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불교 유적지 순례기 : 아잔타 편
일곱 시에 만나기로 한 팀은 시간이 지나도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제 페이스북 아이디를 교환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시지를 보냈다.
“우린 이미 왔어, 음식 시켜 놓을까??”
“팔라크 파니르 : ), 미안 나 지금 휴대폰 때매 못가고 있어”
“오키오키 얼른 와”
“휴대폰으로 기차표 예약하고 있는데 안되네.. 빨리 갈게”
이십분 정도가 늦어서 팀이 도착을 했다. 시뻘게진 얼굴로 왔는데, 기차 예매 때문에 골치를 썩는다고 하였다.
나도 일찍이 휴대폰으로 기차 예매는 포기하고 있었다. IRCTC 가입도 하고 돈도 냈지만, 이상하게 내 카드로는 결제가 불가능했다. 내 얘기를 팀에게 하니, 자신도 카드로 결제가 불가능하다며, 독일에 있는 누나에게까지 부탁을 했지만 실패했다고 하였다. 할 수 있는 것은, 현장예매밖에 없었는데, 내일 나와 같이 기차역에 가기로 하고 기차표 이야기는 마무리가 되었다.
팀은 철학을 전공했고, 광고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잠시 일을 쉬고 있다고 했다. 5년 전인가 인도에 왔었는데, 두 달 정도 시간이 남아서 다시 인도에 왔다고 하였다. 팀은 내일 더 남쪽으로 이동할 계획이라고 했다.
어제 팀과 잠깐 만났을 때, 아잔타에 간다는 그에게 내가 알고 있는 영어 불교 서적을 추천해주었다. 그냥 가는 것보다는, 짧게 나마 어떤 종교에 의해서 그곳이 만들어졌는지 알고 간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제대로 읽지는 못했지만 금강경(Diamond Sutra)과 부처의 가르침(What the Buddha Taught) 월플라 라훌라)을 읽고가면 좋을 것이라고 추천을 해줬었다.
물론 그는 어제 킹피셔 때문에 골아 떨어져 보지는 못했다고 하였지만, 그가 방문한 아잔타와 내가 추천한 책들을 계기로 종교와 철학과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팀은 여러 철학에 대해 섭렵하고 있었다. 이름만 들어본 사람들의 철학에 대해 아주 상세히 잘 알고 있어보였다. 물론 내가 알지 못해서 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나도 나의 여행이야기를 해야 했다. 무엇 때문에 인도에 왔는지, 왜 불교 유적지 순례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나의 말을 듣고, 팀은 불교라는 종교에 대해 궁금해 했다. 그리고 나에게 불교가 무엇인지 물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지에 대해선 머리가 하예 졌다.
잠시 동안 벙쪘다. 그리고 내가 내뱉은 말은 “불교는 두려움이 없는거야”였다. 실제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쫓는 것은, 삶에 대한 두려움이 그 순간이라도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제까지 해왔던, 공부든, 무슨 점수던, 자격이던, 프로그램이던 나의 활동들 대부분의 동기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누구보다, 무엇인가가 나아야만 나의 가치와 미래의 삶이 보장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보장되는 것은 없었다. 그 끝에서는 타협을 통해 나를 속이거나, 더 큰 두려움으로 더 나음을 찾아 헤매는 결말 밖에는 없었다.
이런 고백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책에서 보았던 몇 가지 이야기를 보탰다.
ㄱ. 만약 “나”가 실제로 없는 것이라면, “나”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나”와 같다고 볼 수 있나? “나”에게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연속성이 없다면, “나”를 결정짓는 것은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아닌가?
ㄴ. 우리 앞에 있는 유리잔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정확히 같은 위치에서 이것을 바라볼 때, 다시 말해, 정확히 같은 자극이 우리의 신경을 따라 뇌에 도달 했을 때, 우리가 보는 이미지는 정확히 일치 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꾸는 꿈의 과정은 어떠한가? 외부로부터의 시각 자극 없이도, 우리는 외부자극 없이도 꿈이라는 내부자극을 통해 무엇인가를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것들을 정확하게 보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ㄷ. “노란색 풍선”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당신은 노랑색 풍선이 분명한 이미지의 형태로 보일 것이다. 그 이미지는 어디에 보이는가? 지금 보고 있는 것과 그 노랑색 풍선 중 무엇이 진짜인가?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외부자극과 내부자극의 합을 통해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우리가 보는 것들은 정확히 일치 할 수 있겠는가?
ㄹ.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나는 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가? 바꿔 말하면, 나는 내가 보고 느끼는 세상을 바르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나”의 연속성을 주장하면서, 내 앞에 있는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 오염되어 있지 않은가? “나”의 연속성이 애초에 없는 것이라면, “나”의 연속성을 주장하면서 만들어지는 “두려움”은 “나”를 얻음으로써 만들어지는 부작용일 뿐 아닌가?
