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불교 유적 순례기 : 아우랑가바드 편
"안녕하세요! 준호씨세요?“
여행을 와서 만난 두 번 째 동행, Alexys님이 셨다. 출국 하는 날, 버스에서 연락을 드렸었는데, 출발한지 3일이 되어서 만날 수 있었다.
상당히 오랜 기간의 여행경력이 있으셨던 분이셨다. 20살 때부터 20년간 세계 곳곳을 돌아 다니셨다고 하셨다. 인도도 이번 여행이 세 번 째 방문이셨고 육로를 통해 인도로 넘어오셨다고 하셨다.
엘로라도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라고 하셨는데, 덕분에 아우랑가바드에서 가장 싼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짐을 풀고 점심을 같이 먹은 뒤 드디어 첫 유적지를 갈 수 있었다.
밥을 먹고 나니, 오후 1시가 넘어가 있었다. 엘로라도 마음을 먹으면 갔다 올 수 있었지만, 엘로라 전체를 보는데에 시간이 많이 걸려 아우랑가바드 석굴 먼저 방문하기로 했다.
아우랑가바드 석굴까지 가려면 릭샤를 타야 했는데, 얼빵해 보이는 나에게 몇 가지 팁들을 알려 주셨다.
첫 째, 싸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정차해 있는 릭샤를 타지 말고 움직이는, 사람이 타고 있는 릭샤를 잡을 것. 일단 쉐어를 해서 가면 값이 엄청나게 많이 내려가신다고 하셨다. 물론 위험하게 낑겨 타야하고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는 단점은 있었다.
둘째는, 현지 가격을 모를 때는 대충 1키로미터 당 10루피로 잡으면 적절 할 것
셋째는 절대로 먼저 돈을 주지 말고, 안전하게 내려서 짐까지 내린 후 돈을 지불하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돈을 먼저 주면 집을 가지고 튈 수도 있다고 하셨다.
유스호스텔에서 아우랑가바드 숙소가 있는 곳까지는 20분 정도가 넘게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오고 가고 얼마를 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돈은 알렉시스님과 반반씩 나눠 냈다. 아우랑가바드로 가는 길에, 미니 타지마할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었지만, 입장료가 비싸서 들어가지는 못했다.
아우랑가바드 석굴군은 이 미니 타지마할에서 조금 더 위 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석굴군은 총 10개의 석굴로 2~7세기에 지어진 석굴이라고 한다.
입장료(600루피)를 내고 입구를 통과했다. 석굴은 돌산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서 곳곳에 만들어져 있었다. 석굴에도 양식이 있고, 그 석굴이 표현하는 인물이나 이야기가 있다고 하지만,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다만, 아우랑가바드 석굴 자체도, 내 기준에서는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석굴들을 처음 봤을 때, 좀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나 많은 수의 석굴들을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파놨을까? 무엇을 목적으로, 이곳에 수행자를 위한 굴들을 만들어 놓았을까? 라는 의문만 들었다. 후마윤의 무덤이나, 타지마할과는 다른 동기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느낌이 묘했다.
돌산은 꽤 가파르고 컸다. 슬리퍼보다는 신발을 신고 가는 것이 나아 보였다. 액션캠으로 영상까지 찍어보려고 했지만, 액션캠을 드는 것부터가 관람을 하는데 너무 방해가 되어, 사진만 찍기로 하였다.
가져온 향을 하나 사리고, 잠시 앉아 있다가 하산을 시작했다.
먼저 미니 타지마할이 있는 곳까지 온 후, 그곳에서 다시 아우랑가바드 석굴이 있는 곳으로 릭샤를 탔었다. 이곳은 외국인들은 거의 오지 않는 것 같았고 온 현지인들도 자가용이나 오토바이를 타고 많이 오시는 것 같았다.
우리가 올라갈 때도, 릭샤 아저씨는 위에 릭샤가 없다며 왕복으로 협상을 하시려고 하셨다. 하지만 알렉시스님은 기다리게 하면 가격이 올라간다며, 한사코 거절을 해서 결국 편도가격으로 아우랑가바드 석굴에 가게 됐었다.
