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불교 유적 순례기 : 델리 편
2018.09.11~2018.09.13
6시쯤 일어나 한 동안 먹지 못할 엄마의 아침을 먹고 일찍 길을 나섰다. 비행기는 오후 1시가 되어 출발하지만, 덤벙대고 길을 헤맬 것이 뻔했다. 버스가 출발하길 기다리면서 지난 세 달을 생각해봤다.
더 이상 피시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재미있지 않았고, 지금의 내 모습도 꼴배기가 싫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좋아하지 않는 여행을 굳이 가겠다며 길을 떠나는 것이었다. 이렇게 준비를 하면서 느낀 것은 한 달을 여행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준비에는 완벽한이란 수식어가 붙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최선이라면 모를까.
계속 나를 따라왔던 “반드시 갈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도 더 이상 던지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답도 없는 질문이었다. 애초에 내가 준비한 질문 모두에 답을 내릴 수 있었다면, 그 답은 군대에서 보낸 시간동안 다 찾았어야 했다. 여행 후에야 지금과 다른 어떤 답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대전에서 7시에 출발한 버스는 10시가 넘어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막 설레지는 않았다. 조금 두려운 것이 크다는 기분이었다.
버스에서 “인도 여행을 그리며” 까페에서 나와 같이 남쪽으로 향하는 여행자를 한 명 발견했다.
한국에서 미리 구한 동행이 있었으나, 둘 모두 자유여행이라 여행 초반부터 갈라져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한창 인도에 관한 안 좋은 이야기만 생각하고 있었던 때라, 동행을 구하는 글이 무척 반가웠다.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드리니 필요한 물건이 있으시다며, 나에게 면세물품을 부탁하셨다. 별로 어려울 것이 없을 것 같아 알았다고 연락을 드렸다. 하지만 물건을 사고 난 후 괜히 사다드린다고 했나 생각이 들었다.
원래 무거웠던 가방에, 조그마한 화장품 몇 개를 더 실었다고 해서 크게 무거워질 것도 없었지만, 배낭을 들고 가면서 무겁게 느껴지는 가방이 그 화장품 때문인 것만 같아 짜증이 났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아직 만나지도 않은 그 동행이 미워졌다.
부탁한 화장품을 찾기 위해, 면세점을 끝에서 끝으로 왔다갔다 했다. 명품과 화장품 그리고 술과 약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문득 백수인 나는, 저것들을 가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할까?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저걸 사는 것이 분수에 맞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에 살 마음조차도 들지 않았지만, 비싸 보이는 물건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좋은 일 같았다.
비싼 물건이 있어서, 내가 쓸 수 있는 싼 물건이 생기고, 부자들이 돈을 크게 크게 쓸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돈이 돌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돈을 써야, 그 돈을 내가 가질 기회도 있을 테니 비싼 물건들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보면, 부자를 부자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비싼 것들이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돈이 적은 사람과 똑같은 것 밖에 가질 수 없다면 부자를 부자로 부를 수 없을 것 같다.
굳이 따지자면 비싸다는 말도 부적절했다. 그저 내가 가진 돈보다 조금 더 값이 나가는 물건일 뿐이었다. 늘어선 면세점들을 보면서, 부자가 되어서 돈을 맘껏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일찍 도착한 탓에, 플랫폼 옆의 자리에 앉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탑승까지는 1시간이 넘게 남아있었다.
단체 관광객들이 인도로 향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들은 단체로, 나는 혼자서“라는 생각이 들자 감추어 놨던 걱정이 다시 시작됐다.
많은 배낭여행객들이 내가 지났던 길을 거쳐 갔었겠지만, 그것이 나의 이야기 되었을 때, 별의별 걱정이 다 들기 시작한다. 사기에 관해 꼼꼼히 읽고 가신 분들도, 여행을 이곳 저곳 다녀오신 분들도 난이도 “상”으로 분류하는 인도를...내가?
가장 걱정됐던 것은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 지하철을 잘 찾을 수 있을까?” “지하철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을까?” 였다. 꽤나 멍청해 보이는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 고민에 이어서 비행기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내 상상은 스릴러 영화로 변해갔다. “내 비자가 잘못되어 있지는 않을까?” “ 사기꾼을 만나서 돈도 털리고 장기도 털리면 어쩌나?”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는 이미 길 위에서 개들에 쫓기고 있었다.
이제 그만 하라며 나를 말리듯이, 비행기 탑승을 알리는 안내가 들려왔다.
비행기를 탔지만 아직 인도를 간다는 실감은 오지 않았다. 앞자리에 앉으신 인도분의 내음이 천천히 다가왔다.