ㅁ.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가? 당신은 지금 이 순간을 바르게 보고 있는가?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알렉시스님과 팀은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나도 다른 누군가에게 털어 놓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얘기하니 시원했다. 그리고 나의 말을 듣고 팀도 자신도 무엇인가에 대해 평생 동안 두려워 했다는 이야기를 해줬을 때 정말 고마웠다. 나를 위로하기 위해 한 말이라고해도, 정말 감사했다.
이야기를 하던 중, 알렉시스님께서 하나 제안을 해주셨다. 시간이 있으면 다람살라에 가보는 것 어떠냐는 것이었다. 자신도 인도에 온 큰 두 가지 이유 중 하나가 10월 초에 있는 달라이라마의 티칭에 참여하는 것이였는데, 아쉽게도 다른 일정이 생겨 가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하셨다. 내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가서 한 번 티칭을 들어보는 것을 추천해주셨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들으러 인도에 온다면서 강력하게 권해주셨다.
또 티칭 시즌에는 엄청나게 사람이 많이 몰려 숙소를 구하기 힘들고 비싸니 미리 연락을 해 놓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자신이 머물렀던 곳의 매니저 번호를 알려주셨다.
확실히 갈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부처님의 일대기가 있는 비하르, 우트라프라데쉬 주의 유적지를 둘러보는데는 약 한 달간의 시간만 있으면 충분해 보였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3주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고, 대략의 동선도 짤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나가르주나콘다가 있는 하이데라바드에 갔다가, 그곳에서 방갈로르로 움직여 델리로 비행기를 타고 가는 코스였다. 그렇게 남은 일정에 다람살라로 가는 일정을 추가시켰다.
아홉시 즈음, 알렉시스님은 짐을 싸서 기차역으로 향하셨다. 마이소르라는 지역으로 이동해서 요가를 배워보신다고 하셨다. 그렇게 알렉시스님과 헤어졌다.
아침에 팀과 장미식당에서 밥을 같이 먹고, 기차표를 끊으러 아우랑가바드 역으로 향했다.
팀은 함피 쪽으로 가기 위해서 따깔표라도 구해보려고 했지만 실패를 했다. 나도 처음 함피로 가는 일정을 바꾸는 바람에 기차표에서 900루피를 손해봤다. 기차표 구매는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어떻게 900루피나 때어갈 수 있나.. 나쁜놈들. 팀과는 역에서 다시 장미식당으로 돌아 온 후, 서로의 여행이 안전하고 재밌기를 이야기 하며 헤어졌다.
팀과 헤어지고, 나는 아잔타로 향했다. 아잔타를 가는 방법은 엘로라와는 약간 달랐다. 택시를 하루 빌리는 방법이 가장 좋긴 하지만 이건 너무 비쌌다. 나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아잔타로 가는 버스 정류장은 엘로라와 달랐다. 엘로라 버스는 주유소 근처에 있었지만, 아잔타에 가기 위해서는 장미식당에서 15분 정도 떨어져 있는 Central Bus Stand로 가야했다.
아잔타행 버스는 없지만, 부사월행 버스가 아잔타를 지나기 때문에 부사월행 버스를 찾으면 됐다. 가격은 130루피 였고, 약 3시간 정도가 걸렸다.
아잔타 입구에 내린 후에도, 다시 셔틀을 타고 아잔타 석굴 앞으로 이동을 해야 했다. 가격은 에어컨이 있는 버스가 30루피, 없는 것이 20루피 였다. 나는 그냥 두 버스 중에 사람이 많이 있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아잔타 입장권을 살 수 있다.(600루피)
아잔타는 입구에서부터 엘로라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엘로라는 큰 공원 같았지만, 아잔타는 강 옆에 벽? 산?을 파 놓아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또 엘로라와는 다르게 벽화가 많았다. 거의 1,500년이 넘은 벽화가 보존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약간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세월에 치여서 그런지 변화의 손상도는 엄청 심했다.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다음 석굴로 넘어가던 중 한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셔틀버스에서부터 봤던 친구였는데, 그 버스에서는 그 친구와 나만이 외국인이어서 그의 존재를 알고 있기는 하였다.
안토니라는 미국 친구였다. 안토니는 인도 친구들과 함께 여행 중이었다. 내 이름을 묻는 그에게 “주노(준호)”라고 하니, 나에게 되레 보통의 동양인들은 서양이름 하나를 가지고 있는데, 그냥 본래의 이름을 쓰는 걸 보니 신기하며 답을 했다.
나도 커비(Kirby)라는 이름을 썼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내 발음인 “주노”룰 쓴다. 이름을 처음 만들 땐, 게임에서 캐릭터를 만드는 기분이었다. 나는 첫 게임인 메이플스토리부터, 능력치 보다는 닉네임을 만드는데 시간을 많이 들였었다.