우리를 내려주면서도, 끝까지 기다리신다면서 돈을 더 받으려고 하셨는데, 알렉시스님에게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우리가 관람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저씨는 기다리고 계셨지만, 아저씨를 무시하고 더 내려갔다. 아저씨는 우리를 따라 오셨지만, 5번이 넘게 안탄다고 말하고 나서야, 아저씨는 쓸쓸하게 돌아가셨다.
결국에는 히치하이킹을 하여서 내려왔는데, 여기에서 정말 알렉시스님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정말 릭샤가 하나도 없어서, 오토바이 뒤에라도 타고 가려고 했지만, 오토바이는 2인으로 모두 차 있는 상황이었다.
자가용 한 대가 있었는데, 5인용 차에 이미 5명이 타고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리봐도 태워주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이었다. 알렉시스님은 기다려 보라며 그곳으로 가서, 태워줄 수 있겠냐고 그 가족에게 물었다. 그리고 신기하게 자리가 만들어졌다. 비좁긴 했지만, 그 가족의 아버지가 흔쾌히 수락을 하시더니, 두 자리가 생긴 것이었다.
덕분에 돈도 아끼고, 편하게 다른 릭샤를 잡을 수 있는 데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또 나도 일단은 짐작하지 말고, 인사하고 부탁해봐야한다는 여행 팁을 얻을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고 저녁을 먹으로 나왔다. 알렉시스님이 이전에 이 근처에 장미식당이라는 한국음식점이 있다고 이야기 하셨다. 호스텔 매니저에게 물으니 아직도 있다며 위치를 알려주셨다.
저녁은 그곳에서 먹기로 했다. 호텔에 달린 식당이었는데, 인도 요리사분께서 한식뿐만 아니라 많은 요리를 하셨다.
입장을 하니, 맨 구석에서 백인 한 명이 밥을 먹고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우릴 보고 엄청 놀란 눈치였다.
그 친구는 팀(Tim)이라는 독일인이었는데, 뭄바이에서 여행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뭄바이에서 나오고 부터는 다른 여행객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며 우리에게 반가움을 표했다. 옆자리에서 킹피셔 스토롱을 먹고 있었는데, 이네 우리 자리로 합석을 했다.
인도 여행에 대한 이제까지의 감상을 얘기하는 그의 얼굴은 반가움 때문인지 아니면 맥주 때문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붉어 졌는데, 붉어지면 붉어질수록 “유노(You know?)라는 추임세의 빈도가 늘어났다. 내용은 외국인이 너무 없지 않느냐?, 사람들이 계속 사진을 찍자고 해서 귀찮아 죽겠다 등이었다.
팀과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알렉시스님에 대해서도 더 알 수 있었다. 여행을 좋아하셔서, 중국과의 무역을 하는 회사에서 프리렌서처럼 일을 하신다는 것이셨다. 그리고 팀과의 영어로의 대화에서도 아주아주 영어를 잘하셔서 부러웠다.
나는 수제비를 먹었는데, 진짜 완전 99% 한국 수제비 맛이었다. 깜짝 놀랄 정도였다. 어떻게 여기서 이런 맛을 낼 수 있는지, 맛있게 밥 한 그릇 까지 말아먹고 숙소로 향했다.
팀과는 내일 저녁에 다시 만나 이야기를 더 하기로 하였다.
밥을 먹고 돌아와 아무도 없는 10인실 도미토리에 침낭을 깔고 누웠다. 이제 시작인데 너무 피곤했다. 11일 날 출발하여서 12, 13일은 기차 안에서 보내고, 곧 바로 노숙을 했었다.