책 말고 처음 만나는 인도의 향이 나쁘지 않았다. 이륙 후, 나눠주는 음식은 인도식 카레를 택했다. 카레 향이 천천히 기내로 퍼져나갔다.
인도에 도착했다. 인도의 시간인 약 일곱 시 였다. 우리나라와는 세시간 십오 분이 차이가 났다.
입국 수속을 밟았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이비자를 받아주는 곳으로 왔다. 내 앞에 게신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드렸더니, 본인은 인도에 이틀을 머무르고 부탄으로 가신다고 하셨다. 이미 인도를 몇 번 왔다고도 하셨다.
입국 수속을 밟고 공항을 빠져나갔다. 물건 검사는 따로 하지 않았다. 공항 밖으로 나서려고 하니 던져놨던 두려움들이 다시 비집고 나왔다.
숙소도, 차표도, 유심도 아무것도 정해놓지 않았는데, 최소한 맵스미라도 깔아 둘 걸 후회가 들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가방끈을 두 손으로 잡고 공항 밖을 나왔다.
저녁이지만, 공기는 약간 더웠다. 블로그에서 봤던 기억을 더듬어 지하철 표시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공항을 나와 오른 쪽으로 걷다보면 지하철 표시가 있었고, 쭉 내려가면 표를 사는 곳이 있었다.
다행히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원래 가는 길에 사기꾼들이 많이 들러붙는 다는데 그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직원 분에게 “뉴델리” 라고 말하니 60루피를 내라고 하셨다. 표를 받고 내려가면 한국의 지하철처럼 양방향으로 지하철이 오고갔다. 나는 요상하게도 뉴델리라고 확실히 쓰여진 표지판 앞에서, 뻔히 알면서 이게 뉴델로로 정말 가는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옆에 계신 분에게 “뉴델리?” 라고 물으니 고개를 좌우로 흔드셨다. 좌우로 흔드는 것이 그렇다라는 몸짓이라고 책에서 읽었었지만, 실제로 앞에서 보니 “응 거기 뉴델리 가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귀찮게 두 번 세 번 물으니 그제서야, “오케이 오케이, 뉴델리”라고 말로 답해주셨다.
배낭을 꼭 잡고 지하철에 탔다. 전철에 타신 분들이 한 번씩 나를 쳐다봤다. 시선이 느껴졌다. 나도 그들을 쳐다봤다.
여자 아이 둘이 자리를 같이 앉겠다며 자리를 바꿔달라고 말을 걸어왔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앉으라고 태연한 척 했지만, 아직도 불안했다. 내 손은 배낭을 잡고, 턱은 가방 위에 꽂은 체 뉴델리 역으로 향했다.
전철역을 나오니 멀리에 기차역 같이 생긴 것이 보였다. 뉴델리 역을 통해 빠하르간지로 갈 수 있다는 글을 읽었던 것이 생각나 무작정 역으로 향했다.
역으로 가면서, 몇몇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지만 무시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배낭을 손에 꽉 쥐었다. 빠하르간지로 가는 길을 찾아 역 안으로 들어갔지만,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빠간으로 가는 길은 역이 아닌 역 밖의 통로를 통해서 갈 수 있었다. 헤매고 있는 나를 보고 몇 사람이 나에게 다가왔다.
전쟁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아식별이다. 적과 아군이 구분되어야 도망을 가고 적을 솔 수 있다. 훈련중에는 같은 팀은 구분하기 위해서 피아식별 띠라는 것을 찬다. 하지만 이 빠하르간지로 가는 임무 중에는 누가 진짜 “마이쁘렌드”고 “사기꾼”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조금 더 공부하고, 맵스미를 다운 받아왔었다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인데, 아쉬웠다.
역에서 일하시는 것과 같은 옷을 입으신 분이 한 분 계셨다. 다른 인도인들도 그 분에게 무엇인가를 묻는 것 같아 믿음이 갔다. 나도 그에게 도움을 청해보았다. “빠하르간지” 단어로 툭툭 뱉는 나에게 그 아저씨는 장황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대충 그의 말은 이렇다. “빠하르간지는 뒤 쪽으로 가면 있는데, 넘어가려면 투어리스트 인증을 받아야 갈 수 있어.”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였다. 그냥 무시하고 뒤를 돌아섰다.
다른 한 분이 나에게 와서 어디를 가냐고 물으셨다. 빠하르간지를 간다고 하니, 또 다른 개소리를 시전 하셨다. “인도인은 두 부류야. 힌두인 아니면 이슬람인데, 빠하르간지는 존나 위험해, 저기 이슬람애들 존나 많으니 가지마. 어디 가고 싶어 내가 데려다 줄게.” 이것 역시 까페의 글에서 봤던 사기꾼 유행에 있었기 때문에 무시하고 길을 찾으러 역 밖으로 나왔다.
