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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Apr 30. 2019

도망치는 사람으로서

복귀, 황산덕

작년 이맘때쯤이었습니다.


대학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시작한 지 5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던 저는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겠지만

학교로 가는 길 버스 위에서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냥 버스가 사고가 났으면 좋겠다. 그러면 안 가도 될텐데"



제가 기다리고, 선택하여 진학한 대학원이었지만, 막상 현실을 겪어보니 제 속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정도는 다 견디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힘듦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일기장에 일기와 비슷하게 시를 쓰곤 했는데

저도 제가 써 놓은 글자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태는 좋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순간들이 너무 아프게 다가올 때

저는 울음을 참고 있던 그 아이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아프지 않은 것들을

왜 저는 이렇게 아프게 느끼는 것이고

그저 웃으며 지나갈 일들에

저는 왜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하고 감사한 말들과 하루들은

그저 말로써 단어로써

자음과 모음으로 부서져

저에겐 압정처럼

말하기도 듣기도 힘든 고통들이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서 한 참을 운 후

울음이 그치고

어머니 내 옆에 서 있습니다.


살아야겠다는 단어 앞에 붙어 있던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데

그 나는 죽지 않는다는 착각은

이 시처럼

머릿속 단어들은 유리처럼 부서져 압정과 가시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글을 다시 읽고 난 후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하라고 한 사람도 없었지만

울며 못하겠다는 저에게

어머니는 말하셨습니다.


"그만한다고 얼른 교수님한테 말해"


실험실 한 켠에서, 전화를 하며 얼마간 운 후

결심을 했습니다.


"도망가야겠다."


제가 맡고,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것이 제가 이곳에 있으므로 늘어난 일들이었지만

나의 하루가 망가지길 스스로 기대하는 것보다

차라리, 남들에게 욕을 먹는 것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저도 그냥 학생이잖아요, 그런데 왜 제가 이런 것을 다 견뎌야 해요? 저는 도망치고 싶어요. 교수님"


교수님은 무척 어이없으셨을 것 같습니다.

대학원 생활을 고작 5~6개월밖에 하지 않은 아이가

이렇게 힘들다고 칭얼대니, 많이 당황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도망치고 나서야 들었습니다.




아직도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기대한 만큼, 약속한 만큼

일들을 해내지 못하고

도망쳤다는 것에 대해서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하지만, 도망자로서 저는 살 수 있었으니

미안하지만, 정말로 다행입니다.



"복귀"라는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책에서

도피자에 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저를 가리키고 혼내는 글처럼 느껴졌습니다.


웃기게도

도망자로서, 이제 또 어디로 도피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 저를

더 이상 물러나지 못하게

아니 오히려

이 이상 못나질 수 없으니 걱정 말라는 것처럼 안심시켜 주는 글 같았습니다.




일시적 후퇴와 도피, 286p


복귀를 위한 일시적인 "후퇴와 단순한 "도피"는 외견상으로는 구별할 수가 없다. 자기가 속해 있는 공동체 안에서의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그리고 당장에는 그것을 타개해 낼 만한 능력이 자기에게 없기 때문에, 거의 불가항력적으로 그 자리를 뜨는 것이 후퇴요 도피다. 당면한 현실 문제로부터 그 손을 뗀다는 점에서는, 후퇴와 도피 사이에 외견상의 차별은 없다. 그러나 그처럼 자리를 뜨는 자의 "마음의 향방"에 있어서는 둘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


현실 문제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경우에, 그 허물이 자기에게 있다고 보고, 올바른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하여 자기 반상 내지 자기완성에로 그 마음이 방향을 돌리는 것이 "복귀"를 전제로 한 "후퇴"의 본질이 된다.


이에 대하아여 "도피"는 모든 허물을 남에게 뒤집어 씌우고, 무가치한 물건을 버리듯이 자기의 현실을 포기하려고 한다. 자기는 모든 면에서 완전한데, 자기의 주위와 현실에 결함이 있기 때문에 불만족스러운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며, 그러기 때문에 가치 없는 현실을 부정하고 떠난다는 것이다.