피로가 밀려오자 괜히 서러워졌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곳에 왔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곳에 오려고 했던 목적이 흐려졌다. 두 달이라는 여행기간이 나의 판단 착오가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
서럽고, 슬펐다. 체력이 회복되면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동하는 시간을 쉬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잘못이었다. 이동시간과 유적지를 둘러보는 시간만큼 휴식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몸이 쑤욱 이완되어 침대가 나를 당겨왔다. 중력이 늘어난 거 같았다. 잠은 쉽게 들 수 있었지만, 새벽에는 모기와 한 바탕 하느라 잠을 설쳤다.
8시쯤 이곳에서 나와 장미식당에서 플레인 오믈렛 2인 분을 먹었다.
그리고 장미식당 바로 앞에 있는 노점에서 처음 짜이를 먹었다. 처음 먹어본 짜이였는데, 물이 거의 들어가지 않아서 그런지 아주 진하고 달았다. 그 자리에서 4잔을 마셨다.
알렉시스님이 엘로라를 다 천천히 다 둘러보려면 5~6시간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얘기 해주셨다. 그래서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서 있는 슈퍼에서 물과 간식거리, 오도모스(모기퇴치제)를 사고 갔다.
엘로라로 통하는 교통 수단은 버스와 지프가 있었다. 두 수단 모두, 고가 도로 건너 편 쪽에 위치했는데, 가격도 50루피로 통일 되어 있었다. 아마 정부에서 가격을 고정시켜 놓은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지프에 타기로 결정하고, 사람이 많이 있어 보이는 지프차에 몸을 실었다. 약 한 시간 정도를 달리는 내내, 덜컹 거리는 지프차에서는 인도의 마살라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 인도 음악들의 느낌은 비슷했는데, 트로트라고도 할 수 없었고 가요라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뭐 신났으니 상관 없었지만, 문득 홍진영이 생각이 났다. 인도음악과 아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홍진영이라는 사람 자체를 인도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상행선과 하행선의 1차선 도로 위에는 인도만의 상하행선인 중행선이 있었다. 분명이 길은 하나지만 중간 차선을 기준으로 오고 가는 차령이 왔다 갔다 하면서 곡예 운전을 하였다.
지프차 조수석에 타고 있던 나는 눈을 뜨고 그 광경을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보기에 아찔한 상황은 계속 반복되었지만, 차 안에 있는 다른 분들의 표정엔 미동조차 없었다.
차 안에서 인도의 마살라 음악과 경적소리는 실틈 없이 뒤섞였다. “Please horn"이라고 써져 있는 문장에 보답하듯, 옆의 운전기사도 끊임 없이 경적을 울려댔다. 오히려 경적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 보였다. 그리고 더 안전해 보이기도 했다.
박쥐처럼, 경적소리로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것처럼 보였다. 빵빵하고 소리를 내면, 앞의 차는 알았다는 듯이 빵 소리를 내며 자신의 자리를 내어줬다.
이 광경을 계속 보고 있자니 심장이 조그만 나는 기가 빨렸다. 차라리 눈을 감고 있는 편이 나았다.
입구에서 보기에는 엄청나게 큰 유원지처럼 보였다. 표(600루피)를 산 뒤, 첫 번 째 석굴로 가고 있는 나에게 엘로라에 관한 팜플랫을 건네셨다. 공짜는 아니었지만, 내용이 괜찮을 것 같아 50루피를 주고 책을 샀다.
엘로라 석굴은 4세기~13세기 사이에 만들어졌으며 총 34개의 석굴로 이루어져 있다고한다. 이중 불교 석굴은 1번에서 12번 석굴까지라고 가이드북에 쓰여 있었다.
첫 번째 석굴에서, 사온 바나나와 같이 향을 사렸다. 향초가 다 탄 후, 거기 계시던 분들께 바나나를 나눠 드렸다. 그리고 다음 석굴로 계속 이동해 나갔다.
석굴의 종류는 제 각각 이었다. 천장이 높은 석굴, 2층 석굴 등등 양식이 다양해 보였다. 만들다가 만 석굴도 몇 개 있었다. 어제 본 아우랑가바드 석굴군보다 석굴 하나의 규모도 무척 컸다.