도대체, 남들 다 찾아가는 길이 왜 나에게만 보이지 않을까? 이미 나는 처음 보는 풍경과 내가 만들어낸 두려움 속에서 시야가 많이 좁아져 있었다.
밖으로 나와 역을 정면으로 보고 잠시 심호흡을 하였다. “어차피 바하르간지는 여기 어딘가에 있고, 이 사람이 많은 곳에서 어떤 사람도 나에게 해코지를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역 좌우를 살폈다.
경찰이 있는 곳이 보였다. 그곳에 가서 또 “빠하르간지“를 두 번 외치니, 왼쪽에 한 곳을 가리키신다. 검문소 하나가 있었는데, 글에서 읽었던 곳과 일치했다. 이 곳이 확실했다. 긴 다리를 건너 빠하르간지에 도착했다.
일단은 유심, 숙소 그리고 기차표였다. “첫 출발을 안전하게“ 라는 생각으로 많은 사람들이 시작점으로 삼는 인도방랑기를 가려고했다. 하지만 빠하르간지에 도착하자마자 느낀 한 줌의 안도감 후엔, 압도적인 첫 인상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인간은 시각에 많은 부분을 의존한다고 하는데, 건물 사이의 좁은 하늘과, 촌스러운 네온사인들, 그리고 그 아래의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미 내 몸은 잔뜩 움추려져 있었다.
또 다시, 유심이라도 해오거나, 맵스미라도 다운을 받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라도 있었으면 이렇게 쫄지 않았을텐데. 머리 속에서는 “씨티뱅크”만 생각했다. 그것만 찾으면 인도방랑기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생각만 하면서 나에게 건네 오는 많은 말들을 무시했다.
화장실이 급한 것처럼,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날이 조금 덥기도 했지만 한 80%는 식은땀이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던 중, 한국인으로 보이는 한 중년의 여성분과 눈이 마주쳤다. 바로 한국분이라는 것을 서로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인도방랑기 가려면 어떻게 가야해요?”라고 물으니 같이 있던 인도분이 어설픈 한국어로 인도방랑기가 별로 좋지 않다고 이야기 하셨다.“ 그 여성분은 익 근처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하시는데 앞에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시는 중이라고 하셨다.
앞쪽으로 더 가면 있을 건데, 찾기가 약간 힘들 것이라고 하셨다. 감사의 인사를 드린 후, 인도방랑기를 못 찾으면 아주머니가 들어가신 식당이라도 가서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러니 마음이 조금 편했다.
멀리서 늘어진 왼쪽 간판들 사이에서 "WoW"라는 단어가 보였다. 시티뱅크도 보였지만 인도 방랑기 표지판이 보이지 않았다. 일단 와우까페에 들어갔다. 까페에서도 평이 좋았던 곳이어서 그곳에 곧장 들어갔다.
그리고 인터넷 개통을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한국분도 한 분 계셨다. 또 한국말을 잘하는 인도 사장님도 계셨다. 마음이 놓였다. 같은 말을 쓰는 사람을 만나니 그저 마음이 놓였다. 웃긴 일이었다.
유심은 일단 지금 장착해도, 내일 오후 3시쯤에 개통을 할 수 있었다. 기차표의 경우 아우랑가바드로 가는 기차표가 없어서, 따깔표를 구해야했다. 따깔표도 없어서 프리미엄따깔로 부사왈로가서 부사왈에서 다시 이동을 해야했다.
숙소도 와우까페를 통해서 구했다. 이대는 밀려오는 피로에 그저 돈을 지줄했지만, 여기서 상당히 지출이 컸었다. 유심은 800(2달, 하루 1.4G), 델리-부사월 기차표(2300, 프리미엄따깔, 3A), 숙소(1,200, 싱글룸)이었다.
조금 더 알아보고 갔다면 초반 지출을 줄였을 수 있었을 것이다. 유심의 경우 빠르고 확실하게 구매할 수 있었어서, 불만은 없었지만 기차표의 경우 내가 알아보고 미리 준비했더라면 훨씬 더 값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3A 저 가격이면 차리리 비행기를 타고 아우랑가바드에 가는 편이 나았었다.
숙소의 경우, 델리가 다른곳보다 물가가 비싸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가격이었다. 귀국 며칠 전에 이용했던 싱글룸(500)과 비교하여도 방상태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결국에는 내가 준비하지 않은 것이, 그렇게 느낀 두려움들이 지출을 늘린 것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