는 델리에서 보내야 했다. 무엇을 볼 생각도 없었지만, 눈은 여섯시가 되니 떠졌다.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짐을 싸서 숙소를 나왔다. 1,200루피 짜리 숙소에 머문 시간이 9시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길을 나와서 빠하르간지 근처를 무작정 걸었다. 아침부터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개들도 분주히 움직였다. 소들도 분주히 움직였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배가 고파졌다. 빠간 초입 오른쪽 골목에 있는 식당 골목에 들어갔다. 무엇을 시켜야 하는지 몰라서, 버터커리를 하프로 시켰더니, 혼자 먹기에 많은 양의 커리가 항아리에 담겨 나왔다. 짜파티는 따로 주문을 해야하는 것이었다. 막상 시켜놓고 보니 양이 무척 많았지만 맛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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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몰랐지만 숙소는 골목 깊숙이에 있었다. 해는 이미 떠서 밖은 밝았지만 골목길은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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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빠하르간지와 아침의 빠하르간지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16. 난 50, 넌 100


식장 사장님에게 코넛플레이스를 가는데 얼마냐고 물으니, 자기는 50이면 가지만 나는 100은 내야 가능할꺼라고 답을 해줬다.


말마따나, 더 낼 수 있는 사람에게 더 내라고 요구하는 것을 그렇게 나쁘게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단 너무 악의적인 경우는 제외하고...


협상은 항상 저 50과 100 사이의 갈등이었다. 50애 가까이 타면 기분이 좋았고, 100을 낼 때는 어쩔 수 없으니 그냥 타야했다. 저 사이에서의 기분이 내 여행에 영향을 많이 주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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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P0599.JPG 사장님은 내 앞에 앉으셔서커리를 먹는 나를 저렇게 바라보셨다.




17. 어쩌다 마주친


밥을 먹고, 와우까페 짐을 맡기러 가는 길이었다. 그 근처에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릭샤와 협상을 하고 있었다. 망설임 없이 종민씨에게 오늘 같이 다니자고 물으니 웃으며 수락을 해주셨다.


릭샤를 쉐어해서 인디아게이트와 대통령궁, 후마윤의 무덤에 다녀왔다. 입장료가 상당히 비쌌다. 600! 이 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외국인 입장료가 상당하다는 것을.


인디아 게이트에서 대통령 궁까지는 걸어서 가면서 나무 아래에서 자고 있는 개들과 사람들과, 강에서 발가벗고 노는 아이들, 빨래를 하는 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늘 밖의 인도는 더웠지만, 푸르른 나무 그늘 안에서는 무척 시원했다. 길을 걸으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종민씨는 무지 밝은 사람이었다. 인도여행을 한 후엔, 남미여행을 계획 중이라고 했다. 신기한 사람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기를 치려거나, 돈을 구걸하기 위해서 말을 걸어 왔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한국말로 “괜찮아요, 필요 없어요”라고 답을 해줬다.





18. 투엔티 루피 쓰리 펜


후마윤의 무덤을 향하는 릭샤가 빨간불에 걸려 정차했다. 그러자 한 여자 아기가 차에 다가와 빨강, 검정, 파랑색의 세 가지 색을 내밀며 20루피라고 말을 했다.


멈칫했다. 20루피에 팬 3개면 싸기도 해서, 팬을 샀다. 그 팬 3개를 여행 내내 잘 썼으니 감사했다. 이외에도 많은 어린이들이 구걸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고 계속 만날 수 있었다. 괜히 미안했다.




19. 베이비 바나나 텐루피


인도여행 단체 톡방에 인도 맥도날드 음식 사진이 올라왔는데, 정말 맛있게 보였다. 그래서 종민씨와 상의하여 점심은 코넛플레이스의 맥도날드에 갔다. 소고기, 돼지고기를 팔지 않기에, 닭, 양, 계란, 채소가 메뉴의 주를 이뤘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배를 채우고 문 밖으로 나가자마자, 옆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한 아주머니께서 아기를 왼손으로 안으신 체, “베이비, 바나나, 텐루피”를 주문처럼 외우며 우리가 있는 쪽으로 오셨다. 3음절로 반복되는 3단어의 음률이 구슬펐다.