석굴들 자체에서의 감상보다는, 석굴이 만들어지고 보존되는 석굴들을 만들고 보존할 수 있었던 문명과 문화에 더 인상이 깊었다.
3개의 종교(힌두교, 자이나교, 불교)가 어떻게 오랫동안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었을까? 서로를 인정하는 종교는 어떤 문명으로부터 발생될 수 있었을까?
문명과 문화가 한 지역의 사람들의 공통적인 기질과 믿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면, 또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것이 가장 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 가장 강하고 위대한 문명이 가져야할 필수조건은 “공존”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공존”은 서로 같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중립적이다. “공존‘ 속에서 서로에게 피해를 줄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문명“이라는 세력은 지역 환경을 바꿔나가며 크기를 불린다. 하지만 일정 크기 이상으로 문명이 커지기 위해서는 환경으로부터의 외부자극 보다 더 큰 외부자극이 필요하다.
다르게 말하면, 작용·반작용의 법칙과 같이 문명의 테두리가 커질수록 커지는 내부의 밀어냄을 해소시킬 수 있는 같은 크기의 외부압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외부압력을 유지시키고 인정하는 힘은 “공존”으로부터 나온다.
“공존”없이 무조건적인 정복활동으로도 문명의 면적은 넓혀질 수 있다. 하지만, 자신들의 문명에 필수적인 외부압력을 인정하지 않은 체, 제거해 나가기만 한다면, 마자막에는 하나로 통일된 문명만이 남게 된다면 그들에게 남겨진 운명은 대폭발 뿐이다.
우주의 암흑물질 속에 우주복도 없이 갑작스럽게 떨어진 사람처럼, 외부 압력 없이는 내부압력에 의해 형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오히려, 외부압력에 의해 정렬되어 있던 문명 요소들의 벡터는 나침반을 잃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즉, 통일된 문명은 스스로 다시 작은 조각으로 돌아가게 된다.
물론 단순히 “공존”을 향하는 자세만으로 내가 보고 있는 엘로라의 석굴들이 유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의 예외와 여러 변수들이 분명 상호작용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적당한 시기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질 수 있도록 만들었던 인간의 망각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을수도...
이곳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16번 카일라스는 담겨두고 계속 다음 석굴로 옮겨 다녔다. 워낙 큰 규모의 석굴군이기도 하고, 석굴자체의 크기도 컸기에 쉬는 시간까지 포함헤 5~6시간 정도는 걸린 것 같았다. 불교로 시작된 석굴들은 힌두교로 넘어가고, 마지막에는 자이나교 석굴들로 마무리가 되었다. 맨 마지막 32번 석굴에서는 셔틀이 운영이 되어 입구까지 갈 수 있었다. 물론 10루피인지 20루피를 내야했다.
버스에서 내려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를 향했다. 힌두교 석굴이자, 엘로라의 최대 석굴인 카일라스였다. 입구에서의 짧은 검문을 마친 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규모와 섬세하게 조각된 석굴들은 엘로라 어디에서보다 웅장함을 만들어 주었다.
왜 이렇게 웅장한, 거대한, 엄청난, 아름다운, 압도하는 건축물이 필요했을까? 이러한 수식어가 만드는 종교에 대한 이미지였을까? 그리고 이런 이미지들이 종교적인 믿음을 보여주고 강화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종교적 체험을 최대한 가깝게 표현하여주는 것일까? 시성 타고르의 말처럼 어떤 말보다도 그 신성과 가르침들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일까?
카일라스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다른 질문이 생겼다. “과연 어떤 건물이 오래 남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내가 아는 도시 위의 건물들은 얼마나 오래 남겨져 기억될 수 있을까? 이 엘로라라는 하나의 거대한 건축물을 보면서 든 생각의 답은, 건물의 기초공사보다 더 아래에 깔려있는 “어떤 믿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이곳은 완전한 믿음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믿음에 의해서 만들어졌기에, 다른 믿음만이 이 곳을 파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 믿음이 없어질 때 기억 속에서 잊혀질 것이다.