조금 떨어지는 능력치는 괜찮았지만, 멋있는 이름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영어를 배우기 위해 갔었던 뉴질랜드에서도 어떤 이름을 쓸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고민 끝에 나온 이름이 커비였다.
커비는 만화 캐릭터의 이름인데, 분홍색 구형의 괴물이었다. 뭐든지 다 먹어벼러서 자신의 힘으로 사용하는 괴물이었기에, 나도 이곳의 모든 걸 다 흡수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그 이름을 사용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그 이름을 버렸다. 딱히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이름을 사용할 더 이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안토니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계속 마주쳤다. 한 석굴에서 안토니가 내게 다가왔다.
안 :“이 벽화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
나 :“책에서 읽긴 했는데, 너무 손상이 심해서 뭐가 무슨 이야기를 그린 건지는 모르겠어. 전문가가 필요해”
안토니도 불교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고 하였다. 날라리처럼 보였는데 그런 얘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조금 놀라웠다. 그것에 더해, 자신은 부처님의 사상과 가르침을 이해는 하지만, 자신은 아트만을 믿는다고 하였다.
부처님의 말은 아트만은 없다는 것인데, 가르침을 이해한다는 그의 말과는 모순이 있어보였다. 무엇인가 찜찜한 기분에 다음 석굴로 이동하면서 그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그리고 “종교와 철학의 차이가 무엇일까”라는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지금의 나에게 불교는 종교인가? 철학인가? 안토니가 불교의 가르침을 이해는 하지만 자신은 아트만에 대해서 믿는다고 이야기 했던 것처럼, 나도 “독립적인 나”를 믿으며 불교에 다가갔던 적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 때 불교는 나에게 이해를 위한 대상이었고, 나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해체시켜서 도구화 해야 할 것 중 하나였다. 이처럼, 나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은 종교가 될 수 없었다. 그저 불교는 하나의 철학으로서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철학으로서의 불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모순적이었다. 나에게 의지할 수 없기에 무엇인가에 기대기 위해 불교관련 서적을 펼쳤지만, 이해를 바탕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나에게 의지할 수 없어, 외부의 것을 찾았지만, 결국에는 그것조차 내 식으로 이해를 한다면 결국에는 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의 반복이었다. 그제서야 조금 알 수 있었다. 이해를 무기로는 의지할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믿지 않기 위해서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두 손을 들었을 때, 불교는 나에게 종교로서 다가왔다. 그리고 믿음 이후의 이해라는 도구는 믿음을 계속 기억할 수 있는 도구로서 사용될 수 있었다.
이렇게 말하는 나에게, 교회를 다니는 나의 친구는 이해 없는 믿음은 맹목적이라고 말하지만, 오히려 나에겐 그 친구의 말이 더 이상하게 들렸다. 100% 믿는다면, 이해할 필요도, 이해를 요구할 질문조차도 생기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마지막 26번 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상주하시는 가이드 한 분이, 나에게 붙으셔서 몇 가지 설명을 해주셨다. 26번 굴에는 부처님의 열반을 바라보며, 슬퍼하는 아난다와 제자들 그리고 그 열반을 환영하는 천신들을 묘사한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다. 또 주위의 벽화를 그리기 위한 팔레트의 흔적들과, 석상을 만들기 전, 중, 후, 의 과정 모두를 관찰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잔타 석굴에 남겨져 있는 두 인물의 두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하나는 이 석굴을 시주하신 스님이 26번 석굴을 만들며 남기신 문장이었다. 빨리어로 되어 있는 이 문장의 뜻은 “위대한 스승 부처님을 위해서...”라는 명문이었다.
또 하나는 이 아잔타 석굴군을 처음 발견한 영국의 군인 존 스미스가 남긴 낙서였다. 그는 그의 이름과 함께, 이곳을 발견할 날짜를 적 놓고 간 것이었다.
종교와 철학 사이에서의 고민에, 아잔타가 답을 해줬던 것일까. 석굴은 한 사람에게 믿음으로 부터의 존경의 표현이었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길 하나의 수단이었다.
다시 길을 되돌아가면서, 나는 반성을 해봐야 했다. 나는 믿음을 우선할 것을 이야기하면서, 다시 이해하려고 있지 않나? 쉽게 답을 할 수는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히치하이킹을 할 수 있었다. 퇴근시간에는 부사월에서 아우랑가바드 쪽으로 가는 차가 많았는데, 이곳에서도 쉽게 차를 구할 수 있었다. 혼자라서 약간 무섭긴 했지만, 버스를 탄다면 8시가 넘어서 도착을 할 것 같았다. 다행이 무슨 일 없이 아우랑가바드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가격은 200루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