들어갈 때는 나에게 붙으셔서 10루피는 들렸지만, 이번에는 종민씨에게 붙으셨다. 주지 않으려는 우리와, 받으려는 아주머니 사이에서 2분 정도 추격전이 벌어졌다. 10루피가 나에게는 작은 돈, 그들에게는 조금 큰 돈, 조금 더 있는 사람이 조금 더 낼 수 있었겠지만, 이미 나는 구십구석꾼이 되어 이미 내어준 10루피에도 울상이었다.


IMGP0603.JPG 가장 처음 방문한 인디아게이트에서 아저씨(?) 세 분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셨다.이메일이라도 주실 줄 알았는데, 아무 말 없이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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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P0612.JPG 인디아 게이트에서 대통령 궁까지 걸어가면서종민씨와 이야기를 나눴다눈에 걸린 나무의 색이 묘하게 기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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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후마윤의 무덤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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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대통령의 궁이다.

20. 헤어짐


다시, 빠하르간지로 돌아와서 아침에 먹었던 밥집에서 종민시와 밥을 먹었다. 내가 손으로 밥을 비벼서 먹는 것을 보고, 종민씨는 나에게 인도음식 먹방을 찍어보는게 어떻겠냐고 농담을 했다.


저녁을 먹은 뒤, 새로운 동행이 늘었다. 종민씨는 빠간에서 그 동행과 함께 바라나시로 향한다고 했다. 나도 저녁 종민씨보다는 한 시간 늦은 기차를 델리역에서 타고 아우랑가바드로 가기에 기차역 까지는 같이 이동을 하기로 했다.


빠간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옷가게를 들렸다. 알리바바바지라고 불르는 통이 아주 큰 바지와, 셔츠 하나를 산 후 기차역을 향했다. 그곳에서 종민씨와 헤어졌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많았지만, 다시 이곳에서 내편을 구분할 수 없었다. 플랫폼을 찾는 것, 기차 칸을 찾는 것, 내 자리를 찾는 것, 이제 다 혼자만 해야했다.


종민씨가 있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긴했다. 종민씨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나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둘이 있어서 오히려 기차를 놓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혼자보단 둘이 기차를 찾지 못하는 것이, 같이 남을 사람이 있다는 그 마지막 보루가 나를 안심시켰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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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민씨 일행을 떠나 보내고 나도 인도사람들처럼 바닥에 앉아 기차를 기다렸다. 아기의 머리카락이 초승달처럼 모여있었다.




21. 부사왈행 기차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기차의 칸과 좌석에 정확히 가야했다. 하지만 처음 타보는 것이어서 기차의 번호(Coach Number)도 좌석번호(Seat Number)도 너무 헷갈렸다.


사실 써져있는데로 천천히 찾아 들어갔으면 됐지만, 내 성급함과 기차를 놓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세 번이나 잘못된 자리로 가서 내 자리라고 우기는 우스운 꼴을 만들어 내었다.


다행히 여러 사람들의 도움에 의해서 내 자리까지 갈 수는 있었다. 어퍼배드(Upper)였는데 다리를 쭉 펴면 발이 밖으로 나왔다. 문 바로 앞자리여서, 문이 열릴 때마다 문이 내 발을 계속 찼다. 그래서 새우잠을 잘 수 밖에 없었다. 크기도 크기였지만, 가방 문제도 있었다. 도난의 위험성 때문에 가방을 머리 쪽으로 놓고 자니, 가방 크기 만큼 자리가 줄어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와이어와 자물쇠로 가방을 묶어 놓았다.




22. 고슴도치


긴장이 풀렸다. 최소한 이 기차를 타고 가는 스물 몇 시간 동안은 길을 찾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마음이 편해졌다. 일기장을 꺼내기는 힘들어, 휴대폰에 일기를 이어나갔다.