같은 이유로, 어떤 목적과 철학으로 만들어진 건축물들도 그 목적이 잊혀지거나, 사라지거나, 다른 유행하는 철학으로 바뀌거나, 더 이상 돈을 만들어낼 수 없다면 건축물은 더 이상 유지될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답을 알고 있다. 건물은 만들어진 이상 파괴될 수밖에 없다. 다른 인간에 의해서 더 빨리 파괴되겠지만, 결국에는 시간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다시 먼지 속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기초공사보다 더 아래에 깔려 있던 믿음일 것이다. 믿음도 잊혀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의 사라짐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가르침만이, 사라질 수 있는 모든 것에 의지하지 않는 믿음만이 끊임없이 이러한 건축물을 쌓아 올릴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알렉시스님은 이곳에 다시 온 이유를 간단히 엘로라의 카일라스를 다시보기 위해서라고 답하셨다. 그러면 바로 카일라스 가시면 되는 거 아니에요? 라고 묻는 나에게 말을 더하셨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해질녘의 카알라스에서 바라보는 노을‘을 보러 오셨다고 말하셨다.
얼마나 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카일라스에서 한 일본인 아저씨와 같이 앉아 하염없이 카일라스와 해지는 노을을 바라보셨다고 하셨다. 그 일본인 아저씨는 바쁜 생활을 보내시다, 어쩌다 본 카일라스를 오고 싶어 인도에 왔고, 공항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이곳으로 곧장 왔다는 이야기를 같이 해주셨다. 추억이 깊은 곳 같았다.
알렉시스님은 자신이 아는 자리가 있다며 움직이셨다. 나도 그 뒤를 따랐다. 카일라스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카일라스의 상층 건축물이 있는 언덕이였는데, 지금은 한 경비 아저씨가 그곳을 막고 있었다. 나는 바로 포기했지만, 알렉시스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다시 카일라스로 들어가시더니, 경비원 한 분을 모셔왔다. 그 선임 경비원이 언덕을 지키시는 아저씨에게 뭐라 뭐라 하시더니 문이 열렸다. 특별 허락이 떨어지신 것이었다. 나는 너무 놀랐지만, 알렉시스님은 인도에선 가능한 일이라면 웃어넘기셨다.
언덕 위로 올라가니 우리와 아저씨 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들어올 수도 없었다. 카일라스를 위에서 볼 수 있었고, 카일라스와 같이 멀리서 떨어지는 해도 볼 수 있었다. 카일라스가 해가 지는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이곳이 왜 막히게 됐냐고 아저씨에게 물으니, 이곳에서 셀카를 찍다가 관광객 몇 명이 카일라스로 떨어져 죽은 사건이 있은 후에는 이곳을 패쇄하게 됐다고 하셨다. 확실히 난간도 없는 구조물이 위험해 보이기는 했다. 나도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는 않았지만, 알렉시스님은 그 난간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셨다. 오늘 본 어느때 보다 상기된 표정이셨다.
사진 하나를 찍어 드리고,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저씨는 이곳에서 2년 정도를 일하셨는데, 밤과 낮으로 3교대로 돌아가면서 카일라스를 경비하신다고 하셨다. 힘들기는 하지만, 유적을 지키는 일은 중요한 일이라며 대단히 자랑스러워 하셨다.
시간이 지나자, 노을빛이 카일라스를 점점 채워나갔다. 그리고 곧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돌아가는 길에는 히치하이킹을 하여서 한 사람당 30루피에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퇴근하는 시간과 겹치면, 다른 지역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이곳에서 기름값을 벌어가시는 듯 하였다.
차에 타자, 우리에게 이것저것 물어왔다. 그리고 자신들은 인도에서 유명한 자동차 회사에 다닌다면서 자랑을 했다. 우리가 반응이 없으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아무 말도 없게 되었다.
6시쯤 돌아와 짐정리와 목욕을 한 뒤 잠시 휴식을 하였다. 일곱 시, 팀과의 저녁식사 전까지 생각해 놓은 감상을 짧게 휴대폰에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