후퇴에 있어서의 마음의 향방은 자기를 겨누고 있고, 도피하는 자의 마음은 남을 원망하면서 온통 "밖으로"나와 있다.




독주 아니면 도피, 304p


그런데 독주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도피에 있어서도, 사람들의 정신상태는 정상이 아니며,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열등의식과 그것에 기인하는 "새드 매저키즘"의 현상을 인정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일반으로, 도피자는 현실에 있어서의 불만족스러운 사태에 대한 책임을 모두 남에게로만 돌리려고 한다. 자기는 할 일을 다했는데 남의 잘못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행복을 남에게만 의존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의 관심은 몽땅 밖으로 쏟아져 나와있고, 그리고 그의 마음은 언제나 불평으로 꽉 차 있다. 마음에 그리는 것은 남에 대한 증오의 상뿐이고, 입에 담는 것은 이웃에 대한 욕설뿐이다. 자기더라 하라면 그보다 더 서툴게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금도 자신을 반성해 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마음이 밖에 나와 있으면 그만큼 시비 분별을 가리게 되고, 그리고 우리의 사회는 그만큼 더 소란스러운 것이 된다. 우리는 "입"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밖으로 나와 있는 자가 올바르게 사물을 처리할 리는 만무하며, 현실의 움직임에 대한 그의 감응도는 아주 둔하든가 또는 허공에 뜬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하릴없이 사랑방이나 다방 같은 곳에 모여 앉아 담론에 꽃을 피우는 자들이 내다보는 현실과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현실과는 서로 아주 딴 판이다.


대개의 경우에 있어서, 이러한 논객들의 주장은 실천가를 위하여는 별로 큰 참고가 되지 못하며 도리어 그들 때문에 세상은 시끄럽기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정신적 도피자의 현실 참여도는 지극히 낮은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텔리겐차, 305p


물론 이처럼 "입만 살아 있는 자들"도 위정자를 위하여 그 이용가치를 인정받는 때가 없지는 않다. 특히 높은 수준의 이질문명과 접촉하기 시작한 사회가 그 외래물에 대한 적응을 원만히 끝내지 못하고 있을 동안에는 그러하다. 그 높은 외래 문명을 되도록 빨리 흡수하여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는, "책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러한 자들을 양성하기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중간 계급의 사람을, "러시아"의 용어를 따라, "인텔리겐차"라고 부른다. "표트르(Pyotr) 대제가 서구 문명을 조속히 도입하기 위하여 강제로 길러내었고, 이리하여 한 때 권력의 옹호를 받기도 하였지만, 나중에 가서는 반기를 들어 그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리는 작업에 협력한 "인텔리겐차"를 보통은 그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다.

...

이러한 "인텔리겐차" 그들의 독서력으로 말미암아,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이용가치가 있다고 하겠으나, 그러나  본질에 있어서는, 역시 일종의 도피자인 것이며 그러한 점에서 그들은 자신이 소속해 있는 사회에 대하 반기를   있는 잠재적인 소질을 항상 가지고 있다. 면에 있어서, 그들이 소화한 외국 문물에 대한 지식이라는 것도 기실은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으므로, 결국에 가서 그들은 외국 문명과 자기 문명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허공에  기형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황산덕 선생님의 말처럼

도피자의 모습보다 더 구차하고 찌질한 모습은 없을 것 같습니다.

실컷 혼나고 나니 뭔가 후련한 마음이 듭니다.


다시 보니, 저에겐 좋은 소식 같습니다.

"도피자"인 것이 분명한 저지만

책에서는 이보다도 더 고약한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도피자에게 다시 어딘가로 도피할 공간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겠죠.


그래서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피자"로서의

도망치다 보면

그래서 바닥에 닿으면

책의 제목처럼 "복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의 부끄러운 저의 도망자로서의 모습이

"복귀"하는 사람의 뒷모습이 될 때까지

오늘도 열심히 도망쳐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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