고슴도치 같았던 첫 날, 나는 왜 그렇게 겁을 먹고 있었던 걸까? 적과 아군은 구분되지 않고, 모두 다 사기꾼 같아 보였다. 다가오는 사람은 아직 나에게 어떤 것도 하지 않았지만 나의 가시들은 그들을 벌서 찔러버렸다.


자유로워야한다는 생각이 나를 자유로움이라는 단어 속에 갇히게 만드는 것처럼, “먼저 다가오는 사람은 무조건 사기꾼이다“라는 생각도 여행 속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과의 만남을 단절시켰다.


가족과 친구로부터 떨어져 여행자가 되었다. 내가 배운 것들이 아무 쓸모없어지는 곳에서,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나는 왜 이렇게 두려울까?


한국에서의 나와 이곳에서의 내가 같을까? 내가 믿고 의지하고 있던 것들은 한국에서만 있는 것일까? 나라고 생각되는 것이 통하지 않는 이 곳에서는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내”가 될 수 없었다. 그것이 가장 큰 두려움의 이유였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것들은 한국에서만 있었다. 나라고 우기던 것들도 한국에서만 있었다. 그것들이 없는 이곳에서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믿을 것이 없으니 두려움이 밀려오는 것도 당연했다.


“나”의 발생은 완전히 조건적이었다. 의지할 것이 있는 곳에서만 당당했던 나처럼, 의지할 것이 없는 곳에서의 나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 “나”의 사고 역시 하나의 사례였을 뿐이다. 그리고 드는 이 확신은 사례가 아니었다.



23. 두려움에 관하여


두려움이 없는 것이 용기일까? 두려움에 맞서는 것이 용기일까? 한창 무서워하다보니, 두려운 것이 무엇일까 생각을 해봤다.


결론은 둘 다 아니었다. 용기라는 것은 위험한 곳에서 위험한 것을 제대로 알고 숙고할 줄 아는 것이 용기였다. 나는 계속 “두려운 것”과 “위험한 것”을 착각했던 것 같다. “두려움”은 감정이었지만 “위험한 것”은 상황이었다.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이라는 것이 원래 없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위험한 것을 두려운 것으로 보지 않고 그져 위험한 것으로만 볼 수 있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위험하다고 판단이 된다면 그 위험을 피하거나, 돌파할 방법을 생각해야했다. 무서워하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해도 충분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도, 실천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계속 기억을 할 필요는 있었다.


KakaoTalk_Moim_7L88sM6EDdZGYVpHsDvO0a2DdAqJJU.jpg 배낭을 바닥에 두기 두려워내 침상 끝으로 밀었더니 다리를 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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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현대식처럼 보이는 푸세식 변기가 신기했다. 기차가 흔들려, 오른쪽 벽에 있는 손잡이를 잡아야 했지만 찝찝한 생각에 손이 가지 않았다.



24.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 : 아슈


a. 기차표 다시 끊기!


내 아래 쪽에 있던 가족들은 별로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날 12시가 될 때까지 침대 위에서 가만히 있었다. 13시간 정도를 누워 있었는데, 이사하게 피곤이 풀리지 않았다.


가족들이 나가고, 12시간 정도가 남았을까. 어벙하게 있던 나와 옆쪽의 아래에(Side Lower) 있는 아슈와 눈이 마주쳤다. 눈웃음을 지으며 어색하게 인사를 하는 나에게, 내려오라며 말을 건넸다.


덕분에 13시간 만에 땅에 내려올 수 있었다. 내려오자마자 걱정이 시작됐다. 부사월로 간 후에는, 기차에서 내려 다시 아우랑가바드로 가는 표를 직접 구해야 했는데 그것도 처음이라 조금 겁이 났다.


어디로 가냐고 묻는 아슈에게 지금 상황을 설명 하니, 아슈는 자신과 같이 티켓 체커에게 가서 직접 표를 끊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표를 끊는데는 약 500루피가 들었다. 들어간 금액을 생각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비행기를 타는 것이 나았다는 생각이 스쳤다.


b. 아슈와 인도의 경제


아슈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엔지니어로 일을 한다고 했다. 아슈는 친구의 동생이(19살)이 자살을 해서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중이라고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리고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것저것 묻는 나에게 인도의 여러 문제는 교육을 받지 못함으로 인해서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황은 항상 바뀌는 것이니, 자신은 인도가 점점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이야기했다. 인도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다르다고…….


인도의 경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슈는 순환적인 시스템을 강조했다. 더 잘살기 위해, 똑똑한 머리와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인도에 제조시설을 유치할 수 있다면 인도는 대단히 빨리 성장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는데, 현 정부도 여러 국제적인 대기업의 제조공장 유치를 위해 노력중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제조공장이 생기면, 고용이 늘고, 또 값싼 제품을 인도라는 큰 시장을 상대로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c. 마이크로소프트 : 애플 = 인도 : 중국


아슈는 아이폰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너는 마이크로소프트에 다니면서 어떻게 아이폰을 쓸 수 있냐고 물으니, 이건 본인 취향이라면서 피식 웃었다.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관계가 인도와 중국의 관계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면도 있겠지만, 구도적인 측면에서 말이다. 내가 아슈에게 말하니 어느 정도는 그런 것 같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 : 뭐든지 호환 가능한, 어떤 기기들이든지 연결을 할 수 있는 개방성, 컴퓨터, 휴대폰 시장을 잡고 있는 국제기업


애플 : 폐쇄적적인, 자신들의 기기만이 호환 가능.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비쌈, 컴퓨터, 휴대폰 시장을 잡고 있는 국제기업


인도 : 민주주의, 종교적, 언어적 개방성, 브릭스 친디아에 모두 포함, 세계 인구 2위의 국가


중국 : 공산주의, 패쇠적이지만 개방된 부분이 있음. 빠른 개혁, 브릭스 친디아에 모두 포함, 세계 인구 1위의 국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만 놓고 봤을 떄, 이런 구도가 가능하다고 생각이 든다. 또한 결정적으로 두 기업, 두 국가 모두 상반되는 매력과 전략을 펼치고 있지만 둘 모두 성공한 기업이며, 떠오르는 국가임에 틀림없다.


마치 애플과 마이크로소프가 경쟁을 펼치듯 인도와 중국은 서로 다른 정치체제를 가지고 세력을 키워나간다. 누가 이긴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국가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개인의 행복의 관점에서 어느 국가에서 사는게 더 행복하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d. 파키스탄 vs 인도


아슈가 나에게 북한과 우리나라에서 물어와, 나도 어디서 들은 말을 그대로 전했다. “싸우쓰코리아 인디아, 노쓰코리아 파키스탄”이라고 외치니 웃으며 좋아했다. 내가 한국인이란걸 안 사람들은 항상 김정은 안부를 물어왔는데, 나는 항상 저 단어들로 답을 했다.



25.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 : 리쉬리아, 쉬리야, 니자


a. 세명의 학생


내가 하는 어설픈 힌디어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메라 남 주노 헤” “ 메 싸우쓰코리아 아라아 홍” “메 아우랑가바드 자나 헤” “ 얍까 남까 헤?” “ 께 썌 헤?” “메 틱 해”


지나가시던 한 아저씨가 나를 보고, 소개를 시켜주고 싶다면서 내 자리로 아이들 3명을 데려오셨다. 누가냐고 물으니, 아저씨는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소개하며, 3명의 아이들은 자신의 학생들이라고 소개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토론대회를 참가하기 위해 이동중이었고, 께리락 지방 개발로 인한 홍수 피해에 대해 찬반 토론을 한다고 하셔다.


선생님께 왜 이 셋을 데리고 오셨냐고 물으니, 가장 능력있는 아이들이라며 아이들을 칭찬하셨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어색하게 웃으니, 아이들도 나를 따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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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한국의 산림


아이들에게 한국의 산림복원 사례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우리나라의 산림복원은 세계에서 중요한 사례였다. 전쟁 후 폐허가 돼 버린 벌거숭이 산들로 인해서, 우리나라도 홍수피해가 많았었다. 하지만 그 산들은 지금 대부분 초록 빛을 찾아, 우리나라 면적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엔 아직도 복원되지 못한 산들로 인하여 매년 자연재해에 시달리고 있다. 인도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아이들의 토론 주제처럼 개발은 자연을 파괴하고 그 결과 얻은 혜택만큼 잃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다시 말해, 잘 살기 위한 개발과 잘 살기 위한 자연보존 사이에서 갈등할 것이다.


그 방법이나 양상은 우리나라와 많은 차이를 보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산악지역인 특징이 있지만, 북쪽을 제외하고 대부분 평야지역인 인도는 아마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대충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했다. 전문가도 아닌 나의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 였지만 아이들은 감사하게도 경청해주었다.


c. 접촉에 관하여


일기를 쓰고 있는 이 아우랑가바드의 유스호스텔의 메니저는 불교신자였다. 여러 가지 대화를 하던 중, 헌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달리트 출신의 사람과 접촉이 아주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고 한다. 어쩌다가 접촉을 하게 되면, 그것을 정화하기 위해서 소의 오줌으로 몸을 씻었다고 한다. 비위생적인 소의 오줌으로 정화를 할 정도로, 그들에게 접촉은 대단히 상징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대화를 하던 중, 그 선생님(남자)은 여자 아이의 무릎에 손끝을 살짝 데고 머리와 가슴에 차례로 손을 대는 모습을 봤는데, 대화 중에 몇 번이나 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엇이냐고 물으니, 실수에 의해서 나이가 많은 남자와 어린 여자 사이의 접촉이 있을 때, 상대방을 축복하고 존경한다는 뜻에서 그런 의식을 취한다고 하셨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의 인권이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여성을 대하는 그런 태도가 신기하게 보였다. 나이가 많은 여성분에게는 나이가 적은 남성이 상대방의 발에 손을 대고 자신의 이마와 가슴에 손을 차례로 대면 그 여성분을 축복하고 존경하는 것이라고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만마드 역에서 내려, 만난 여자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쉬리야가 나에게 아까 배운 것을 해보라고 말해줬다. 내가 선생님의 발에 손을 데고 내 머리와 가슴에 손을 차례로 데니, 선생님께서는 많이 숙쓰러워 하시며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셨다.


d. 돈에 싸인은 왜 해 ㅋㅋㅋ


아이들이 나에게 한국 돈이 없냐고 물어왔다. 공항에서 쓰고 남은 3,000원이 있었는데, 그 돈을 한 장씩 주었다.


니자는 그냥 받을 수 없다면서 나에게도 160루피를 주었다. 거기다가 내가 준 천원 짜리 지폐에 사인까지 받아갔다. 황송할 따름이었다.


한국에서 내가 사인할 수 있는 곳은 지극히 정해져있지만, 여기서 아이들이 나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하니, 이곳에는 그들이 보는 또 다른 내가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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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아슈, 오른쪽이 그 학생들이다.
KakaoTalk_Moim_7L88sM6EDdZGYVpHsDvO0a2DdAJZdw.jpg 니자는 시를 쓴다고 하였다.보여준 공책에는 시와 그림으로 가득했다.무슨 뜻일까?


26. 아 그렇게 버리는 거구나

여섯시쯤 저녁을 팔러 돌아다니시는 분에게 탈리 도시락 하나를 샀다. 바로 먹지는 않고, 아슈가 먹을 때 같이 먹으려 아껴 두었다.


처음 먹어보는 탈리여서, 아슈가 먹는 것을 보고 따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슈는 같이 딸려온 포크로 탈리를 먹기 시작했다. 밥도 손으로 먹을 줄 알았는데, 정작 그 기차 안에서 손으로 먹는 것은 나 혼자였다.


밥을 다 먹고 나서가 더 충격적이었다. 이제까지 먹은 쓰레기를 다 가지고 있다 나중에 버려야지 생각하고 있었던 나에게, 아슈는 다 먹은 도시락을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아무리 봐도 버릴 곳이 없었는데, 아슈는 도시락을 가지고 화장실이 있는 쪽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기차 량과 량을 연결 하는 부위의 작은 공간에 쓰레기를 투척했다. 쓰레기는 그대로 철로로 떨어졌다. 위생관념 보다 먼저, 그걸 치우는 사람이 있는데 굳이 쓰레기 통을 찾아 버릴 이유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다른 작은 쓰레기들도 바로 복도 위에 버리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이렇게 쓰레기를 버리는데에도 쓰레기가 넘쳐나지 않는 걸 보면, 누군가는 끊임없이 치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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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의 기차 안 모습이다.
IMGP0689.JPG 음식을 파시는 분이 정기적으로 기차를 돌아다니셨다.맛있는 것들이 꽤 있다.누워있는 것은 아슈다.




27. 부사월 역 도착


부사월역에서 아슈와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부사월역에서 아우랑가바드로 가는 기차를 타야했다. 다행히 선생님과 세 학생도 부사월에서 다른 목적지로 이동을 한다고 하였다.


부사월 역에서 기차표를 사는 곳은 한참 떨어져 있었는데, 다행히 니자가 길을 찾아 주었다. 외국인이 많은 곳이라 매표소 직원도 영어를 하지 못했지만, 니자가 대신 아우랑가바드로가는 표를 물어봐 주었다.


당일 사는 표는 출발 2시간?인지 밤 12시가 지나서 살 수 있다고 하여 사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이야기를 들으신 선생님께서 내 수첩에 힌디어로 쪽지 하나를 적어 주셨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에게 아우랑가바드로 가는 표를 주세요.”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타는 기차가 거의 다 왔다는 안내 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는데, 쉬레야 나에게 물었다. “우리를 다 잊을꺼지?” 그 말에 제대로 답할 수는 없었다. 다만 이 글이 쓰여지고, 내가 그 감사함들을 잊어 버리지 않는 한, 나는 그들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처럼



KakaoTalk_20190130_111439279.jpg 선생님이 써주신 쪽지다.“이 사람에게 아우랑가바드 표를 주셔요.” 맞을려나




28. 감자 칩을 들고 가부좌를 트신 할아버지


선생님과 학생들이 떠났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다음 역으로 가는 기차는 4번 플랫폼으로 온다고 했다. 나도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계는 새벽 한 시, 날씨가 제법 추웠다. 엘리베이터 근처의 기둥에 가방을 놓고 앉아 시간이 지나길 기다렸다. 길을 걷던 한 친구가 내 옆에 앉더니 나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내충 대답을 해주고, 나의 표를 보여주며 여기서 타는 것이 맞는지 다시 확인을 했다.


그 친구와 같이 있으니, 역에서 물건을 파는 패거리 애들이 몇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냥 내가 궁금해서 온 것 같았다. 나도 친한척을 해보려 가져온 홍삼캔디를 근육에 도움이 되는 약이라고 속이며 몇 개를 건넸다. 얼마 후, 다른 친구들 까지 다 데리고 와서 사탕을 달라고 하여 한 웅큼을 쥐어줬다.


그러다, 어떤 하얀 옷을 입으신 할아버지가 왼 손에 레이칩 작은 것을 들고 지나가셨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시더니, 버튼을 누르시고 문이 열린 후에 엘리베이터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으셨다. 그리고 패거리의 관심이 나에게서 그 할아버지에게 옮겨 갔다.


그 패거리는 앉아 계신 할아버지의 동영상을 찍어 가더니, 이내 경찰 아저씨들을 불러왔다. 그리고 경찰 아저씨들은 할아버지를 끌어 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셨다. 내게 처음으로 다가왔던 친구가 말하길, 저 할아버지가 미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경찰 아저씨들이 할아버지를 때리는 사태까지 갔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경찰의 폭력이 시작되자마자, 그 주변에 있던 패거리들까지 단체로 할아버지를 구타했다는 것이었다. 이 구타 이후, 할아버지는 울먹거리며 다른 곳으로 갔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할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다시 가부좌를 트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KakaoTalk_Moim_7L88sM6EDdZGYVpHsDvO0a2DdAUr6i.jpg 오른쪽이 그 양아치, 중간이 만난 친구이다.미안하지만, 양아치 친구는 진짜 양아치처럼 생겼다


29. 축복 속에서


그들을 떠나보내고, 성스럽고(Rishiria, 리쉬리아), 아름다운(Shreya. 쉬레야), 연꽃(Neeraji, 니자)이 만들어 준 길과 축복(Ashu, 아슈) 속에서 나도 아우랑가바드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아무런 예약도 없이 산 새벽의 기차에는 자리가 있을 만무했다. 자리가 없어 화장실 칸 옆에서 몸을 웅크리고 아우랑가바드로 향했다. 기차표의 가격은 55루피였다.


화장실 칸에는 나말고도 10명이 넘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재미거리가 없는 이곳에서, 나는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그리고 한 친구가 내게 다가왔다. 아재즈(Ajaj)라는 친구였는데 기적을 뜻한다고 하였다. 자신을 친구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였는데, 나는 좀 부담스럽웠다.


내가 표를 보여주니, 아제즈는 나에게 여기 있으면 안되긴 한데 그냥 있어보라고 말해주었다. 원래 제너럴 티켓을 가진 사람이 탈 수 있는 곳은 기차의 처음과 끝 중 하나인데, 내가 탄 곳은 기차의 중간 쯤이었다.


그리고 이네, TC(Ticket Checker)가 와서 표 확인을 시작했다. 어떻게 잘 좀 보여보려고, 나도 어설픈 힌디어 메들리를 시전했다. 그리고 피식 웃으시면 외국인이니 그냥 여기 있으라고 말했다.


아재즈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가니 4시 정도가 되어서 아우랑가바드 역에서 도착할 수 있었다. 아재즈가 내 번호를 받아갔는데, 역에 내리고 나서 연락이 왔다. “잘 도착 했어?” 묻는 아재즈가 고맙기도 헀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 고비를 넘긴 것만 같았다. 드디어 첫 번째 목적지인 아우랑가바드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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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앞의 아저씨를 따라서 쭈그리고 앉아, 오른쪽 손으로 턱을 괴었다.




30. 아침이 오길 기다리면서


동행하시는 분과는 아우랑가바드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직 새벽이기도 하였고, 동행이 탄 기차는 10시가 넘어서 도착한다고 하였다.


기차에서 내려, 불이 켜진 승합장 한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 무작정 들어갔다. 막는 사람도 없었고, 그곳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 나도 침낭을 펴고 누웠다. 너무 피곤한 탓이었는지, 그렇게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복대가 바닥을 향하도록 엎드려 잠을 잤다. 새벽의 공기가 선선했다. 그리고 이내 잠이 들었다.


잠에서 나를 깨운 것은 청소를 하시는 아주머니셨다. 그 많던 사람은 이제 온데 간데 없었다. 큰 승합장 안에는 나 혼자 뿐이었다. 서둘러 짐을 챙겨서 다른 의자를 찾았다.


의자에 앉아, 이제까지 있었던 일들을 일기장 위에 적었다. 이곳으로 오면서도 정말 많은 일들과 사람들을 만났던 것 같았다. 써도 써도 끝이 안났다. 그렇게 막 쓰고 있던 사이에 반가운 한국말이 들렸다.


“안녕하세요! 혹시 준호씨세요?”


-A.E.2 엘로라 그리고 아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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